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황순원문학관과 황순원 묘(소나기마을)

 

예전에 양평을 지나쳐 강원도로 가는데 길이 너무 막혀서 버스 기사분이 양평 샛길을 이용해 간다고 중미산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간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황순원 소나기마을이라는 이정표를 본 기억이 나서 나중에 한 번 가봐야겠다 마음만 먹었는데... 10여년이 흐른 뒤에야 겨우 다녀오게 되었다.
입구에 가면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쉽게 갈 수는 있지만 주차장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해서 다리가 힘드신 분들에게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주로 더운 여름날 찾게 되는 곳이다보니 가파른 언덕길에 그늘도 없는 길을 어른들이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막상 올라가보면 문학관 안쪽으로 주차장이 있는데 차가 가득하다. 아마도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 출퇴근 차량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방문객들이 한마디씩 다 하게 된다. 자기들은 차를 타고오고 관람객은 걸어오란다고 불평을 한다. 문학관 근처에 주차장을 확보하든지 노인용 셔틀을 만들어 불편하신 분들께 교통을 제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래 황순원선생의 고향은 평안남도 대동군인데 이곳 양평에 문학관이 설치된 것은 순전히 소설 '소나기'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소나기에 소녀가 이사간다는 곳이 바로 '양평읍'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곳 문학관에는 소설가와 부인이 함께 묻혀 있고 소나기마을이 꾸며져 있어서 어린 아이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아이들 체험학습도 진행하고 황순원 백일장도 개최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곳이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꿈의 장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황순원(黃順元)
 
1915년 3월 26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평양 숭덕학교 고등과 교사였던 찬영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만강(晩岡)이고 본관은 제안(齊安)이다. 1929년 평양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정주 오산중학교를 거쳐 1934년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했다. 이 해에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진학했으며, 1936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향리인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 등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지내다가 1946년 월남하였다. 이후 서울중고등학교 교사, 경희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80년 경희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으며, 2000년 9월 14일 향년 86세로 별세하였다.

황순원의 문학 활동은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신문에 발표하는 데서 출발한다. 첫 시집 『방가(放歌)』(1934), 제2시집 『골동품(骨董品)』이 그 결실이다.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다닐 무렵에는 이해랑·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단체인 학생예술좌(學生藝術座)를 만들기도 했으나 희곡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다.
1935년 『삼사문학(三四文學)』의 동인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일본에서 발행된 『창작(創作)』의 동인이 되었으며, 1937년에는 『단층(斷層)』의 동인이 되었다. 동인지 활동을 하던 이 무렵부터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단편 「거리의 부사」를 『창작』제3집에 싣는 등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40년 첫 단편집 『늪』(1940)을 내면서부터 소설에 전념하게 된다. 황순원은 주로 단편을 창작하다가 「움직이는 성」(1972) 이후에는 장편 창작에 주력하였다.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이르러 한글 소설의 발표가 크게 제약되었을 때도 황순원은 소설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기러기」, 「독 짓는 늙은이」, 「황노인」, 「맹산 할머니」 등이 대표작이다.
황순원의 소설 문체는 흔히 시적 문체로 불리는데 이는 압축 또는 생략을 통해 대상의 핵심 속성을 드러내는 문체적 특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대상의 사실적 재현을 겨누는 우리 소설 일반의 문체와는 구별되는 황순원의 개성적인 문체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황순원의 초기소설 가운데는 입사소설의 성격을 띤 작품이 많은데 「소나기」(1953), 「별」(1941), 「산골 아이」(1949), 「황소들」(1948), 「닭제」(1940)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소설의 주인공들이 죽음, 이별 등을 겪으며 인간과 세계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며 성장하는 행로는 곧 입사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황순원은 어려운 시대상황에 휩쓸려 고통 받는 인물들의 삶을 그린 소설도 많이 썼다. 해방 직후가 배경인 「집」(1948)과 「술」(1947, 발표 시 제목은 ‘술 이야기’), 6·25전쟁기가 배경인 「카인의 후예」(1954), 「곡예사」(1952), 「학」(1953), 「어머니가 있는 유월의 대화」(1965) 등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한편 「일월」(1965)과 「신들의 주사위」(1982) 두 장편은 각각 전근대적 신분제도(신분의식)와 가부장제도에 치여 고통 받는 인물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제도의 폭력성을 문제 삼은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중략>

세계의 폭력성과 그것에 맞서 싸우다 파멸한다 하더라도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충돌에서 생겨나는 황순원 문학의 극성은 세계를 바꾸겠다는 변화의 욕망보다는 그대로 앉아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다는, 그렇게 당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다는 데 근거한 자존 지키기의 의지 쪽에 더 가깝다. 젊은 사내를 따라 아내가 가출하고 난 뒤의 패배감과 공허감을 못 이겨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감행하는 「독 짓는 늙은이」의 주인공인 옹구 장인의 비장한 최후는 이 같은 자존심 지키기의 단적인 보기이다.<중략>

황순원 문학의 근저에 놓인 것 가운데 하나는 ‘생명 존중의 사상’이다. ‘꿈틀거리는 생기’ 곧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가 황순원 문학 전체에 실핏줄처럼 깔려 있어 상처와 폐허의 틈새를 뚫고 솟구쳐 오르는 생명의 느낌과 소리를 포착하여 전한다. 비극적 세계인식 위에 서 있는 황순원 문학이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설파하고 있는 한국소설의 한 계보는 황순원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상처의 껴안음과 그 고통의 견딤, 치열한 자기 개진과 반성의 정신이 함께 작용하여 일구어내는 신생을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하는 작가의 가치관은 생명 실현, 생명 창조를 위한 정신이 이끄는 장대한 역동의 세계를 떠올린다. 70년에 육박하는 긴 창작생활을 완성하는 「신(神)들의 주사위」의 끝이, ‘고통을 참고 견디느라 몸부림치면서 그 속에 새 생명을 품어 키우는 노을’의 장엄으로 장식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황순원문학관과 황순원 묘
소재지 경기 양평군 서종면 소나기마을길 24
관리자(연락처) 양평군청(031-770-2473)

 

▼ 소설가 황순원 묘 원경

▼ 소설가 황순원 묘는 계단을 오르면 나온다. 우측은 문학관

▼ 소설가 황순원, 배위 양정길 묘

▼ 소설가 황순원, 배위 양정길 묘

▼ 소설가 황순원, 배위 양정길 묘

▼ 소설가 황순원, 배위 양정길 묘 측경

 

 

소나기
 
황순원(黃順元)이 지은 단편소설. 1953년 5월≪신문학 新文學≫지에 발표되었고, 1956년 중앙문화사(中央文化社)에서 간행한 단편집 ≪학 鶴≫에 재수록되었다.
1959년 영국의 ≪인카운터 Encounter≫지의 단편 콩쿠르에 유의상 번역으로 입상되어 게재되기도 하였다. 이성에 눈떠가는 사춘기 소년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경험이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소녀는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소녀는 물 속에서 건져낸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 하며 던졌다. 소녀는 갈밭 사잇길로 달아나고 한참 뒤에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꽃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소년은 물기가 걷힌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년은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토요일 날 개울가에 나타났다.
소년과 소녀는 들길을 달리며 허수아비를 흔들기도 하고, 비탈의 칡꽃을 따다 다친 소녀의 무릎에 소년은 송진을 발라주기도 한다. 소년은 코뚜레를 꿰지 않은 송아지를 타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수숫단 속에서 비를 긋고, 소년은 소녀를 업어 물이 불은 개울물을 건네주었다. 그 뒤 며칠 만에 소녀는 핼쑥한 얼굴로 개울가에 나타났다. 그 날 소나기를 맞은 탓으로 앓았다는 것이다.
소녀의 분홍 스웨터 앞자락에는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에 묻은 검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대추를 건네주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녀가 내일 이사간다는 날 밤, 소년은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버리구.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어린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황순원의 일련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숙한 세계로 입문하는 통과제의의 과정으로 소녀와의 만남, 소녀의 죽음, 조약돌과 분홍 스웨터로 은유되는 소년과 소녀의 감정의 교류 등이 서술된다.
작품의 절정이자 전환점인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으로 두 사람의 교유는 고조되지만 소녀는 병세가 더쳐 죽게 된다. 유년에서 성적 성숙의 징검다리를 건너갈 때면 누구나 겪게 되는 정서적 경험이 서정시적 여운을 남기며 보편적인 정감의 세계로 독자를 연결시킨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황순원문학관과 소나기마을 안내석

▼ 황순원문학촌과 소나기마을 안내도

▼ 황순원문학관과 소나기마을 조형물

▼ 황순원문학관과 소나기마을 조형물

▼ 황순원문학관 전경

▼ 황순원문학관

▼ 황순원문학관 입구

 

▼ 소나기광장에는 시간에 맞춰 소나기가 쏟아진다. 딴 생각하고 있다가는 갑자기 소나기를 맞을 수도 있다.ㅎ

▼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와 소년... 

▼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원두막, 수숫대를 소나기광장에 세워 놓았다.

▼ 황순원문학관을 배경으로 앞마당은 소나기 광장으로 만들어져 있다.

▼ 소나기 나오는 시간은 대략 알려져 있지만 예고 방송을 하는 등 어떤 조치 없이 바로 소나기가 쏟아지니 또다른 추억을 만들어도 좋을듯...

 

 

728x90
반응형
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