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서울에 와서 부모님께서 흑석동에 30여 년, 장승배기에서 20여년을 사셨다. 어머님께서는 수년 전에 돌아가시고 아버님이 올해 93세이신데 아직도 정정하시다. 그러다보니 장승배기 본가에는 명절 때나 집안 일 있을 때 마다 찾는 곳인데 정작 등잔 밑이 어둡다고 사진은 예전에 찍어놓은 것 밖에 없다. 그런대로 구색을 맞춰서 올리니 이해 바란다.

서울시에서 설치한 표석은 그나마 관리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데 다른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설치한 표석은 관리가 잘 안되는 편이다. 이곳에도 장승배기 유래 표석이 설치 되어 있는데 글자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장승백이라고 어느 곳에서 표기가 되어 있어서 국어 맞춤법을 찾아봤더니 장승박이 또는 장승배기는 쓰여도 장승백이는 틀린 표현이라고 나온다. 새삼 우리나라 표준어가 엄청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 장승배기

 

동작구 상도동・노량진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장승이 서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현재 지하철 7호선 6번 출구 앞에 표석을 세우고 다시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 이곳에 장승을 세우게 된 내력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이 일대는 인가가 없고 울창한 나무숲이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잊지 못해 화산(수원)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으로 전배하러 가다가 이 지점에서 쉬면서, “이곳에 장승을 만들어 세워라.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남자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자 장승을 세워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하여라.” 하고 명하였다. 어명으로 장승배기에는 곧 두 개의 장승이 세워졌다. 이는 왕이 안심하고 행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부터 이곳은 장승배기란 지명이 붙게 되었고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가는 길에 이 장승 앞에 어가를 멈추고 쉬었다고 한다.
<서울지명사전에서 인용>

 

 

▼ 장승배기 표석... 장승배기 역 6번 출구 밖 장승배기교차로에는 장승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 표석이 놓여있다. 그런데 이곳 장승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아니라 지하대장군으로 두 장승 모두 대장군이다. 조금 이상하다.

▼ 장승배기 표석

▼ 장승배기 표석... 장승배기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만날 수 있다.

▼ 장승배기 표석

▼ 장승배기 표석... 여름에는 간이 폭포도 있어서 운치가 있는데 겨울철에는 싸 하다.

▼ 장승배기 표석... 뒤쪽은 동작도서관 건물이다.

 

▼ 장승배기유래석 표석... 동작구에서 설치한 것인데 글자 식별이 안된다.

▼ 장승배기유래석 표석

 

▼ 장승배기 표석 위치

 

 

 

 

728x90
반응형
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