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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글쓰기가 바뀌어서 매우 불편하다. 제일 불편한 것이 뒤로가기 버튼이 없고 사진을 순서 배열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자색도 파스텔 색으로 만 구성하여 강렬한 색을 원하는 사람들은 못 마땅하다. 얼마전 까지는 선택사항으로 하더니 요 며칠 새에 강제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올리다 보니 매우 어색하다. 사진에 서명도 못하도록 조치해 놓았다. 사진 편집을 근본적으로 못하게 막아놓았다. 이게 개선인지 개악인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아야겠다.

 


 

▣ 노량진(鷺梁津)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었던 나루터. 노량진(露梁津)·노도진(露渡津)·노량진도(鷺梁津渡)·노들나루라고도 불리었다. 이 나루는 서울과 과천·시흥을 연결해주는 구실을 하였는데, 조선시대 9대 간선로 중에서 충청도와 전라도 방면으로 향하는 제6·7·8호 간선로의 길목이었다.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였던 나루터여서 사람들의 이용이 많았으며, 도승(渡丞)이 한 사람 배치되어 관리를 맡았다. 나루 남쪽 언덕에는 노량원(鷺梁院)이 위치하여 있었으며, 세금을 거두는 관내는 과천의 신촌리(新村里)·사촌리(沙村里)·곽계(槨契)·형제정계(兄弟井契)·마포강(麻浦江)이었다. 이 나루에 속하였던 진선(津船)은 10척이었고, 관선(官船)은 15척이었다.
철교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이 지역에 설치된 노량진역이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의 구실을 수행하였고, 철교가 세워진 뒤에는 경부선 및 전철 제1호선 등이 지나고 있다. 또한, 한강의 남북을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인 한강인도교가 설치되어 1번국도가 지나고 있다. 최근 이 인도교가 확장되었고, 주변에 강변북로·올림픽대로 등이 지나 교통요지로서의 구실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조선시대 과천현(果川縣)에 속하였고, 1895년 인천부(仁川府) 과천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다.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어 영등포출장소에 속하였으며, 영등포구역소(永登浦區役所)를 거쳐 1946년 영등포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3년 관악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였다가, 1980년 관악구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동작구에 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노량진(鷺梁津) 터 표석

 

▼ 노량진(鷺梁津) 터 표석... 이곳은 주차장 옆이라 항상 차량이 주차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이다. 차량을 피해 찍다보니 사진이 전부 뒤틀려 있다.  표석을 조금 안쪽으로 화단 안에 배치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할 듯 하다.

▼ 9호선 노들역 옆이라 찾기는 쉽다.

▼ 노량진(鷺梁津) 터 표석

▼ 노량진(鷺梁津) 터 표석

▼ 노량진(鷺梁津) 터 구 표석... 옛 표석을 보다 지금 표석을 보면 애들 장난하는 것 같아서 보기에 좀 그렇다. 표석관리위원회에서는 심사숙고해서 새로 만들었겠지만 어떤 장소에 대한 무게감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다. 옛 표석은 얼마나 기품있고 이것만 봐도 이곳이 꽤나 중요했던 장소라는걸 바로 느낄 수 있다.

▼ 노량진(鷺梁津) 터 표석위치... 주위에 다른 표석들 위치도 같이 표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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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