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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구는 종로구와 함께 도심의 한복판에 위치하여 조선시대 많은 역사문화유적들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종로구 다음으로 역사문화유적 표석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종로구와는 또 다르다.

즉 종로구는 모두 평지에 위치하여 서울시 따르릉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모두 돌아볼 정도이지만 중구는 언덕이 많아서 동선을 잘 잡아야 한번만 언덕을 오르고 나머지는 내리막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도 답사를 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긴다.ㅎ

중구는 남산 아래쪽이 많아 동선을 주로 충무로 쪽에서 청계천 쪽으로 잡아야 내려오면서 표석을 답사할 수 있으니 다음에 다녀오시는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는 답사 코스 까지는 설명드리지 않으니 이점도 양해 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기념표석 중구 설치현황

<웹사이즈로 올렸더니 글자가 너무 작아져서 넓게 올렸으니 웹으로 보시는 분들께서는 양해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표석 중구 설치현황('20.02.20 현재)

총괄 순서

구청별순서

구청별

설치연도

표석명

표석내용

표석위치

245

중구 1


1996

3․1독립운동기념터 1919년 3·1운동 당시 시민, 학생 수천명이 모여 제2차 독립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했던 곳.  통일로 21(봉래동2가 123)

246

중구 2

2002

3․1독립운동기념터; 세브란스병원
獨立運動紀念址
1919년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 논의하던 곳. 통일로 10(남대문로5가 84-11)

247

중구 3


1999

3·1독립운동기념터 3·1독립만세 시위대가 일제 헌병경찰과 격돌하여 200여명의 부상자를 낸 곳 남대문로 39(남대문로3가 110)

248

중구 4


1998

가산 터
假山址
Gasan(Unreal Hill) Site
청계천을 준설(浚渫)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가산이 있었던 터. 영조 36년(1760)과 순조 33년(1833)에 대규모의 준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청계천 주변 여러 곳에 가산이 만들어졌다. 청계천로 246(방산동 19-1)

249

중구 5


2001

강희맹 집터
姜希孟家址
조선 초기 서화에 능한 명신(名臣)인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거처하던 집터 순화동 216-2(도로명 주소없음)

250

중구 6


1993

고운담골 임진왜란 때 역관 홍순언(洪純彦)이 명나라에 갔을 때 여인을 도와준 일로 보은단(報恩緞)이란 글씨를 수놓은 비단을 받았다 하여 보은단골이 고운담골로 변음되었다고 한다. 을지로 30(을지로1가 180)

251

중구 7


1993

관립법어학교 터
官立法語學校址
Site of Public French Language School
관립법어학교는 1895년 조선 정부가 프랑스공사관 인근 에밀 마르텔(E. Martel)의 집에서 개교한 프랑스어 교육기관이다. 이후 여러 차례 옮겨 다니다가 1908년 다른 외국어학교들과 함께 관립한성외국어학교로 통합되었다.

The first French language education institute, established by the Joseon Government in 1895, was located here. It has been moved several times since its establishment and was merged into Public Hanseong Foreign Language School in 1908.
정동길22(정동 27-3)

252

중구 8


2003

교서관 터
校書館址
Site of Gyoseogwan Government Office
교서관은 조선시대에 서적의 인쇄, 제사 때 쓰이는 향과 축문, 도장 등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서적 인쇄에 필요한 활자도 주조하였다. 1392년(태조 1) 설치되었고 1777년(정조 1) 규장각에 편입되어 외각(外閣)이라고 하였다. 퇴계로20길 56 (남산동2가 26-8)

253

중구 9


2001

구리개
銅峴
Gurigae Ridge
구리개는 조선시대에 이곳에 있던 나지막한 고개이다. 흙빛이 구리색과 같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 남대문로 90(남대문로2가 5-3)

254

중구 10


2001

국도극장 터
國都劇場址
Former Site of Gukdo Cinema
국도극장은 1936년 11월에 동양풍(東洋風)을 가미한 르네상스식의 황금좌(黃金座)로 개관하였다. 한국 영화 80년과 운명을 함께 해 온 이 극장은 1948년 국도극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극장은 광복 이후 '춘향전' '미워도 다시 한번' 등 한국영화 상영의 중심지로서 영화인과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나 1999년 10월 30일에 철거되었다.  을지로 164 (을지로4가 310)

255

중구11


2016

국사당 터
國師堂址
조선 태조 4년 12월 남산 산신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작, 목멱신사를 세워 국사당이라 불러오다가 1925년 종로구 무악동으로 옮김 예장동 산5-6(도로명주소 없음)

256

중구12


2006

군기시 터
軍器寺址
조선시대 병기(兵器), 깃발 등 군수물자를 제조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官衙) 자리 세종대로 124(태평로1가 25 )

257

중구13


1986

균역청 터
均役廳址
Site of Gyunyeokcheong Government Office
균역청은 1751년(영조 27) 양인(良人)의 국역(國役) 부담을 균등히 할 목적으로 균역법이 제정됨에 따라 관련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설립한 관청이다. 1753년(영조 29) 대동법 시행 관청인 선혜청(宣惠廳)에 통합되었다. 충무로 3가 103-1(도로명주소없음)

258

중구14


1999

김익상 의사 의거 터
金益相義士義擧址
1921년 9월 12일 의열단(義烈團)의 김익상이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곳 소파로 126(예장동 8-145)

259

중구15


2000

김장생,김집선생 생가 터 조선시대 5현의 한 사람으로 예학(禮學)의 태두인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과 그의 아들로 예학의 대가인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 1574~1656)이 태어나신 곳이다. 덕수궁길15(서소문동 37)

260

중구16


1993

나석주 의사 의거 기념터
羅錫疇
1926년 12월, 나석주 의사가 일제 동양척식회사(東洋拓植會社)에 투탄(投彈)하고 일본경찰과 총격전 중 자결한 곳 을지로 66(을지로2가181)

261

중구17


2014

남부학당 터
南部學堂址
Site of the Southern District School
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한성부의 중부·동부·서부·남부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이다. 남부 성명방(誠明坊)이었던 이곳에 남부학당이 있었다.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퇴계로30길 15-6(필동1가 24-37)

262

중구18


2002

남소문 터
南小門址
서울의 소문(小門)으로 세조(世祖) 때 세우다. 예종원년(睿宗元年 1469), 음양설(陰陽說)에 따라 철거, 그후 일제(日帝)시대 주초(柱礎)마저 없어지게 되었다. 장충동2가 산 5-7(도로명주소없음)

263

중구19


1988

남지 터
南池址
서울 도성(都城) 숭례문(崇禮門) 밖에 있던 연못으로 장원서(掌苑署)에서 관리하였음 봉래1가 104-1(도로명주소 없음)

264

중구20


1989

노인정 터
老人亭址
조선조말(1840년 건립) 풍양 조씨(豊壤趙氏)의 정자 터로 갑오개혁을 논의했던 곳 필동로 6길 33(장충동 2가 192-169)

265

중구21


2001

大韓民國臨時政府
서울聯通府址
이곳은 서울 시청과 비슷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의 서울聯通府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인 4月13日 中國 上海에 수립 선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연통부와 交通局을 은밀히 조직하여 국내외를 오가며 활약하였다. 그 중 서울연통부는 日帝와 싸우면서 臨政이 수립되어 활동하고 있음을 국민에게 알리고 나라 안의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정에 보고전달하였다. 그러나 1922年頃 서울연통부의 활동은 일제에 의해서 저지됨으로써 주춤해졌다. 이곳 巡和洞5번지는원래 조선조 숙종대왕비 인현왕후가 탄생한곳으로 1897年에 설립된 민족 기업인 同和藥房이 들어섰다가 1930年에는 同和藥品工業株式會社의 자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서울연통부의 행정책임자는 동화약방 설립자의 아들인 閔糧이었는데 독립운동중 그가 日警에 체포되면서 연통부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서소문로9길 14(순화동 5-1)

266

중구22


1986

도화서 터
圖畵署址
Site of Dohwaseo Office
도화서는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화가를 양성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우리 나라의 전통적 화풍을 형성하였다. 을지로 51(을지로 2가 6)

267

중구23


2004

동양극장 터
東洋劇場址
 Former Site of Dongyang Theater
1935년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으로 문을 연 동양극장이 있던 곳이다. 당시 대중 연극의 중심지였던 동양극장은 많은 인기를 모은 ‘사랑에 울고 돈에 속고’ 같은 연극을 공연했으나 광복 후 영화관으로 바뀌었으며, 1976년 폐관된 뒤 1990년 철거되었다. 새문안로 22(충정로1가 68)

268

중구24


1985

동평관 터
東平館址
조선시대에 일본사신이 머물던 곳 마른내로 81(인현동2가 142-2)

269

중구25


1985

무교 터
武橋址
Site of Mugyo Bridge
무교는 조선시대에 정동과 서소문동 쪽에서 흘러내리던 정릉동천에 놓인 다리이다. 병기를 제조하는 일을 맡았던 군기시의 동쪽에 있어 군기시교 또는 군기교라고도 하였다. 1920년대에 정릉동천이 복개되면서 다리도 없어졌다. 무교로 12(무교동 21-3) 

270

중구26


2000

문화예술인 찾았던
은성주점 터
銀星酒店址
Former Site of Eunseong Jujeong(Tavern)
이 곳에서 약 10m 앞에는 1960년대 소설가이자 언론인 이봉구(1915~1983)와 변영로, 박인환, 전혜린, 임만섭 등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던 주점 터이다. 특히 이봉구 선생은 명동을 좋아하여 '명동시장(明洞市長)·명동백작(明洞佰爵)'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명동3길 2(명동1가 59-7)

271

중구27


1989

박팽년 집터
朴彭年家址
Former Site of Bak Paeng-nyeon's House
조선 세종 때 한글 창제에 공을 세운 집현전 학사로 유명하였던 박팽년(1417~1456)이 살던 집터. 세종16년(1434)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한 이래 형조참판까지 올랐다. 경술(經術))·문장과 필법이 모두 뛰어나 집대성(集大成)이라는 칭호를 얻은 선비였다.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였던 사육신(死六臣) 가운데 한 분이다. 퇴계로 36길 10(필동2가 80-2)

272

중구28


1988

보구여관 터
普救女館址
Site of Boguyeogwan Women’s Hospital
보구여관은 1887년 미국 북감리회에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으로 여성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하였다. 1912년 흥인지문 옆의 볼드윈 진료소와 합쳐 해리스 기념병원이 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이다.
Established by the U.S. North Methodist in 1887, Boguyeogwan was the first women’s hospital in Korea. It helped nurture female doctors and nurses.
정동길 46(정동 34-3) 정동 30-1(도로)

273

중구29


1996

부민관 폭파 의거 터
府民館爆破義擧址
Site of Bumingwan Bomb Attack
부민관 폭파 의거는 1945년 7월 24일 류만수, 강윤국, 조문기 세 청년의사가 부민관에서 친일부역자 박춘금 일당이 한국인들을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아시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자 행사장에 폭탄을 터뜨린 사건이다.

On July 24th, 1945, when pro-Japanese collaborators prepared an event to promote cooperation from Korean people for Japan’s invasive warfare, independence activists installed and exploded bombs on the site.
세종대로 125(태평로 1가 60-1)

274

중구30


1995

상진 집터
尙震家址
Site of Sang Jin’s House
조선 13대 임금 명종 때 한성부 판윤과 영의정을 지낸 상진(1493~1564)이 살던 집터이다. 청렴결백하였으며 덕성이 좋고 도량이 넓었다. 집터가 있었던 동네를 상정승골 또는 상동이라 하였다. 남대문로 30(남창동 1-2)

275

중구31


1995

서대문정거장 터
西大門停車場址
Original Site og Seodaemun Station
서대문정거장은 경인선 개통 당시의 시발역 이었다. 경인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로 1899년 9월 인천~노량진 구간이 개통 되었고, 1900년 7월 한강철교가 준공됨에 따라 서울~인천 전구간이 개통 되었다.  통일로4길 30(순화동 1-1)

276

중구32


2002

서부학당 터
西部學堂址
Site of the Western District School
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한성부의 중부·동부·서부·남부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이다. 서부 여경방(餘慶坊)이었던 이곳에 서부학당이 있었다.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세종대로 135-5(태평로1가 62-12) 

277

중구33


1995

선혜청 터
宣惠廳址
Site of Seonhyecheong Government Office
선혜청은 1608년(광해군 즉위년) 경기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신설한 관청이다. 대동법은 현물로 받던 공물을 쌀, 포목, 돈으로 대신 받게 한 법으로서 선혜청은 이 물자들을 보관하고 관리하였다.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소월로 3(남창동 51-1)

278

중구34


1991

소의문 터
昭義門址
Site of Souimun Gate
한양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로, 서남쪽에 있어 서소문(西小門)으로 불린 소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1396년(태조 5) 건립할 당시에는 소덕문(昭德門)이라고 했으나 1744년(영조 20) 소의문으로 바꿨다. 1914년 일제가 철거하였다.
This site is where Souimun, one of the Four Secondary Gates of the Seoul City Wall, had stood until 1914 when it was demolished by the Japanese colonial authority then ruling Korea.
서소문동 58-6(도로명주소 없음)

279

중구35


1988

손탁호텔 터 한말에 러시아에서 온 손탁(孫鐸, Miss Sontag)이 호텔을 건립, 내외국인의 사교장으로 쓰던 곳 정동길 26(정동 32-1)

280

중구36


1996

수렛골
Suretgol Village
이곳 서소문동 서북쪽 전 배재고교 자리와 이화여고 부지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수렛골 또는 차동(車洞)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 마을에 숙박시설이 많아 관청의 수레들이 많이 모여든데서 연유한 것이다. 수렛골은 영조가 인현왕후 탄생지인 이 지역에 인현왕후 추보비를 세워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다.
Suretgol Village
The area northwest of seosomun-dong, encompassing the old campus of Paichai high school and part of the Ewha Girls' High School campus, was once called Suretgol or Chadong.
서소문로 89(순화동 5-2)

281

중구37


2002

순청 터
巡廳址
Site of Suncheong Office
순청은 야간 순찰을 맡아보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야간 순찰은 오후 10시경부터 오전 4시경까지 실시하였다.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1465년 세조 때 좌순청과 우순청을 두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 내무아문(內務衙門) 산하의 경무청 소관으로 바뀌었다.  통일로2길 16(순화동 216)

282

중구38


1993

시위병영 터
侍衛兵營址
시위병영 터는 조선 후기에 임금의 호위를 위하여 조직된 시위대의 보병 제1연대 제1대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시위대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전투부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07년 8월 일제의 강요에 의해 해산되었다. 시위대의 해산은 군인들의 항일시위투쟁이 벌어진 계기가 되었다. 서소문로 100(서소문동 58-9)

283

중구39


2001

쌍회정터
雙檜亭址
Site of Ssanghoejeong Pavilion
쌍회정은 조선조 선조 때의 문신 이항복(1556-1618)의 집 앞에 지어진 정자이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하던 이곳은 이항복이 전나무 두 그루를 심으면서 절경이라고 널리 소문이 났다. 그 후 이 집의 새 주인이 전나무 앞에 정자를 지어 쌍회정이라 하였다.
Site of Ssanghoejeong Pavilion
Ssanghoejeong Pavilion was built in front of the house og Yi Hangbok (1556-1618), a scholar and high-ranking official under Seonjo, the 14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퇴계로6길 36(남창동 202)

284

중구40


1999

양성지 살던 곳
梁誠之
이 언저리는 조선초에 홍문관 대제학 등을 지낸 양성지가 살던 곳 충무로 42(초동 18-15)

285

중구41


2001

양향청 터
糧餉廳址
Site of Yanghyangcheong Office
양향청은 훈련도감에서 사용하는 의복이나 무기, 비품 등의 물자를 조달하고, 재정을 관리 운영하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선조 26년(1593)에 설치되어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때 폐지되었다. 삼일대로 340(저동1가 1-2)

286

중구42


2003

어서각 터
御書閣址
Site of Eoseogak Pavilion
어서각은 영조가 내려 준 어필을 봉안하기 위해 최규서(崔奎瑞, 1650~1735)가 자기 집 안에 지은 건물이다. 최규서는 영조 즉위에 불만을 품고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영조에게서 일사부정(一絲扶鼎)이라는 어필을 하사받았다. 정동길 9(정동 17-1)

287

중구43


2001

염초청 터
焰硝廳址
Site of Yeomchocheong
(Gunpowder Office)
조선시대 화약을 제조하던 이 관아는 임진왜란 때 설치되어 고종19년(1882) 임오군란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하여 전시에 대비했다. 청계천로 218(방산동 4-88)

288

중구44


2001

영희전 터
永禧殿址
Site of Yeonghuijeon Shrine
영희전은 태조, 세조, 원종, 숙종, 영조, 순조의 어진(御眞)을 모셨던 전각이다. 1619년(광해군 11) 태조와 세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남별전(南別殿)이라 했다가 1690년(숙종 16) 영희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1900년(고종 37) 경모궁 자리로 옮겨졌다. 수표로 27(저동2가 62-1)

289

중구45


1987

예빈시 터
禮賓寺址
Site of Yebinsi Government Office
예빈시는 조선시대에 외국 사신을 접대하고 종친과 재상에게 식사를 제공하던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설치되었고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세종대로 50(남대문로4가 17-12)

290

중구46


1988

유성룡 집터
柳成龍家址
이곳 남부 낙선방(南部 樂善坊) 먹절골(墨寺洞)은 임진왜란때의 영의정 서애(西厓) 유성룡선생이 살던 곳 퇴계로 228(필동2가 47-4)

291

중구47


1998

육영공원 터
育英公院



독일영사관 터
獨逸領事館




독립신문사 터
獨立新聞社
육영공원은 정부에서 세운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서양 학문을 가르쳤다. 1886년 9월 설립 당시부터 1891년 박동(현 수송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  
독일영사관은 1884년 박동에 개설되었으며 1891년 이곳에 있던 육영공원과 자리를 맞바꾸면서 정동 시대를 열었다. 1902년 다시 상동(尙洞)(현 남창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 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으로 한글판과 영어판 두 가지로 발간하였다. 1896년 4월 7일 창간할 때부터 1899년 12월 4일 폐간될 때까지 사옥이 이곳 독일영사관 터 안에 있었다.
덕수궁로 61 (서소문동 37)

292

중구48


2008

윤선도 집터
尹善道家址
Site of  Yun Seondo's House
윤선도(1587-1671)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작가이다. 그의 시조는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대 시가의 쌍벽이라고 평가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어부사시사>와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다섯 벗으로 비유하여 지은 <오우가>가 유명하다. 명동길 73 (명동1가1-3)

293

중구49


1996

읍백당 터
挹白堂址
Former Site of Eupbaekdang
조선 후기 광해군 때 영의정 박승종(1562~1623)과 성균관 교리를 지낸 그의 차남 읍백당 자응(自凝)이 살던 집 터이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廢母論)을 극력 반대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경기도 관찰사이던 장남 자흥(自興)의 군사행동을 중지시키고 아들과 함께 자결하였다. 퇴계로 28길 26(남학동 23-12)

294

중구50


2002

이덕형선생집터
李德馨先生家址
한성부판윤과 영의정을 지낸 한음(漢陰) 이덕형(1561~1613)선생 집 터. 퇴계로 18(남대문로5가 526)

295

중구51


1986

이재명의사 의거 터
李在明義士義擧址
이재명(1890~1910)은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李完用)을 척살하려 한 독립운동가이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하였다. 명동길 80(명동2가 1-19)

296

중구52


1989

이충순 자결터
李忠純
구한국군 시위대 참위 이충순(李忠純 1877-1907)이 군대 강제해산에 저항, 서소문에서 대일(對日) 시가전을 전개하다가 장렬히 자결 순국한 곳. 서소문로 88(순화동 7)

297

중구53


1993

이황 집터
李滉家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이 젊은 시절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할 때 살던 집터. 서소문로115(서소문로 47-2) 앞

298

중구54


1985

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
李會榮, 李始榮 6兄弟家址
Site of Independence activists Yi Hoeyeong, Yi Siyeong and brother's House
독립운동가 이회영(1867~1932)과 이시영(1869~1953)은 1910년 건영·석영·철영·호영 등 나머지 4형제와 함께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이회영은 1932년 일본군사령관 사살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어 고문으로 순국하였고, 이시영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에 재임한 후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명동11길 20(명동1가1-1)

299

중구55


2001

장악원 터
掌樂院址
음악의 편찬 교육 행정을 맡았던 조선왕조 관아 자리 을지로66(을지로2가 181)

300

중구56


1994

장충단 터
奬忠壇址
임오군란,갑신정변,을미사변 때 순국한 대신과 장병들을 제사하기 위하여 광무(光武) 4년(1900) 설치했던 제단터(祭壇址) 동호로 257-10(장충동2가 197)

301

중구57


2019

저경궁 터
儲慶宮址
Site of Jeogyeonggung Shrine
저경궁은 조선 14대 임금 선조의 후궁인 인빈(仁嬪) 김씨(1555~1613)의 사당이다. 인조가 즉위 전 살던 집으로 송현궁(松峴宮)이라 하였다가 1755년(영조 31) 저경궁으로 바뀌었고 1908년 육상궁(毓祥宮)에 합쳐졌다. 남대문로 39(남대문로3가 110)

302

중구58


2000

전환국 터
典圜局址
고종 22년(1885)~광무 2년(1898) 근대식 백동전(白銅錢)을 찍어 만들던 관아 자리 세종대로 55(태평로2가150)

303

중구59


2003

정광필 집터
鄭光弼家址
Site of Jeong Gwangpil's House
정광필(1462-1538)은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이곳은 정광필 후손까지 도합 12명이 정승 반열에 올라 속칭 '정씨터'라고 불리고 있으며, 선조 때 좌의정 정유길의 외손자인 김상용·상헌 형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고종 때 정원용이 이 집을 호화롭게 가꾸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Site of Jeong Gwangpil's House
Jeong Gwangpil (1462-1538) was Chief State Councilor under Jungjong, the 11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소공로 51(회현동1가 203)

304

중구60


1995

정미의병 발원터
丁未義兵發源地
1907년 군대 해산령에 분격, 朴昇煥 대대장이 자살하자 한국 군인들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의병투쟁을 격화시킨 곳. 세종대로9길 42(서소문동 120-23)

305

중구61


1998

제1회 전국체육대회 개최지
第一回全國體育大會開催址
Site of the 1st Korean National Sports Festival
전국체육대회의 효시가 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1920년 11월 4일부터 6일까지 개최되었다. 정동 34-31

306

중구62


2001

조선광문회 터
朝鮮光文會址
 Former Site of Joseongwangmunhoe(Society)
조선광문회는 1910년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단체로 신문화(新文化)의 요람이자 나라를 잃은 지식인의 사랑방 구실을 하던 곳이다. 육당은 이곳에서 '삼국사기''동국통감'등 많은 고전을 간행하고, '붉은저고리''아이들 보이''청춘(靑春)'등 잡지를 발행하였으며, 또한 1919년에는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하기도 하였다. 파란 2층 목조의 조선광문회 건물은 1969년 도로확장으로 철거되었다. 청계천로 86(장교동1)

307

중구63


1986

주자소 터
鑄字所址
이곳 주자동은 태종 3년(1403)부터 정조 24년(1800)까지 금속활자를 부어 만들던 곳 퇴계로 173(충무로 3가 60-1)

308

중구64


2004

진고개 조선시대에 남산골이었던 이 고개는 그리 높지 않은 고개였지만 진흙이어서 비만 왔다하면 사람의 왕래가 끊어질 정도로 통행이 곤란하여 진고개 또는 이현(泥峴)이라 불리었다 명동8가길 32(충무로2가 62-1)

309

중구65


1988

찬양회와 순성여학교 설립 결의 터
贊養會·順成女學敎 設立決議址
The site of Chanyanghoe’s resolution to establish Sunseong Women's School
1898년 9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북촌 여성들이 여성의 권리를 선언한 ‘여학교설시통문’(女 學 校 設 始 通 文 , 여권통문)을 신문에 발표한 후 여성단체인 찬양회와 사립학교인 순성여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한 곳이다. 남대문로 10길 29

310

중구66


1988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忠武公李舜臣生家址
Site of Yi Sunsin's Birthplace
이순신(1545~1598)은 조선 중기의 명장이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옥포, 한산도 등에서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내었다. 선조31년(1598) 노량에서 전사하였으며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를 비롯하여 시조와 한시 등을 많이 남겼다.  마른내로 47(초동 18-5)

311

중구67


2019

칠패시장 터
七牌市場址
조선시대 후기 어물(魚物) 등을 사고 팔던 시장 터 칠패로 36(봉래동 1가 48-3)

312

중구68


1985

태평관 터
太平館址
Site of Taepyeonggwan Government Office
태평관은 명나라 사신이 묵던 곳이다. 명나라 사신이 이곳에 도착하여 묵는 동안 임금, 세자, 종친 등이 연회를 베풀었다. 왕실의 혼례식장이나 과거시험장 등으로도 쓰였다. 세종대로9길 20(태평로2가 120)

313

중구69


2003

팔홍문 터
八紅門址
Site of Palhongmun Gate
팔홍문은 조선시대에 이지남(李至男, 1529~1577)과 그 아들 등 3대에 걸쳐 여덟 명이 충신·효자·열녀가 된 것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세워준 여덟 개 문이다. 이지남과 그의 아들 기직·기설은 효자, 딸은 효녀, 기설의 두 아들 돈오·돈서는 충신, 이지남의 부인 정씨와 돈오의 부인 김씨는 열녀로 인정받았다. 순화동 207-1(도로명주소 없음)

314

중구70


2001

풀무재
冶峴
Pulmujae Ridge
풀무재는 묵정동에서 쌍림동을 거쳐 충무로 5가 충무초등학교 북쪽에 있던 고개이다. 고개 언저리에 대장간들이 있어 풀무재 또는 대장고개라 불렀고 야현(冶峴)이라고도 하였다. 동호로 315(장충동2가 173-1)

315

중구71


1986

한국통감부·조선총독부 터
韓國統監府·朝鮮總督府址
일제가 을사늑약에 따라 1906년에 설치한 한국통감부 터이다.  이토 히로부미 등이 통감으로 부임하여 이곳에서 대한제국의 주권을 탈취하는 공작을 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통감부 청사는 조선총독부 청사가 되었고, 조선총독부는 1926년에 경복궁 안으로 이전하였다.  소파로 126(예장동 8-145)

316

중구72


2002

한성부 남부관아 터
漢城府南部官衙址
조선시대 5백여년간 서울 남쪽지역의 주민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터 을지로30(을지로1가 140-1)

317

중구73


1998

한성부 서부관아 터
漢城府西部官衙址
조선시대 5백여년간 서울 서쪽지역의 주민행정을 담당하던 관아 터 청계천로 14(무교동 77)

318

중구74


2005

혜민서 터
惠民署址
조선시대 서민 진료, 의약 관리, 의녀 (醫女) 교습 등을 담당한 국립의료기관인 혜민서가 있던 곳. 1466(세조12)년에 설치되어 1882(고종19)년에 폐지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 주변에 민간 약재상과 약국이 모여 있었다. 을지로2가 108-1(도로명주소 없음)

319

중구75


2001

회동서관 터
滙東書館址
Site of Hoedongseogwan Publishing Company
회동서관은 1880년대에 고제홍이 창업해 1950년대까지 존속한 서점 겸 출판사이다. 1907년 그의 아들 고유상이 회동서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무정』 등을 간행해 한국 근대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남대문로1가 50(도로명 주소 없음)

320

중구76


2001

훈련원(訓練院) 터 태조 1년(1392)~고종 31년(1894) 군사의 무예훈련 방법교습 및 무과 과거시험 등을 맡아보던 관아 자리 을지로 245(을지로6가 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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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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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종로구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도 궁궐이 밀집되어 있고 각 관청과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던 곳이어서 역사문화유적지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따라서 기념표석 또한 가장 많을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기념표석이 가까운 거리에 다수가 밀집되어 있어서 관심있는 분들이 답사를 하실 경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 현황은 별도의 관리번호가 없이 표석명으로만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올리려다보니 여러가지로 불편한게 많아서 임의로 구청별, 표석명의 가나다 순으로 임의로 관리번호를 부가하여 편리하도록 했는데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기념표석 종로구 설치현황(1)

<웹사이즈로 올렸더니 글자가 너무 작아져서 넓게 올렸으니 웹으로 보시는 분들께서는 양해바랍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지 표석 종로구 설치현황('20.02.20 현재)(1/2)

총괄 순서

구청별순서

구청별

설치연도

표석명

표석내용

표석위치

83

종로 1

종로구

1991

 “한성정부” 유적지
“漢城政府” 遺跡地
1919년 3․1운동 직후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를 열기로 하고, 그 취지서를 준비한 곳 사직로 121(내자동 61-1)

84

종로 2

종로구

1993

3․1독립운동기념터; 보신각앞 (獨立運動紀念址)(普信閣) 1919년 3·1독립만세 시위의 중심지로 4.23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한성정부(漢城政府)를 선포한 곳. 종로 54(관철동 45-5)

85

종로 3

종로구

1993

3․1독립운동기념터; 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1919년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중앙학림 학생들과 전국 불교인들의 시위 계획을 논의하던 곳. 성균관로17길 22(명륜동 1가 2-12)

86

종로 4

종로구

1993

3․1독립운동기념터;
종로 YMCA
(獨立運動紀念址)
이 기독청년회관(YMCA)은 민족운동의 본거지로써 3·1독립운동을 준비하였던 곳.  종로 69 (종로2가 9)

87

종로 5

종로구

1996

3․1운동 유적지 : 상춘원 터  (三․一運動 遺跡地 : 常春園址) 일제 강점기 천도교 소유의 상춘원(常春園)이 있던 곳, 1919년 1월 손병희(孫秉熙)를 비롯한 천도교 지도부가 이곳에서 3․1운동을 계획했다. 종로 371(숭인동 72-13)

88

종로 6

종로구

1993

3․1운동 유적지 : 유심사 터
 (三․一運動 遺跡地) (惟心社址)
3.1운동 당시 불교 잡지『유심』 을 발행하던 출판사가 있던 곳.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선생이 이곳에서 불교계의 3.1운동 참여를 주도하였다. 계동길92-3 (계동 43)

89

종로 7

종로구

1991

6·10 독립만세운동 선창 터
獨立萬歲運動先唱址
1926년 6월 10일 순종(純宗)의 국장행렬이 통과할 때 중앙고보생(中央高普生) 이선호(李先鎬) 등이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先唱)하였던 자리 돈화문로 27(묘동204-1)

90

종로 8

종로구

2001

감고당 터
感古堂址
Site of Gamgodang House
감고당은 숙종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1667~1701)가 1689년 왕비 지위를 잃고 궁에서 나와 살던 집이다. 1761년 영조의 친필 편액을 달았다. 2006년 경기도 여주시로 이전 중건되었다. 율곡로3길 50(안국동 37-1)

91

종로 9

종로구

2015

개천절 행사 발상지
開天節 行事 發祥地 
1909년 대종교에서 음력 10월 3일을 환웅이 지상에 내려왔다 하여 개천절로 정하고 이곳에서 첫 행사를 치렀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는 양력 10월 3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창덕궁길 29(원서동 181)

92

종로 10

종로구

1987

경기감영 터
京畿監營址
Site of Gyeonggigamyeong Provincial Office
경기감영은 경기 일대의 군영을 총괄하던 관청으로 책임자는 경기감사였다. 세조 연간부터 1896년 수원으로 옮겨 갈 때까지 이곳에 있었다. 새문안로 3(평동 213)

93

종로11

종로구

2005

경성궤도회사 터
京城軌道址
Site of Gyeongseong Electric Railway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뚝섬과 광나루까지 경성 궤도회사가 경영하던 궤도전차가 운행하던 시발지. 이 협궤전차는 승객 및 물자 수송, 교외 나들이의 중요한 교통시설이었다. 종로 286(창신동 444-4)

94

종로12

종로구

2018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터
京城女子醫學專門學校 址
Gyeongseong Girls’ College of Medicine / Keijo Women’s Medical College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조선(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모체로 1938년 설립된 최초의 여성의학전문학교이다.
많은 여의사를 배출했으며 1948년 서울여자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 
명륜2가 4번지

95

종로13

종로구

1992

경시서 터
京市署址
조선시대 물가를 조정하고 상거래(商去來)를 감독하던 관아터. 종로구 견지동에서 이전해 왔다. 수표로150(종로2가 40)

96

종로14

종로구

2001

경우궁 터
景祐宮址
Site of Gyeongugung Shrine
경우궁은 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생모인 수빈(綏嬪) 박씨(1770~1822)의 사당이다. 1824년(순조 24) 설치되었고 1886년(고종 23) 인왕산의 자수궁 터로 옮겼다. 계동 140-2(도로명주소 없음)

97

종로15

종로구

2000

계동궁 터
桂洞宮址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조카이자 고종의 사촌형인 이재원(李載元 1831~1891)이 살던 집터이다. 조선 초기에는 이 근처에 제생원(濟生院)과 승문원(承文院)이 있었고, 1884년 갑신정변 때는 고종이 잠시 이곳으로 피신한 바도 있었다. 율곡로 75(계동 140-2)

98

종로16

종로구

2000

관상감 터
觀象監址
조선시대에 천문, 지리, 역수(曆數)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던 관아의 터. 고려시대의 서운관(書雲觀)을 세종대에 관상감으로 개편하였고, 측우기·물시계·해시계의 발명도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1907년에 폐지되었다.  율곡로 83(원서동 219)

99

종로17

종로구

1988

권율 도원수 집터
權慄都元帥家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幸州大捷)을 거둔 도원수 권율(1537~1599) 장군 집터 사직로2길 14(행촌동 1-64)

100

종로18

종로구

2001

금위영 서영 터
禁衛營西營址
Site of the Western Camp of the Capital Garrison
금위영 서영은 조선시대에 도성 삼군문(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의 하나인 금위영의 분영이다. 금위영은 1682년(숙종 8) 국왕 호위와 수도 방어를 위해 설치된 군영으로 1895년(고종 32) 폐지되었다. 창덕궁길 49 (원서동 129-5)

101

종로19

종로구

1990

금위영 터
禁衛營址
임진왜란 이후에 설치된 오군영(五軍營)의 하나인 군영 터. 대궐의 경비와 서울 남쪽의 수비를 맡았는데 광복 후에 국립 국악원이 있었다.  율곡로 88(운니동 98-5)

102

종로20

종로구

2004

기당 현상윤선생 집터
幾堂玄相允先生家址
Former Site of Hyeon Sangyun's House
현상윤(1893~?)은 이광수·최남선 등과 함께 신문학운동을 일으킨 문학가이자 3·1운동을 주도한 독립 운동가이며 역사학자이다. 이곳에서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 조선사상사(朝鮮思想史) 등을 저술하였으며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북촌로 98(가회동 1-35)

103

종로21

종로구

2001

김가진 집터
金嘉鎭家址
Site of Kim Kajin’s House
애국계몽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인 김가진(1846~1922)이 살던 집터이다. 1886년 과거에 급제한 후 주일본 판사대신, 군국기무처 회의원, 독립협회 위원, 대한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상하이에서 병사하였다. 자하문로19-1(체부동 37-1)

104

종로22

종로구

2015

김경천 집터
金擎天
김경천(1888~1942)은 만주와 연해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끌면서 ‘백마 탄 장군’, ‘진짜 김일성’ 등으로 불렸다. 1911년부터 1919년 만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사직로8길 4(사직동 9-1)

105

종로23

종로구

1988

김상옥 의거 터
金相玉義擧址
Site of Kim Sangohk’s Patriotic Deed
김상옥(1890~1923)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1월 12일 이곳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일본 경찰과 격전을 벌이다 그달 22일 효제동에서 순국하였다. 종로65 (종로 2가 8-4)

106

종로24

종로구

1999

김상용 집터
金尙容家址
Site of Kim Sangyong’s House
조선 16대 임금 인조 때 재상을 지낸 김상용(1561~1637)이 살던 집터이다. 병자호란 때 임금의 친족들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질러 자결하였다. 글씨가 뛰어났으며, 시조로 ‘오륜가(五倫歌)’가 유명하다. 자하문로33길 22-8(청운동 52-1)

107

종로25

종로구

1992

김상헌 집터
金尙憲家址
이 일대는 병자호란 당시 화의(和議)를 반대했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집이 있던 곳으로, 그 후 안동(安東) 김씨가의 세거지(勢居地)가 되었다.  궁정동 17-4(도로명주소 없음)

108

종로26

종로구

2004

김수영 생가 터
金洙暎生家址
Site of Kim Suyoung’s Birthplace
이곳은 시인 김수영(1921~1968)이 태어난 곳이다. 그는 처음 연극을 하다가 1946년 잡지『예술부락』에 시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년), 시 「거대한 뿌리」(1964년) 등이 있다. 종로94(종로 2가 56-23)

109

종로27

종로구

1992

김옥균 집터
金玉均家址
조선말 개화파의 지도자인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이 거처하며 갑신정변을 논의하던 집 터(종로구 화동 260번지) 북촌로5길 48(화동 2)

110

종로28

종로구

1987

김정희 본가 터
金正喜 本家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조선 말기의 이름 높은 학자이자 서예가, 화가이다. 이곳은 그의 증조부모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과 화순옹주(和順翁主) 때부터 경주 김씨 본가가 있던 터이다. 효자로 3(적선동 1)

111

종로29

종로구

2007

김창숙(金昌淑) 선생 집터
Original site of Kim Chang-Sook's House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이 광복 후 살 던 집터이다. 선생은 3·1운동 직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파리장서(巴里長書) 제출을 주도하였으며 192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에 선임되었다. 창경궁로27길 66-8(명륜동3가 86-1)

112

종로30

종로구

1998

남이장군 집터
南怡將軍址
조선조 세조 때 북방개척에 무공(武功)을 세워 이름을 떨쳤던 남이장군의 집터 대학로 79-1 (연건동 72-24)

113

종로31

종로구

2000

내수사 터
內需司址
조선시대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관아의 터. 궁중에서 필요한 쌀, 옷감, 잡화, 노비 등에 관한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으며 1907년에 폐지되었다. 사직로8길 34(내수동 72)

114

종로32

종로구

2000

내자시 터
內資寺址
조선시대 궁중의 쌀, 채소, 과일 등 생필품을 공급하고 연회 등을 관장하던 관청인 내자시(內資寺) 터 사직로106(내자동141-2)

115

종로33

종로구

1999

노백린 집터
盧伯麟家址
Site of Roh Baekrin’s House
대한제국 고위 장교 출신 독립운동가인 노백린(1875~1926)이 1907년부터 망명할 때까지 살던 집터이다. 대한제국 시절 헌병대장, 육군연성학교장 등을 지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뒤 군무총장,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창덕궁길 164(계동 1)

116

종로34

종로구

2015

대종교 중광 터
大倧敎 重光
대종교는 단군을 섬기는 민족종교이다. 1909년 음력 1월 15일 나철, 오기호 등이 이곳에서 단군 신위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하면서 대종교의 재건(重光)을 선언하였다. 종로구 북촌로 70(가회동 10-3)

117

종로35

종로구

2007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Original site of the Korea Daily Newspaper Building Site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영국인 베델(Bethell)과 양기탁(梁起鐸)이 창간한 대한제국 말기의 대표적 항일 민족 언론이다. 이 후 중동학교가 이 곳에서 문을 열었다. 수송동 80-7(도로명주소 없음)

118

종로36

종로구

2018

대한적십자병원 터
大韓國赤十字病院 址
Korean Red Cross Hospital
1905년 대한적십자사 창설과 함께 개원한 병원이다.
고종의 칙령에 의해 빈민 구료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1907년 대한의원에 통합되기까지 1만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였다.
종로구 효자로 39

119

종로37

종로구

2006

대한천일은행본점 터
大韓天一銀行本店址
Daehan Cheonil Bank Site
1899년에 창립한 민족계 근대은행으로 오늘날 우리은행의 전신이다. 창립 초기에는 대한제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 고유의 회계법인 송도사개치부법을 사용하였다. 1906년 이후에는 일반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청계천로 57(관철동 43-11)

120

종로38

종로구

2001

도염서 터
都染署址
Site of Doyeonseo Office
도염서는 궁중에서 쓰이는 염료를 제조하고 직물을 염색하는 일을 주관하던 관청이다. 도염서는 육조의 하나인 공조 아래에 설치되었으며 세조 때에 모시, 비단, 가죽 등을 임금에게 바치는 일을 맡았던 제용감(濟用監)과 통합되었지만 이름과 기능은 그대로 유지되어 조선말까지 존재하였다.
Site of Doyeonseo Office
Doyeonseo was the government office responsible for manufacturing dyestuff and dyeing cloth used in palaces during the Joseon Dynasty.
세종대로 지하 189(세종로동 80-1)

121

종로39

종로구

2001

도정궁 터
都正宮址
Site of Dojeonggung Shrine
도정궁은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1530~1559)의 사당이다. 도정궁 터에 있던 건물은 1977년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고 1979년 건국대학교로 이전되었다. 사직로7길1(사직동 261)

122

종로40

종로구

1995

독립선언문 배부 터
(獨立宣言文配付址)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천도교 대표 등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검토 배부하던 곳 삼일대로 457(경운동 88)

123

종로41

종로구

1993

독립운동 기념터
(3.1獨立運動紀念址) : 승동교회
3․1독립운동 거사(獨立運動擧事를  위해 학생대표(學生代表)들이 모의(謀議)하였던 곳. 인사동길7-1(인사동 137)

124

종로42

종로구

2001

돈녕부 터
敦寧府址
Site of Donnyeongbu Office
돈녕부는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에 들어갈 수 없는 종친과 왕의 외척과 관련된 사무를 처리하던 관청이다. 고종 31년(1894)에는 돈녕원(敦寧院), 이후에는 귀족사(貴族司), 귀족원(貴族院) 등으로 개칭하였다. 광무 4년(1900) 다시 돈녕원으로 개칭하였다가 곧 폐지하였다.
Site of Donnyeongbu Office
During the Joseon Dynasty, Donnyeongbu, or the Office of Royal Connections, took care of the kings' relatives who were not officially recognized as royal family members, including their relatives on the mother's side.
삼일대로30길 21(낙원동 58-1)

125

종로43

종로구

1997

동망봉
東望峰
Dongmangbong Peak
동망봉은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의 명복(冥福)을 빌었던 곳이다. 영조 47년(1771)에 영조가 친히 동망봉(東望峰)이란 글자를 써서 이곳에 있는 바위에 새기게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이 되면서 바위가 깨어져나가 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숭인동 58-586(도로명 주소 없음)

126

종로44

종로구

1989

동부학당 터
東部學堂址
Site of the Eastern District School
사부학당은 조선시대에 한성부의 중부·동부·서부·남부에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이다. 동부 창선방(彰善坊)이었던 이곳에 동부학당이 있었다. 1894년(고종 31) 폐지되었다. 율곡로283(종로6가 70-6)

127

종로45

종로구

2006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
東亞日報創刊社屋址
 Donga Ilbo Building Site
1920년 4월 민족언론을 표방하며 창간된 동아일보의 사옥터. 그에 앞서 1917년까지 기호학교와 그 후신인 중앙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었고, 동아일보사가 1926년 광화문 신축사옥으로 이전한 뒤에는 중외일보의 사옥이 되었다. 화동 138-26(도로명주소 없음)

128

종로46

종로구

2002

등과정 터
登科亭址
Site of Deunggwajeong Archery Pavilion
등과정은 조선시대 무사들의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한 사정(射亭)이다. 사정이란 활터에 세운 정자를 말하는데, 등과정은 서울 서쪽 지역에 있는 다섯 군데 이름난 사정 가운데 하나였다. 갑오개혁 이래 궁술(弓術)이 폐지되면서 헐렸다. 사직로9길 15-32(사직동 산1-1)

129

종로47

종로구

1990

맹사성 집터
孟思誠家址
조선 초 세종 때 정승을 지낸 정맥리가 살던 집터. 그의 이름을 따서 맹감사현(峴), 맹현(孟峴)이라고 하며, 퇴청하면 이곳에서 피리를 불기를 즐겨했다. 북촌로11길 74(삼청동 35-119)

130

종로48

종로구

1994

민영환 집터
閔泳煥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이에 분격하여 자결한 충정공(忠正公) 민영환 집 터(조계사 경내)  우정국로 57(견지동 38-2)

131

종로49

종로구

1988

박규수 선생 집터
朴珪壽先生家址
조선조 말 근대화를 주장한 우의정(右議政) 환재(瓛齋) 박규수(1807~1876)선생 집터 북촌로 15(재동 83)

132

종로50

종로구

2004

박인환 선생 집터
朴寅煥家址
Site of Bak Inhwan's House
이 곳은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1926~1956)이 1948년부터 1956년까지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였던 장소이다. 1955년에는 <박인환 시선집>을 냈으며 <목마와 숙녀>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어 지기도 하였다. 종로 1(세종로동 116)

133

종로51

종로구

2001

백련사 터
白蓮社址
Site of Baengnyeonsa
백련사는 조선말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로 이름났던 김유근(1785~1840)의 집이다. 그는 대사헌, 예조판서, 병조판서, 판돈녕부사에까지 올랐던 당대의 세도가였다. 김유근은 이곳에 집을 마련한 후에 집 뒤에 있는 산봉우리가 백련봉인 것을 감안하여 백련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Site of Baengnyeonsa
Baengnyeonsa was the house of Kim Yugeun(1785-1840), a famous poet, calligrapher, and painter of the Joseon Dynasty.
삼청로10길 13(삼청동 25-1)

134

종로52

종로구

2003

별기군훈련소 터
別技軍訓練所址
Former Site of Byeolgigun Army Training Camp
조선 말 고종 18년(1881)에 설치된 신식 군대인 별기군(別技軍)이 훈련받던 곳. 신식 군대의 육성 없이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양반 자제를 선발, 일본군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 중위를 초빙하여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 별기군은 초록색 군복을 입었다 해서 초록 군대라고도 했고, 왜별기(倭別技)라고도 불렀다.  평창문화로 50(평창동 235-2)

135

종로53

종로구

1993

보성사 터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비밀리에 인쇄한 천도교의 보성사가 있던 곳이다. 수송동 80-7(도로명주소 없음)

136

종로54

종로구

2001

봉상시 터
奉常寺址
Site of Bongsangsi Government Office
봉상시는 조선시대에 국가 제사를 관장하고, 시호를 제정하며, 적전(籍田)의 농사를 관리하던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설치되었고 1895년(고종 32) 봉상사(奉常司)로 바뀌었다. 새문안로3길 15(당주동 128-27)

137

종로55

종로구

2001

부침바위 터
付岩址
Site of Buchim Rock
부침바위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거나, 아들을 낳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소원을 빌었던 바위이다. 약 2m 높이의 이 바위 표면에는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자국이 있었는데, 여기에 돌을 대고 비벼서 돌이 붙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자하문로 260(부암동 141-1)

138

종로56

종로구

1988

북평관 터
北平館址
이 언저리 동부 흥성방(東部 興盛坊)은 여진(女眞) 사신을 유숙시켰던 집 터 종로6가 20-2 

139

종로57

종로구

1991

비변사 터
備邊司址
조선시대 외적의 방어와 국가 최고 정책을 논의하던 관아 터. 중종때 창설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지되었음. 와룡동 5-6(도로명주소 없음)

140

종로58

종로구

1991

사간원 터
司諫院址
조선시대 국왕의 잘못을 충고하여 정치를 바로잡던 관아 터 삼청로 22 (사간동 66)

141

종로59

종로구

2003

사도시 터
司導寺址
Former Site of Sadosi(Gov't Office)
조선시대 궁중의 미곡과 장(醬) 등의 물건을 맡은 관청으로 태조1년(1392) 고려의 제도를 따라 요물고(料物庫)를 설치하였다. 태종1년(1401)에는 공정고(供正庫), 세종4년(1422)에는 도관서(導官暑), 세조 6년(1460) 사선서(司膳署)에 흡수되었다가 세조 13년(1467) 도관서를 다시 설치하였고 이후 사도시라 개칭되었으며 고종19년(1882)에 폐지되었다. 창덕궁길 19(원서동181)

142

종로60

종로구

2016

사동궁 터
寺洞宮址
Site of Sadonggung House
사동궁은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李堈, 1877~1955)이 살던 집이다. 이강은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을 하려고 국외 망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한옥과 양옥이 여러 채 들어선 저택이었으나 2005년 최종 철거되었다. 인사동길11길 19(견지동 85-18)

143

종로61

종로구

2000

사복시 터
司僕寺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는 수레, 말, 마구, 목장을 맡아보던 관청의 터. 궁중에는 내사복시, 도성에는 외사복시, 지방에는 목장을 두었다. 여기에 있던 외사복시는 1907년에 폐지되었다. 삼봉로43(수송동 146-2)

144

종로62

종로구

2001

사섬시 터
司贍寺址
Site of Saseomsi Government Office
사섬시는 조선시대에 저화(楮貨)를 만들고 공노비에게서 공포(貢布)를 받던 관청이다. 1401년(태종 1) 설치한 사섬서(司贍署)가 1460년(세조 6) 사섬시로 바뀌었다. 1705년(숙종 31) 호조의 사섬색(司贍色)에 합쳐졌다. 성균관로1길 6-3(명륜동3가 147-1)

145

종로63

종로구

1991

사역원 터
司譯院址
조선시대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을 맡아보던 관아터. 조선말에「한성전보총국」이 있었음. 세종대로 175(세종로동 81-3)

146

종로64

종로구

2001

사온서 터
司醞署址
Site of Saonseo Government Office
사온서는 조선시대에 궁중에 술과 감주를 공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1392년(태조 1) 설치되었다가 조선 후기에 폐지되었다. 적선동 175(도로명주소 없음)

147

종로65

종로구

2002

사포서 터
司圃署址
Site of Saposeo Office
사포서(司圃胥)는 궁중의 채소밭과 과수원을 관리하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원래 북부 준수방(俊秀坊:종로구 통인동)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고종 19년(1882)에 폐지되었다. 종로5길 86(수송동104)

148

종로66

종로구

2003

서북학회 터
西北學會址
Formor Site of Seobukhakhoe(Academy)
서북학회는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에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하여 평안도·함경도·황해도민이 조직한 애국 계몽 단체였다. 1909년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1910년에 강제 해산되었다. 그 후 이곳에는 한때 오성학교, 보성전문학교, 건국대학교 전신인 정치대학이 자리하였다. 삼일대로 443(경운동 47-17)

149

종로67

종로구

2001

서십자각 터
西十字閣址
Site of Seosipjagak Watchtower
서십자각은 경복궁 서쪽에 있던 망루이다. 원래 궁궐의 궁은 임금의 거처를 말하고, 궐은 출입문 좌우에 설치된 망루를 뜻한다. 1923년 전차부설 공사를 하면서 철거되었다. 효자로 12(세종로동 1-57)

150

종로68

종로구

1985

서울대학교 터 1946년 8월4일 국립 서울대학교로 발족, 1975년 3월 관악산(冠岳山) 기슭으로 이전되었다. 대학로104(동숭동 1-124)

151

종로69

종로구

1999

선공감 터
繕工監址
조선시대 토목과 영선(營繕)을 관장하던 관청인 선공감(繕工監)이 있던 자리 새문안로 92(신문로1가 163)

152

종로70

종로구

1986

성삼문 선생 살던 곳 태종 18년(1418) 태어나서 사육신의 한 분으로 세조 2년(1456) 순절한 성삼문(成三問)선생 살던 집이 이 부근(화동 23번지)에 있었다. 북촌로5길 48(화동 2)

153

종로71

종로구

1986

세종대왕 나신 곳 서울 북부 준수방(이 근처)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자하문로 41(통인동 119-1)

154

종로72

종로구

2001

세창서관 터
世昌書館址
Site of Sechangsoegwan Publishing Company
세창서관은 출판사 겸 서점으로 1920년대에 신태삼(申泰三)이 설립하였다. 주로 편지류, 창가집, 고소설류를 출판하였는데, 주요 출판물은 편지류인 『언문편지투(諺言便紙套)』, 창가집인 『모던서울창가집(唱歌集)』, 고소설인 『배비장전(裵裨將傳)』,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등이 있다. 종로 125(종로3가 18)

155

종로73

종로구

2001

소격서 터
昭格署址
Site of Sogyeokseo Government Office
소격서는 조선시대에 도교의 의례를 거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1396년(태조 5) 설치되었고 연산군 이후 여러 차례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없어졌다. 삼청로 66(소격동1-1)

156

종로74

종로구

1993

손병희 선생 집터
孫秉熙先生家址
House of Son Byeonghui
손병희(1861~1922) 선생은 구한말의 천도교(天道敎) 지도자이자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에 동학의 3대 교주가 되었으며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으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북촌로 41(가회동 170-3)

157

종로75

종로구

2001

송석원 터
松石園址
Original site of Songseogwon
송석원은 인왕산 계곡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 이곳에 정조 때 평민 시인 천수경이 시사(詩社)를 지어 송석원이라 하였고, 1914년 순정황후 윤씨의 백부 윤덕영도 프랑스풍 저택을 짓고 역시 송석원이라 하였다. 필운대로 61(옥인동 41)

158

종로76

종로구

2011

송진우 집터
宋鎭禹
고하(古下) 송진우(1890~1945)는 일제강점기 중앙학교 교장, 동아일보 사장을 지내고 해방 직후에 한국민주당 수석 총무를 지냈다. 이곳은 그가 1920년대부터 서거할 때까지 살던 집터이다. 창덕궁길 117(원서동 74-1)

159

종로77

종로구

1995

송학선 의사 의거 터
宋學先義士義擧址
1926년 4월28일 순종의 승하에 울분한 송학선 의사가 금호문(金虎門)앞에서 조선총독을 살해하려던 자리 와룡동 5-6(도로명주소 없음) 

160

종로78

종로구

1993

수진측량학교 터
壽進測量學校址
개화사상가 유길준(兪吉濬)이 수진궁(壽進宮)을 빌려 측량전문교육기관(1908~1909)을 세웠던 곳. 삼봉로 43(수송동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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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