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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는 자주 갈 일이 없다보니 표석도 일부러 찾아가기 전에는 볼 기회가 별로 없다. 5~6년 전에 표석 답사를 위해 찾아봤고 이번에 다시 찾아 봤는데 공세청 터의 표석은 내용이 확 바뀌어서 새로 설치된 표석이다. 위치는 그대로이지만 내용이 바뀌어서 다시 찾아 사진을 찍어왔다. 이날도 서울시 따르릉 자전거를 이용했다. 평지에서는 자전거가 아주 유용하지만 언덕이 많은 지형에서는 애물단지가 되기 쉽다. 

마포종점에서 토정로를 따라 오다가 언덕길을 만나 자전거를 끌고 오는데 마음 같지 않고 무척 힘이 든다. 이날 답사 계획이 30여곳 이었는데 무릎이 아파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도 반 밖에 못하고 왔다. 세월이 무섭다.

 


 

▣ 공세청(貢稅廳), 점검청(點檢廳), 광흥창(廣興倉) 기록(서강나루와 광흥창 중에서...)

 

지금의 봉원천은 옛날에 창천(滄川)이라 불렀다. 창천은 모악 서남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와우산 광흥창(廣興倉) 앞을 지나 서강으로 흘렀다. 서강나루는 인천으로 통하는 길목이기도 했으며 서해안 방면에서 들어오는 조운의 종착역이었다. 
전라·경상·충청 3도와 함께 경기 하류의 조세곡 수송선이 모두 서강에 모여들었으므로 서강나루에는 공미를 검사하던 점검청(點檢廳)과 선박세를 거둬들이던 공세청(貢稅廳), 그리고 관리의 봉록미를 관장하던 광흥창(廣興倉)이 위치해 있었다. 

◐ 공세청(貢稅廳)

공세청은 서강나루로 들어오는 선박에 대해서 세금을 거둬들이던 관청으로 지금의 신정동 96번지 일대에 위치했다.

◐ 점검청(點檢廳) 

조선시대 조세의 공미(貢米)를 선박으로 운반하여 한성에 상납하는 것을 조(漕)라고 하였다. 따라서 해운이나 수운의 요지에 많은 조창(漕倉)을 두어 공물을 수송하게 하였다. 
동국여지비고』권2 산천조에서는 양화도에 대해  
호조의 점검청이 있다. 선조 24년에 물이 얕아서 배가 통행하지 못했으며 인조 14년에는 물이 더욱 얕아졌다. 소속된 선박은 어영청의 배 10척인데 관방조에도 보인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점검청은 상수동 295번지 1호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서 각 지방으로부터 조운으로 운반되어 올라온 세공미의 수송선박을 검문하고 그 출입을 감독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수상운송 통행을 검열하던 장소로서 삼남과 황해도 지방에서 들어오는 공미를 검사하던 관청이며, 후에는 화물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였다고 한다.

◐ 광흥창(廣興倉) 

광흥창은『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태조원년 방고적제 치광흥창 장백궁록봉(太祖元年倣高的制置廣興倉掌百宮祿俸)” 즉 고려 제25대 충렬왕대의 제도를 따라 태조 원년(1392) 여러 관리들에게 지급할 봉록미를 저장하여 두기 위한 창고로서 처음 설치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이곳 광흥창을 중심으로 많은 관리들의 가솔이 모여 살게 되면서‘서강서반(西江西班)’이란 말이 생겨났으며 아울러 취락지로 발달하였다고 본다. 이곳 광흥창의 위치는『동국여지비고』의 한성부편에 보면, 도성 밖 서쪽13리에 와우산이 있는데 산 남쪽에 광흥창이 있다고 하였다. 
<다음블로그 아그의 하루에서 발췌>

 

▼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서강나루 터 표석과 함께 있다.

▼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봉원빗물펌프장 앞에 세워져 있다.

▼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위치

▼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답사를 위해 따르릉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다. 꽃이 활짝 편 모습...

▼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봉원빗물펌프장 앞에 위치한다.

▼ 옛날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내용이 바꾸어 다시 찾아가서 사진 찍어 올렸다. 

▼ 공세청 터(貢稅廳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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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