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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충서원 터는 노량진역 부근에 있는데 정작 사충서원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다. 하남시에 유진오선생 묘소를 답사하다 우연히 발견하였는데 내력을 알고보니 1968년도에 하남시로 이전하여 중건했다 한다. 노량진에 있던 사충서원은 철도부설로 인해 보광동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불타버리고 하남시에 중건한 것이다. 사충서원은 4충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처럼 두번씩이나 만들어졌다 폐쇄되기를 반복했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모양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으니... 그래도 없어지지 않고 흥선대원군 서원철폐에서도 굳굳하게 살아남은 어찌보면 질긴 운명이라고 해야 할듯...

 

 



▣ 사충서원(四忠書院)

 

725년(영조 1) 노론 4대신인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를 제향하기 위하여 노론계 관료와 유생이 추진하고 국가의 보조에 의하여 경기도 과천에 건립되었다.
이들 4대신은 경종 때 왕세제(王世弟 : 후일의 英祖)를 책봉하고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는 문제로 소론의 미움을 사서 1722년(경종 2) 노론계의 역모사건(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는데, 왕세제가 영조로 즉위한 뒤 노론정권이 수립되면서 신원(伸寃)되고 서원이 건립된 것이다.
건립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그러나 1727년의 정미환국(丁未還局)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서 신임옥사를 역(逆)으로 번복하고 4대신을 다시 죄인으로 만들자 이 서원도 따라서 철폐되었다.
그 뒤 1740년의 경신처분(庚申處分)으로 4대신이 다시 충신으로 판정되었으나, 한동안 재건되지 않다가 소론세력이 완전히 몰락한 1756년에야 서원을 복설하고 사충서원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와 같이, 이 서원은 노론·소론 사이의 시비여하에 따라 철폐와 복설이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당색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으나, 영조 이후의 역대 왕들이 모두 영조의 후손이었던 관계로 영조에게 충성을 다한 4대신의 서원이라 하여 특별한 은전(恩典)을 받았다.
이에 따라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단행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되었다. 그 후 1927년 봄에 이 곳이 철도용지(鐵道用地)로 편입됨에 따라 당시 고양군 한지면 보광동(현재의 서울특별시 보광동)으로 이건하였다가 6·25때 파괴되었다. 1968년 경기도 하남시로 이건하였으며,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사충서원 터(四忠書院址) 표석

▼ 사충서원 터(四忠書院址) 표석... 메가스터디타워 건너편이다.

▼ 사충서원 터(四忠書院址) 표석

▼ 사충서원 터(四忠書院址) 표석

▼ 사충서원 터(四忠書院址) 표석... 표석 답사를 할 때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따르릉 자전거를 활용하면 아주 편리하게 답사를 할 수 있다.

▼ 사충서원 터(四忠書院址) 표석... 버스 정류장과 택시 정류장 사이에 있다. 표석 앞에는 지금 공사중이다.

▼ 사충서원 터(四忠書院址) 표석위치... 노량진역에서 가깝다.

▼ 하남시에 있는 사충서원(四忠書院) 안내판

▼ 사충서원(四忠書院)... 1968년도에 이전 복원하였다.

▼ 사충서원(四忠書院)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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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