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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용인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를 답사하기 위해 10여년 전에 찾았는데 그때 저수지 입구에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답사를 못한 채 거의 10여년이 흐른 뒤에 찾았다. 답사지를 한번 놓치면 다시 간다는게 쉽지가 않다. 인근에 다른 묘들과 묶어서 가야 하는데 다른 묘는 답사를 마친 상태가 되어 일부러 가지 않는한 다시 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심대장군(沈岱將軍)은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고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서울수복작전을 계획하였으나 연천에서 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왜군은 그에게 심한 타격을 입은 관계로 그의 수급을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 같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선조는 그의 공을 인정하고 충장(忠壯)의 시호를 내렸다.
그의 묘 아래에는 최근에 옮겨온 그의 아들 심대부(沈大孚) 묘가 있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어 의아해 했는데 묘역 입구쪽에 묘비가 세워져 있어서 확인해 본 결과 심대장군 묘가 경기도기념물이 되어 있어 묘역의 보호규정에 따라 다른 석물을 세울 수 없어 아래쪽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심대 장군의 무덤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중등마을 저수지 위쪽 산기슭에 있다. 봉분 앞에 작은 비와 상석이 있고, 문인석과 망주석이 한 쌍씩 있다. 1972년 5월 4일에 경기도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심대(沈岱, 1546~1592)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敦)이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의 5대손이다.
임진왜란 때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도 관찰사가 되어 경기도 일대의 왜군을 격퇴하고, 서울을 수복할 계획으로 성중(城中)의 백성들과 내통할 계획을 세웠으나 연천군에서 왜군의 야습(夜襲)을 받아 전사하였다.
심대 장군에게 심한 타격을 입었던 왜군은 장군의 관을 쪼개고 그의 머리를 베어 서울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이 비보가 행재소(行在所)에 전해지자 선조는 그를 이조 판서에 추증하였고, 뒤에 좌찬성(左贊成)으로 추증한 다음 청원군(靑原君)에 봉하고 충장(忠壯)이라 시호를 내렸다.
1604년(선조37)에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녹훈되었고, 1610년(광해군 2)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면서 다시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청원부원군(靑原府院君)으로 추봉되었다.
묘역은 완장리의 야산에 위치하며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床石)이 있을 뿐이고, 문인석과 망주석(望柱石)은 훼손되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1972년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沈岱)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墩). 영의정 심온(沈溫)의 5대손이며, 심미(沈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심광종(沈光宗)이고, 아버지는 경력(經歷) 심의검(沈義儉)이며, 어머니는 우참찬 신광한(申光漢)의 딸이다.
유학(幼學)으로 1572년(선조 5) 춘당대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正字)·박사·수찬(修撰)을 지내고, 1584년 지평(持平)에 이르렀다. 이 때 동서의 붕당이 생기려 하자, 언관으로서 붕당의 폐단을 논하였으며, 이어서 사인(舍人)·사간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덕(輔德)으로서 근왕병 모집에 힘썼다. 그 공로로 왕의 신임을 받아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지내며 승정원에서 왕을 가까이에서 호종하였다. 왜군의 기세가 심해지면서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에서 다시 의주로 수행하였다. 같은 해 9월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서울 수복작전을 계획하였다.
도성민과 내응하며 삭녕(朔寧)에서 때를 기다리던 중, 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왜군은 심대의 수급(首級)을 참하여 서울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청원군(靑原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지정 경기도 기념물 제3호
문화재명칭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소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처인성로 827번길 116-5(완장리 산119-1)
관리자(연락처) 청송심씨 충장공파

 

▼ 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용맥도

▼ 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입구

▼ 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오르는 길...

▼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안내문

▼ 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전경...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역... 오른쪽은 심대장군 묘, 앞 왼쪽은 심대장군의 아들 심대부 묘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역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는 단촐하다... 상석과 묘치만 있다.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치...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 백호방... 백호가 잘 감싸고 있다.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 청룡방... 청룡도 잘 감싸주고 있다.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 석물...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 문인석...

▼ 심대장군(沈岱將軍) 묘 후경... 좌우 용호가 잘 감싸주고 앞쪽 수구가 꽉 막혀있어서 빈틈이 없다.

 

 

범재(泛齋) 심대부(沈大孚)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신숙(信叔), 호는 가은(嘉隱)·범재(泛齋). 심광종(沈光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천군수 심의검(沈義儉)이고, 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 심대(沈岱)이다. 어머니는 전라감사 최홍한(崔弘僴)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3년(인조 1) 선행으로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에 기용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 중림찰방(重林察訪)을 거쳐, 1630년 봉림대군(鳳林大君: 뒤의 효종)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1632년 형조좌랑이 되고, 이듬해 관직에 있으면서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예조좌랑을 거쳐 정언(正言)이 되었다. 이 때 이미 사사(賜死)된 인성군(仁城君)의 세 아들이 절도에 위리안치된 것을 왕이 관용을 베풀어 방면하자, 이에 찬성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반대파의 탄핵으로 보령현감으로 좌천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그 뒤 1634년 송화현감(松禾縣監)이 되었다. 가도(椵島)에 진을 친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의 군사가 여러 고을을 횡행하며 민폐를 끼치자, 이들 대표와 횡포를 금하는 조약을 엄중히 체결하여 민폐 방지에 공헌하였다. 뒤에 서로(西路)의 행정이 부패한 데 혐오를 느껴, 한때 사직했다가 다시 복직하였다.
이어 수찬(修撰)·교리(校理)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1638년에는 또다시 지평(持平)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해 삼남 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삼남도사 겸 진정사를 택정할 때 경상도사로 뽑혔으며, 이어서 수찬·헌납(獻納)·종부시정을 지냈다.
1643년 성산현감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응교(應敎)·시강관(侍講官)·필선(弼善) 등을 역임하였다. 1649년 인조가 죽자, 사간으로서 유계(兪棨) 등과 조(祖)자의 묘호를 반대하였다. 이에 왕의 노여움을 사 회양으로 귀양갔다가 1657년에 풀려났다. 이 해에 죽고 사후 신원되었으며, 문경의 소양사(瀟陽祠)에 제향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아들 범재(泛齋) 심대부(沈大孚) 묘

▼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아들 범재(泛齋) 심대부(沈大孚) 묘는 2004년에 경북 상주에서 이곳으로 이장했는데 심대장군 묘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문화재 보호규정으로 인해 묘비를 세우지 못했다는 안내문... 묘비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아들 범재(泛齋) 심대부(沈大孚) 묘비

▼ 심대장군 묘(沈岱將軍墓) 아들 범재(泛齋) 심대부(沈大孚) 묘비

 

▼ 범재(泛齋) 심대부(沈大孚) 배위 광주노씨 묘비

 

▼ 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장군(沈岱將軍墓) 신도비 ... 묘역을 들어서는 마을 입구에 사당과 함께 신도비가 있다.

▼ 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장군(沈岱將軍墓) 사당... 

 

▼ 충장공(忠壯公) 서돈(西墩) 심대장군(沈岱將軍墓) 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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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