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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쌍매당 이첨 묘 입구를 보고 무작정 들어와서 어디쯤에 묘역이 있을까 산세를 보니 딱 한군데가 들어온다. 차를 몰고 가니 그곳에 덕모재 재실이 나온다. 주차를 하고 산을 오르니 한 겨울이라 해가 벌써 넘어가고 있다. 이곳은 신평이씨 중시조 이덕명의 묘가 있는 곳인데 아마도 시조의 묘가  실전되어 이덕명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는듯 보인다.
쌍매당(雙梅堂)이첨(李詹)은 고려말에 감시(監試)라는 과거시험을 통해 조정에 들어갔는데 아마도 강직한 성품이었던지 당대의 실권자 이인임을 탄핵했다가 오히려 10년간 유배를 가게 되었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말년에 유배를 당했다. 쌍매당이라는 아호는 그가 어릴 때 살던 고향 집에 소나무 2그루가 있었는데 벼슬에 전념하다 몇 년 만에 돌아와 보니 심었던 소나무는 온데간데 없었고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 전에 없었던 매화나무 2그루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호(號)를 ‘쌍매당’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태종 때 실록에 적힌 그의 졸기를 보니 학문에 힘을 쓰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는 등 상당히 좋게 평하였고 정승이 아닌데도 3일간 조회를 정지했다고 나온다. 우리가 아는 이첨은 종이를 의인화 했다는 '저생전'의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는데 묘역에는 묘비가 없이 상석에 관직을 표기했다. 현재 전해지는 시(詩)가 많은데 조선초기 문장가로 이첨을 꼽고 있기도 하다. 우연히 찾은 묘역에서 신평이씨를 알게 되었고 대문장가를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다.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할아버지는 보문각제학 이달존(李達尊)이고, 아버지는 증 참찬의정부사(贈參贊議政府事) 이희상(李熙祥)이다.
1365년(공민왕 14) 감시(監試)의 제2인으로 합격했고, 1368년 문과에 급제해 예문검열이 되고, 이듬해 우정언에 이어 1371년 지통사(知通事)로 권농방어사(勸農防禦使)를 겸하였다. 그 뒤 1375년(우왕 1) 우헌납에 올라 권신 이인임(李仁任)·지윤(池奫)을 탄핵하다가 오히려 10년간 유배되었다.
1388년 유배에서 풀려나 내부부령(內府副令)·예문응교를 거쳐 우상시(右常侍)가 되었으며, 1391년(공양왕 3) 좌대언(左代言)이 되었다. 이어 지신사(知申事)에 올라 감사를 맡았으나, 이 해에 장류(杖流)된 김진양(金震陽) 사건에 연루되어 결성(結城: 충청남도 홍성)에 다시 유배되었다.
조선조 건국 후 1398년(태조 7) 이조전서(吏曹典書)에 등용되어 동지중추원학사(同知中樞院學士)에 올랐다. 1400년(정종 2) 첨서삼군부사(簽書三軍府事)로 전위사(傳位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02년(태종 2)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에 올라 하륜(河崙)과 함께 등극사(登極使)의 부사(副使)로서 명황제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 명에 다녀왔다.
그 때 고명(誥命: 명에서 조선의 왕을 인정하는 승인서)과 인장(印章: 옥새)을 고쳐 주도록 주청(奏請)하였다. 뒤에 그 공로로 토지와 노비가 하사되었고 정헌대부에 올랐다. 그 해 지의정부사로서 대사헌을 겸했으며, 1403년 예문관대제학이 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하륜 등과 함께『삼국사략(三國史略)』을 찬수했고, 소설『저생전(楮生傳)』을 지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많은 시를 남기고 있으며, 유저로는『쌍매당협장문집(雙梅堂篋藏文集)』이 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소재지 충남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 산 17
관리자(연락처) 신평이씨문정공파

 

쌍매당 이첨(雙梅堂 李詹) 졸기
 
○知議政府事李詹卒。 詹, 洪州人, 字中叔, 自號雙梅堂, 贈參贊議政府事熙祥之子。 至正乙巳, 中監試第二人。 戊申, 恭愍王幸九齋, 以經義試諸生, 命李穡讀卷, 中者七人, 詹爲第一, 特賜及第, 拜藝文檢閱。 明年, 擢右正言, 上疏請令百官, 每日五更啓事, 史官二人入侍左右, 王從之。 乙卯, 拜左獻納, 與正言全伯英上疏, 論守門下侍中李仁任、贊成事池奫潛通亡元, 交結瀋王, 禍不可測, 請誅二人。 坐此流貶者十年。 戊辰, 起拜內府副令、藝文應敎, 五轉至右常侍。 恭讓君素與詹善, 拜詹代言, 頗信重之。 壬申春, 以知申事, 掌監試, 及金震陽等杖流, 詹亦流于結城, 冬, 得自便。 戊寅秋, 起爲吏曹典書, 陞中樞院學士、(同知壬午貢擧) 以知議政府事, 從河崙入賀皇帝登極, 奏于帝, 請改賜誥命印章。 使還, 以功賜田口, 進階正憲。 卒年六十一。 輟朝三日, 賜棺槨, 贈諡文安。 詹天資厚重, 力學能文, 手不釋卷。 一子小畜。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이첨(李詹)이 죽었다. 첨(詹)은 홍주(洪州)사람으로, 자(字)는 중숙(中叔)이고, 자호(自號)를 쌍매당(雙梅堂)이라 하였다. 증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희상(熙祥)의 아들이다. 지정(至正) 을사년 감시(監試)에 2등으로 합격하고, 무신년에 공민왕(恭愍王)이 구재(九齋)에 거둥하여 경의(經義)로써 여러 생도들을 시험하고, 이색(李穡)에게 명하여 권자(卷子)를 읽게 하여 합격한 자가 일곱 사람이었는데, 첨(詹)이 1등이었다. 이에 특별히 급제(及第)를 주고, 예문 검열(藝文檢閱)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에 우정언(右正言)으로 뽑히어 상소하여 청하기를,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매일 5경(更)에 일을 아뢰[啓事]게 하고, 사관(史官) 두 사람을 좌우(左右)에 입시(入侍)하게 하소서."
하여, 왕이 그대로 따랐다. 을묘년에 좌헌납(左獻納)에 임명되어 정언(正言) 전백영(全伯英)과 더불어 상소하여 논(論)하기를,
"수 문하 시중(守門下侍中) 이인임(李仁任)과 찬성사(贊成事) 지윤(池奫)이 망한 원(元)나라와 몰래 통하여 심왕(瀋王)과 교결(交結)하니, 화(禍)를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하여, 두 사람을 베기를 청하였다. 이로 인하여 죄를 입어 유폄(流貶)된 지 10년이 되었다가, 무진년에 다시 내부 부령(內部副令)과 예문 응교(藝文應敎)에 임명되어 다섯 번 옮겨서 우상시(右常侍)에 이르렀다. 공양왕(恭讓王)이 원래 첨(詹)을 좋아하여, 첨(詹)을 대언(代言)에 임명하고 매우 신중히 여기었다. 임신년 봄에 지신사(知申事)로서 감시(監試)를 맡았었는데, 김진양(金震陽) 등이 장류(杖流)됨에 이르러 첨(詹)도 역시 결성(結城)으로 유배되었다. 〈그해〉 겨울에 자편(自便) 을 얻고, 무인년 가을에 다시 이조 전서(吏曹典書)가 되었다가 중추원 학사(中樞院學士)·동지 공거(同知貢擧)에 올랐다. 임오년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로서 하윤(河崙)을 따라 중국에 들어가서 황제의 등극(登極)을 하례하고, 황제에게 아뢰어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고쳐 주기를 청하였다. 환국(還國)하자 그 공(功)으로 전지(田地)와 노비(奴婢)를 내려 주고, 자급을 정헌 대부(正憲大夫)로 올렸다. 이때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가 61세다. 3일 동안 조회(朝會)를 정지하고, 관곽(棺槨)을 내려 주었으며, ‘문안(文安)’으로 시호(諡號)를 주었다. 첨(詹)은 천자(天資)가 중후(重厚)하고 학문에 힘을 써서 문장에 능하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아니하였다. 아들이 하나이니, 이소축(李小畜)이다.<조선왕조실록 국역>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역 용맥도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입구와 신도비 위치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신도비... 1918년에 세워진 이첨 신도비(李詹神道碑)가 길 옆에 있는데... 찾는 이가 없는지 겨울인데도 주변이 어수선하고 잡다한 것이 많다. 당진 송규섭 가옥 입구인 도로변에 있다.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신도비... 카카오 로드뷰에서 인용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원경... 이첨 묘는 중시조인 이덕명의 묘 위쪽에 있다. 이첨은 중시조 이덕명의 7대손이라고 알려져 있다.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별도의 묘표가 없이 상석에 기록하였는데... 오래되어서 글자를 읽기가 쉽지 않다.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석물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문인석... 오래되어 이끼가 잔뜩 끼어있다.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전경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측후경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후경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묘 조안산... 멀리 행담도를 지나가는 서해대교 현수교탑이 보이고 안산 너머로 살짝 금봉이 보이는 것도 썩 좋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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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