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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종점은 노래로 익히 알고 있던 터였지만 이곳이 3.1독립운동을 하던 곳인지는 몰랐었다. 2014년에 처음 기념표석을 블로그에 올리려고 서울시 전체 기념표석을 찾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마포종점의 위치와 표석의 위치를 찾았었다.

그런 뒤에 기념표석은 종로구, 중구에 있는 표석만 올리고 나머지 구에 소재하는 표석은 미처 올리지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서 먼저 기타 구에 소재하는 표석을 먼저 올리다보니 마포종점을 드디어 올리게 되었다. 

너무 오래되어 최근에 이곳을 다시 찾아 기념표석을 확인했는데 표석의 내용이나 위치가 그대로여서 사진도 찍지 않고 왔더니 불교방송은 예전 그대로 였는데 1층에 있던 외환은행은 없어지고 지금은 기업은행이 들어와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진을 제대로 못쓰고 카카오맵 로드뷰를 많이 활용하게 되었다. 

기념표석으로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다. 혹시라도 함께 참여하실 분이 있으면 연락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3.1운동 시위
 

3월 1일 오후 2시 반에 학생 3~4000명은 경성 종로통에 모여 군중이 부화하여 여러 대로 나누어 일단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 이르러 한국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일시 대한문 안으로 침입하였다가 다시 대한문 앞 넓은 마당에서 독립 연설을 하였고, 일단은 경성 우편국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다시 남대문 정거장 앞에서 의주통으로 나가 불란서 영사관에 이르고 일단은 창덕궁 문 앞으로도 가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일단은 조선 보병대 앞으로 가서 그 영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못하고 또 대한문 앞의 단체에서 나뉜 일단은 미국 총영사관으로 가서 만세를 부르고 다른 단체 약 3000명은 총독부로 향하려 함으로써 본정통에서 이것을 막아 운동은 일시 표면으로는 진정되었고 군중 중에 괴수로 인정할 만한 자 130명을 체포하였으며
O 처음의 소요가 진정된 후 1일 오후 8시경에 마포 전차 종점 부근에 약 1000명이 모였고 또 11시쯤에 야소교 부속 연희전문학교 부근에 학생 약 200명이 집합하였으나 얼마 아니하여 헤어졌고 2일 정시 20분에 종로 네거리에서부터 약 400명이 만세를 높이 부르면서 종로 경찰서 앞으로 지나가매 경찰서에서는 이것을 제지하고
O 괴수로 인정할 만한 자 20명을 체포하였는데 나머지 군중은 모두 헤어졌더라. 그러한데 이 군중의 다수는 노동자이요, 학생도 더러 섞여 있었고 3일의 경성은 전일부터 매우 고요하여 훈련원장 제장 의장식은 성대하고 무사히 마쳤고 3월 4일에는 각 관공사립학교에 결석생도가 많고 혹은 한 명도 출석하지 않은 학교가 있었는데 그 원인은 불량학생들이
O 이번 시위운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거나 또는 부형이 위험하다고 염려하여 출입을 금하고 혹은 3월 1일 소요 후에 고향으로 돌아간 자가 많은 까닭이더라.
<매일신보(1919년 03월 07일) 1면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발췌>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불교방송 화단에 있다.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불교방송을 찾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마포역 4번 출구에서 여의도방향으로 내려오면 만난다.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불교방송 화단에 있다.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한신오피스텔,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를 참고하면 된다.

▼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 종점 표석 위치. 마포어린이공원에 마포종점 노래비가 있다.

 

▣ 마포종점 유래

 

[마포종점]은 전차의 종착지인 마포정류장을 소재로한 노래가 크게 유행 되면서 마포가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차는 조선왕 고종황제의 홍릉 거둥을 위하여 한성전기회사에의해 부설되어 1899년 5월 17일 처음 개통되었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화물집산의 포구문화가 번성했던 마포에 전차가 운행된 것은 1907년 초였다. 이 당시 서대문에서 마포에 이르는 전차 노선이 처음 개통 운행되어 오다 한국전쟁 이후 증가한 자동차에 밀려 1968년 11월 30일 서울의 노영 전차가 일제히 그 운행을 정지하게 되었다
그때의 마포정류장은 지금의 마포동 140번지 불교방송국이 있는 건물부근에 위치해 있었으며 도화동 38번지 동양시멘트 건물이 있는 자리는 당시 전차의 차고지로 사용되었다.
[마포종점] 노래는 마포구 도화동에 살았던 작가 정두수가 발착을 알리는 구슬픈 종소리와 함께 서민의 애환과 정취를 실어 나르던 전차가 사라진다는 아쉬움과 전차와 더불어 어느 두 연인의 슬픈 사랑이야기에 얽힌 아련한 옛 기억을 회상하며 만든 노랫말에 작곡가 박춘석이 가락을 붙여 1967년 봄, 가수 은방울 자매 [박애경,김향미]가 노래를 불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노래는 마포종점에서 바라본 한강을 낀 마포의 야경이 잘 나타나 있어 마포 주변의 옛 모습을 회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마포가 여러 사람들에게 더욱더 사랑을 받게된 계기가 되었다.
서민의 발이요, 애환을 싫어 나르던 전차는 [마포종점] 노래가 발표된 이듬해 세월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디만, 이 노래에 얽힌 서정적 풍경과 [마포종점]에 대한 추억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마포종점유래비 내용 [희망을 보고, 나는 쓰네]에서 인용>

 

▼ 마포종점 인근에 있는 마포어린이공원

▼ 마포종점유래비

 

▣ 마포종점-은방울자매의 지구레코드 전속 기념 음반

 

1968년 발매된 이 음반은 은방울자매의 독집은 아니다. 지구레코드에 전속된 당대의 인기 가수 9팀이 부른 12곡을 수록한 신보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커버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핀 봄날에 찍은 은방울자매 사진을 싣고, 이들의 대표곡 <마포종점>을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은방울자매의 지구레코드 전속을 기념한 음반이기에 A면에 실린 은방울자매의 노래가 4곡으로 가장 많았다. B면은 이미자의 노래 2곡과 권혜경, 박재란, 이미자, 남진, 문주란, 엄영섭의 노래를 담았다.

<마포종점> 가사에는 전차의 마포 종점, 영등포, 당인리 발전소, 여의도 비행장까지 구체적으로 네 곳의 서울 지명이 등장한다. 지금은 차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지나 영등포로 가지만 당시에는 배로 건너다녔고, 서울 도심을 누비던 전차의 종착역은 마포였다.

<마포종점>이 발표된 1968년은 서울의 전차가 운행을 중단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마포종점>은 서울 도심에서 사라진 추억의 교통수단, 전차에 대한 향수를 담은 애틋한 노래인 셈이다. 전차만이 아니다. 2절에 등장한 당시의 여의도는 비행기가 뜨고 지는 비행장이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여의도 비행장은 1963년 김포공항이 개장하면서 한동안 군사 비행장으로만 사용되다가 1971년 폐장된 국내 최초의 비행장이었다.

한편 지금도 가동 중인 당인리 발전소는 그 시절 마포의 정겹고 애틋한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1930년 문을 열어 열병합 발전소로 서울을 밝히고 데웠던 당인리 발전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포종점 (가요앨범 리뷰, 최규성)에서 발췌>

 

▼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노래비

▼ 마포구 상징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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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