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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터는 예전에 소금창고 터였던 곳이다. 염창동도 이곳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곳은 주소만 있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아파트 입구에 표석을 세워 놓아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볼 수 있어서 표석의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경비실 앞쪽이 아니라 뒷쪽 한쪽 구석에 쳐박아 놓은듯한 모습은 보기가 별로다. 승용차로 가서는 주차할 곳이 없으니 적당한 곳에 정차하고 얼른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아파트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표석에도 화장을 시켰는지 페인트가 떨어져 흉하게 보인다. 표석관리에 주민들이 좀 더 신경쓰면 더 좋을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가 터의 이력이 좋으면 거기 사는 사람들도 좋은 기운을 받는다. 염창 터는 예전 전매하던 소금창고 였기 때문에 재물과 연관이 많다. 이곳 사람들은 재물을 끼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석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염창 터(鹽倉址)


조선시대 경기, 충청, 전라 등지에서 조세로 바쳐 올라온 소금 을 저장하여 필요할 때 공급하던 소금 창고 터이다. 의염창(義鹽倉)은 한강 하구를 통해 뱃길로 한성에 올라오는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로서 전일의 김포군 양동면 염창리, 현재 강서구 염창동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본창도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조선건국 초에 설치한 것으로 염세(鹽稅)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 본창의 관원으로는 승(丞) · 주부(主簿) · 판관(判官) 등을 두었다. 

<문화콘텐츠닷컴에서 인용>



 의염창(義鹽倉) 


소금은 곡물과 더불어 중요한 식품의 하나로서 고려시대에는 초기부터 전매물로 정하여 도염원(都鹽院)을 설치하고 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소금의 생산지인 염분(鹽盆)주 01)에서 수납하는 염세(鹽稅)는 이득이 많아 국가에서는 공로가 특별히 큰 사람에게 염분을 하사하였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귀족의 특권이 강대하여지면서 소금의 전매정책이 해이하여지고, 왕실과 귀족이 사리사욕으로 염분을 점탈하는 현상까지 보였다. 그리하여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소금의 전매정책을 강화하여 각염법(榷鹽法)을 실시, 왕실과 귀족이 사사로이 점탈한 염분을 국가에서 회수하고, 도염원을 민부(民部)에 이관시키며, 아울러 의염창을 설치하여 민간의 수요에 응하게 하였다. 당시 소금의 가치는 은(銀) 1근에 64석, 포(布) 1필에 2석이었다. 공민왕 때 민부에서 독립시켜, 관원으로 종7품의 승(丞) 1인, 종8품의 주부 1인을 두었다. 조선을 세운 태조도 의염창을 계속 운영하다가, 1394년 그 업무를 사재감(司宰監)에 이관하고 혁파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사재감(司宰監) 


고려 문종 때 어량과 산천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사재감을 처음 설치하였다. 1298년(고려 충렬왕 24) 사진감(司津監)과 사재시(司宰寺), 1308년 도진시(都津寺)와 사재시, 1356년(고려 공민왕 5) 사재감, 1362년 사재시, 1369년 사재감, 1372년 사재시로 명칭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조선 건국 후 1392년(태조 즉위) 7월에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사재감을 설치하여 어량·산천에 관한 일을 맡게 하였다. 1403년(태종 3)에는 전함(戰艦)의 수리와 운송을 감독하는 사수감(司水監)과 합병하여, 사재감은 선박 관리 업무와 운송 관련 업무도 관할하였다. 그러나 어량·산천을 관리하는 일과 선박을 관리하는 일이 크게 달랐기 때문에, 1432년(세종 14) 선박 관리 업무를 전담할 사수색(司水色)을 독립시켰다. 1470년(성종 1)에는 사재감에 소속된 수참(水站)의 배와 전라도·충청도의 조선(漕船)에 관한 업무를 모두 사수색을 개칭한 전함사로 옮겼다. 이로써 사재감의 업무는 건국 초기와 같이 궁중에 어물, 소금, 육류, 땔감을 공급하고 어량, 산택을 관리하는 업무만 담당하는 관서로 자리 잡았다. 이 업무 외에도 사재감에서는 궁중에 횃불[炬火]을 공급하는 업무도 담당했으나, 19세기 이후 이 업무는 폐지되었다. 

<위키실록사전에서 인용>



 

▼ 염창 터(鹽倉址) 표석 




▼ 염창 터(鹽倉址) 표석... 초창기에는 관리번호를 부여했었다.




▼ 염창 터(鹽倉址) 표석




▼ 염창 터(鹽倉址) 표석




▼ 염창 터(鹽倉址) 표석




▼ 염창 터(鹽倉址) 표석... 염창우성1차아파트(한강우성1차아파트) 103동 경비실 옆에 있다.




▼ 염창 터(鹽倉址) 표석... 위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다음 로드뷰 옮겨옴)




▼ 염창 터(鹽倉址) 표석 위치




▼ 염창 터(鹽倉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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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