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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국가원수묘, 애국지사묘, 임정요원묘, 살신성인묘) (첫번째 1/2) 바로가기

 

국립서울현충원 답사기를 올리는데 화일이 너무 커서 그런지 사진이 자꾸 배꼽사진으로 나와서 2편으로 나눠서 올린다. 다음은 돈 안되는 것은 다 없애려고 노력하는지 블로그도 없애고 티스토리도 개선이 안되고 개악을 해서 사진 올리는 것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네이버로 옮겨가는 많은 사람들이 빨리 오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다음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선뜻 가지지 않는다. 왜이리 엉망으로 관리하는지... 사진이 제대로 올라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그런걸까? 매번 확인해서 수정할 수도 없구...

파일이 큰 듯 하여 2개로 나눠 보는데 제대로 될지는 장담 못하겠다.

 

국립서울현충원(國立─顯忠院)
 
「국립묘지령」은 그 첫 조항에서 ‘군인·군무원으로서 사망한 사람과 국가에 유공한 사람의 유골 또는 시체를 안장하고, 그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을 영구히 추앙하기 위하여 국방부 장관 소속하에 둔 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립묘지는 1955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관악산 줄기로 약 44만 평(144만㎡)의 대지에 설립되었다. 2018년 현재 무명용사 11만여 위를 비롯하여 모두 17만 9천여 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민족적 수난인 6·25 전쟁으로 전몰한 국군 장병들이 이름없는 넋이 되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던 것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국군묘지가 설치되었다.
1954년 육군 공병단에 의하여 착공되어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가 설치되었으나, 그 준공은 1957년에 있었다. 처음 이 국군묘지의 안치 대상은 전몰한 군인에 한하였으나, 1965년 3월 30일 대통령령 제2092호 「국립묘지령」에 의하여 국립묘지로 그 격을 높이고, 안장 대상자 범위도 국가에 유공한 민간인에까지 확대하였다.

1970년 1월 이 영의 개정에 의하여 이 일대를 성역으로 지정하여 한층 미화단장하였고,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에서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의 제사를 모시던 육신사(六臣祠)가 있던 곳으로 전하여지며 보훈충의(報勳忠義)가 깃들인 곳이다.
지형적으로는, 관(冠)을 쓴 듯 봉우리가 솟았다 하여 관악산이며, 붓끝과 같이 뾰족한 형세라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일컬어지는 산세로 감싸여 있다. 이들 산세 속의 펑퍼짐한 지형을 ‘동작포란형(銅雀抱卵形)’이라 하여 동작이 알을 품고 있듯 상서로운 기맥(氣脈)이 흐른다 하였다. 또한, 전면을 흐르는 한강수가 용트림하듯 흐르고 있어 한층 미관을 더하고 있다.
국립묘지의 정면에 들어서면 충성 분수탑이 우뚝 서 있고, 금잔디가 깔린 광장을 지나면 현충문(顯忠門)과 현충탑(顯忠塔)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현충탑 안에는 11만여 무명용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위패실과 납골당이 있으며, 이를 가호하고 있는 애국 투사상이 좌측에, 호국 영웅상이 우측에 있다.
이 탑을 중심으로 동서묘역에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 묘역, 장군 묘역, 장교사병 묘역, 경찰관 묘역 등 신분별로 약 5만 위가 정연하게 잠들어 있다. 동작동 묘지 시설로는 안장식을 거행하는 현충관(顯忠館), 유품과 전리품을 전시하는 유품 전시관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초대·2대·3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李承晩)과 제5·6·7·8·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朴正熙) 및 영부인 육영수(陸英修)가 안장된 것을 비롯하여, 전 국무총리 이범석(李範奭), 전 민의원의장 곽상훈(郭尙勳) 등 각계 저명인사들이 묻혀 있다. 해마다 영령들의 충절을 기리는 참배객들이 늘고 있다. 2009년 8월 23일 제15대 대통령 김대중(金大中)이 안장되었다. 2015년 11월 26일 제14대 대통령 김영삼(金泳三)이 안장되었다.
한편, 정부는 묘역 확대의 일환책으로 1985년 11월 13일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에 국립묘지 대전분소를 설치하였고,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 대전분소에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6년 1월 국립현충원에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정희대통령 묘... 물구덩이라는 소문부터 손톱, 머리카락이 자란다는 이야기 까지 풍수지리의 단골메뉴이다. 분명한 것은 혈처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머리쪽에서 계곡수가 침범하고 있다. 몇 년전에 이곳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마사토를 교체했다고 전해진다. 많이 좋아졌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게 땅의 이치이다.

▼박대통령 묘역에서 바라본 한강... 원래 대강수에는 묘를 쓰지 않는것으로 되어있다. 치고 들어오는 충살을 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리도 멀고 앞쪽에 장군봉도 어느정도 비보하여 항간에서 말하는 흉지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다. 오히려 용이 부실한 것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장군봉에서 바라본 박정희대통령 묘...

▼장군봉 정상에 다른 묘비와는 조금 다르게 검은 대리석으로 된 채병덕 3군참모총장 묘...

▼장군봉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한강수가 반배하며 장군봉을 쏘면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곳 후손들은 재물이 넉넉할 수도 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호국영령들이 묻혀있는 이곳이 길지로 소문나서 찾는 사람들이 기쁜 마음을 안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장군봉 맥이 진행하는 맥선상에 놓인 장택상 묘... 

▼유공자1묘역에는 아웅산 테러에 희생되신 분들이 모셔져 있다. 외무장관 이범석... 

▼이곳에 있는 묘역의 상당수는 노산 이은상이 지었는데... 이분도 여기에 잠들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원래 주인... 중종의 후궁이며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안씨묘... 선조는 아버지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지 못해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고개이름을 덕릉고개라 하여 한을 풀었고... 이곳 또한 왕의 할머니 묘이지만 왕을 낳은 사친이 되지 못해 원(園)도 못되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동작릉이라 부르는데... 최근에 국립묘지에서 현충원으로 한단계 격상되었으니 이제서야 원을 풀지 않았을까?

▼초대 대통령 이승만 묘...

▼김대중대통령 묘... 비문의 글씨가 유난히 작다. 나중에 영부인께서 이곳에 들어오겠다고 하셨다는데 그래서 그때 재활용을 하시려고 그러나? 김영상대통령 묘의 묘비가 힘찬것과 대조된다. 고인 사후의 일이지만 생전의 성격이 반영될 수도 있다.

▼우리 시대의 영웅들 묘를 몇 분 돌아봤다. 이원등 상사는 1966년 2월 4일 공수특전단 고공침투 낙하조장으로 고공강하 훈련 중 동료의 낙하산이 기능 고장을 일으키자 전우의 낙하산을 개방시켜주고 자신은 한강에 추락하여 순직하였다.

이인호는 1957년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65년 해병대 정보 장교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군이 중대원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것을 보고 부하들을 위해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전사하였다.

강재구 소령은 월남전 출발전 홍천 부근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실시하는 도중, 부하 사병이 실수하여 수류탄이 중대원 한가운데로 떨어지자,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수많은 부하들을 구하고 산화하였다.

▼호국부자의 묘....

▼호국부자의묘 설명문...

▼동락리 전투 영웅 김재옥 교사 묘... 한국전쟁 중 동락리전투는  제7연대가 북한군 제48연대를 기습 공격하여 개전 후 처음으로 승리를 한 전투인데, 당시 19세였던 동락초등학교 김재옥 교사가 북한군들의 동태를 국군에게 알려 7월 7일 기습 공격을 감행해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이 전공으로 국군 제7연대는 대통령 부대표창과 전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당시 7연대 소대장이었던 이득주 중위와 결혼한 김재옥 교사는 뜻하지 않게 희대의 살인마 고재봉 사건에 희생되었습니다...

▼동락리 전투 영웅 김재옥 교사 묘... 2012년도에 무공훈장이 추서 되었네요. 민간인이 받은 최초의 무공훈장이라고 하는데 확인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동락리 전투 영웅 이득주 중령, 김재옥 교사 묘는 33묘역 1623번 입니다.

▼호국지장사 안내문과 지장사 문화재 안내문... 문화재 안내문이 여러개 있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다른 문화재 안내문은 안보였다. 왜 치웠는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

▼호국지장사의 상징물인 지장보살...

▼호국지장사의 전경.... 어릴 때 이곳 가까이 살았는데... 그때는 화장사라고 하였었다. 이곳에 추억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변화하여 어릴 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촛불 하나 켜고 간절하게 빌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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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