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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리우물 터는 경찰청 건물 정문 우측에 있는 민원실 앞에 표석이 있다. 답사를 할 때는 한꺼번에 다녀야 해서 구청별로 정리를 해놓고 다니다보면 구청별 경계선에 놓인 표석을 지나치기 쉽다. 이런게 답사에서 노하우가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왔던 길을 또 가야하는 찜찜함이 억눌러 괜시리 나 자신한테 짜증도 나는데 그런걸 초월해야 진짜 진수를 맛볼 수 있게 된다.ㅎ 

이곳은 서대문구와 중구가 맛닿은 곳이라 그 앞쪽에 다른 표석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표석 답사를 하다보면 꼭 서울시에서 세운 것은 아니지만 의미있는 표석을 만나기도 하고 각 구청에서 별도로 세운 표석도 상당수가 있다. 이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나름대로 소개해 드릴 예정이다.

경찰청 앞에 근자에 경찰기념공원이 생기면서 기념비가 하나 세워져 있어서 이곳을 답사하면서 함께 했다. 서울시 기념표석을 답사하다보면 정자, 우물, 집터 등이 많은데 유명인이 살던 집터야 그렇지만 정자나 우물은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름대로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라 그러하겠지만 아무튼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 초리우물(楚里井)


초리우물 터는 서대문구 미근동 38번지의 초리우물이 있던 곳이다. 이 큰 우물은 물맛이 달고 차가우며, 항상 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 넘쳐 추운 한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우물에 꼬리가 있는 것 같다 하여 초리우물, 미정(尾井)이라 하였다. 초리는 꼬리를 말하며 ‘尾’의 훈이다.

초리우물은 지금이 서대문로터리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의주로 부근에 있었는데 무악재에서 발원한 넝쿨내(만초천)를 따라 비단같이 넘실대며 솟아 나오는 우물이었다. 이렇게 넝쿨내의 옆에 있던 초리우물골에는 세 개의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우물은 물의 양과 질이 뛰어나 당시 장안에 널리 알려졌으며, 물맛도 시원하고 달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물의 양이 많아 이 일대에 옷감에 물들이는 나염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현재 이 부근의 마을 이름이 미근동(渼芹洞)인데 이는 초리우물골 즉 미동(尾洞)과 미나리가 많이 나던 인근의 미나리골 즉 근동(芹洞)을 합친 이름이다. 여기서 ‘미근동(尾芹洞)’으로 쓰여져야 하는데, 초리우물의 한자 표기인 미정(尾井)의 ‘尾’자를 일제가 동 이름을 왜곡하면서 물결무늬 ‘渼’자로 바꾸어 붙였던 것이다.

미근동 일대는 고래로 인가가 많고 사람의 왕래가 잦아 소의문(昭義門) 밖에 섰던 장시가 이곳까지 확장되어 시전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한편 영.정조 때 실학자 도정공 이운영(1722~1794)이 지은 노래로, 초리우물을 팔 때 불렀던 노동요 착정가가 발굴되었다. 이 착정가는 전국에서 우물을 파면서 불려져 노동의 고단함을 잊게 하였다고 한다.

<서울시 2004. '역사 문화 유적의 현장을 찾아'에서 인용>


▼ 초리우물 터(楚里井址) 표석



▼ 초리우물 터(楚里井址) 표석... 경찰청 민원봉사실 앞에 있다.



▼ 초리우물 터(楚里井址) 표석



▼ 초리우물 터(楚里井址) 표석... 처음 찾을 때믄 문이 굳게 잠겨 있었는데 최근에 찾을 때는 문이 활짝 열렸다.



▼ 초리우물 터(楚里井址) 표석



▼ 초리우물 터(楚里井址) 표석... 서대문역 방향



▼ 초리우물 터(楚里井址) 표석 원경



▼ 경찰청 정문 앞에 세워진 경찰기념공원



▼ 초리우물 터(楚里井址) 표석 위치... 중구청 관내에 있는 서대문정거장 터 표석도 지근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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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