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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궁 터를 찾으러 연세대를 갔을 때는 연세대가 한창 공사 중으로 접근이 안되고 표석도 다른 곳에 보관되어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 공사가 끝난 듯 하여 찾았더니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도로에 세우고 얼른 사진만 찍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딱지를 끊겼다. 이래저래 나와 인연이 박한 곳인데 내가 주관하는 풍수문화답사 코스에 이화여대, 연세대 코스가 있어서 몇 번 더 찾았는데 그때마다 표석은 보질 못하고 다른 유적(수경원지, 언더우드기념관, 윤동주기념관 등)만 돌아보고 왔다.

최근에는 연세대 정문의 차량출입통제로 표석을 보려면 발품을 팔아야지만 가능하다. 



연희궁(衍禧宮)


후일에 한자가 연희궁(延禧宮)으로 바뀌어 오늘날 연희동(延禧洞)의 동명이 되었다. 『궁궐지(宮闕志)』에 “도성 밖 서쪽 15리 양주(楊州)에 있는데 정종이 왕위를 선양하고 나서 이 궁에 머물렀다.”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궁터는 찾을 수 없다.

연희궁은 왕실의 액운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은 이궁으로서 세종이 부왕인 태종을 위해 1420년(세종 2)에 중건하였고, 세종 자신도 왕 8년에 잠시 머무르다가 그 이듬해에 창덕궁으로 돌아가는 등 자주 이곳에 들렀다. 그러나 당시에 이 궁은 해충과 독사가 많아 신하들이 어행 또는 어거를 만류하였다.

세종은 연희궁에 국립양잠소격인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했고, 그 뒤 세조도 이곳을 서잠실(西蠶室)이라 하고 상의원(尙衣院) 소속의 정5품 별좌(別坐) 2인을 배치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한편, 연산군이 1505년(연산군 11)에 연희궁을 개축하여 연회장으로 꾸며놓고 놀이를 하게 되자 ‘연희궁 까마귀골 수박 파먹듯 한다.’라는 속담이 생겼다.

연희궁은 이로부터 이궁으로서의 지위는 상실되었다. 전각들이 어느 때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영조실록』에 의하면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묘 수경원(綏慶園)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은 연세대 정문에 있는데 연세대 정문쪽은 상당히 오랜동안 공사를 진행했다.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 공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표석만 사진 찍었다.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보인다.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 야간 조명 시설도 해 놓았다.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 정문 인근에 있다.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



▼ 연세대 정문 인근 표석 맞은 편에 연세대 교훈이 되는 성경말씀이 새겨져 있다. 인터넷에서 본 웃기는 얘기... 어떤 애가 연세대를 방문했는데 아마도 연세대 교훈 맞추는 문제풀이 했나봐요. 문제가 'OO가 너희를 OO케 하리라'예요. 보시다시피 답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인데 이 학생이 그랬대요. 연세우유를 가리키면서 "우유가 너희를 키크게 하리라" ㅋㅋㅋ



▣ 의문의 연희궁터 드디어 찾았다


<중략>

결론적으로 연희궁의 위치는 궁동산 아래라야 맞다. 위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연세대경내가 옳다고 하는 증거는 연희궁에 수경원을 모셨다는 기록과 수경원의 위치가 연세대 경내에 있다는 사실과, 연희궁의 위치가 어디쯤이라고 명확히 밝혀 있지도 않은 표지석이 유일한 증거일 뿐이다.

그렇지만 궁동산 밑이라는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은 이 주변의 9개의 마을이나 지명들이 이곳에 있던 연희궁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확실한 증거가 되는 사실은 4개의 고지도에는 모두 분명하게 연희궁이라는 표시가 궁동산 아래 동일한 지역에 모두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어느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되어주는 자료이며, 부정 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연희동의 역사를 찾는 서대문향토사자료 발굴 제2집 연희동편을 만들기 위한 자료 수집의 결과로 더 이상 연희궁의 위치에 대해 논란의 필요가 없는 확실한 증거들을 확보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연희궁의 위치가 어느 지점인지도 모르지만, 연세대학 경내이었다는 주장은 허구이고, 궁말, 궁뜰이 있는 궁동산 아래 위치하였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이번 연희동편이 남긴 가장 자랑할 만한 확실한 성과라 하겠다. 

<네이버블로그 70대 슈퍼맨의 아름다운 노년에서 발췌>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 위치... 지금은 정문으로 차량 출입이 되지 않는다.



▼ 연희궁 터· 서잠실 터(衍禧宮址·西蠶室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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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