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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의 대표적 문화유적지 중의 한 곳이 허준박물관이다. 이곳을 평소에 학우님들과 자주 찾던 곳인데 허준박물관을 찾을 때면 의례히 광주바위와 허가바위굴, 공암나루터를 함께 찾게 되는데 표석을 티스토리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이곳이 제일 첫번째가 될 줄은 몰랐다. 

아무튼 뜻있는 곳인데 허가바위와 함께 나란히 표석이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서울시 기념표석에 나루터가 상당히 많다. 한강을 끼고 있다보니 나루터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면 곳곳에 있다보니 표석으로 새겨둔 것이다. 이곳에는 형제우애 전설이 깃든 투금탄 전설도 전해오는데 오늘날에도 새겨 둘만한 이야기다.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현재의 강서구 개화동 강안에 있던 나루터로서, 강가에 구멍 뚫린 바위가 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한강 하류의 교통 요지로 양화도 관할 아래 있었으며, 진선 5척이 배속되어 있었다. 후에 관선은 폐지되고 사선이 있어 선가를 받고 人馬의 통행을 맡았다. 행주산성 동쪽 덕수천(창릉천)이 한강으로 닿는 북포에 있던 나루가 공암나루와 연결되어 양천,김포와 고양간의 길목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행주산성 서쪽 언덕과 김포 대안에 행주대교가 가설되어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공암나루는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뱃길로 하류로는 조강진과 닿고 상류로는 양화진과 연결되는 중간참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강 건너편 고양시의 행주나루와 연결되었다. 공암도,구멍바위나루,공총,공암나루,공암진나루,공총진이라고도 하였다.

<서울지명사전에서 인용>



◐ 투금탄(投金灘)이야기


고려 공민왕 때 형제가 길을 가다가 황금 두 덩어리를 얻어서 나누어 가졌다. 

양천강(陽川江 : 지금의 경기도 김포시 공암진 근처)에 이르러 형제가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별안간 아우가 금 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다.

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아우는 “내가 평소에는 형을 사랑하였으나, 지금 금 덩어리를 나누고 보니 형이 미워 보입니다. 따라서 이 물건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차라리 이것을 강물에 던지고 잊어버리려고 그랬습니다.”고 대답하였다.

형도 “네 말이 과연 옳구나.” 하며 역시 금 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는데, 그 이후 이 강을 투금탄(投金灘), 투금뢰(投金瀨)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표석 




▼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표석 




▼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표석은 일명 허가바위라고 하는 굴 앞에 있다.




▼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표석 




▼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표석은 늘푸른나무복지관 인근에 위치하고... 




▼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표석은 영등포공고 정문 앞에 있다. 




▼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표석을 방문할 때는 인근 허준박물관, 허준근린공원 등과 함께 인근의 허가바위, 투금탄이야기 등을 함께 답사하기를 권한다. 




▼ 공암 나루터(孔巖津址) 표석은 평지에 있어 접근성이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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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