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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上院寺) 용문선원(龍門禪院)

 

용문사를 돌아보고 인근에 있는 상원사를 가보려고 했는데 산을 타고 넘기에는 다리가 온전치 않아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미륵불 앞에 차량출입을 통제하는 철문이 있는데 마침 관리인께서 절에 온 사람들을 가려서 차량 출입을 해주고 계시는데 용케도 기도하려 온 사람들을 알아 보시는 듯 문을 열어 주어서 참배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기구한 운명의 유물이 한 점 있다. 양평 상원사 동종이 그것이다. 이 동종은 국보367호에서 하루 아침에 짝퉁으로 몰려 신분이 급락한 유물이다. 지금 상원사 제월당 앞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토요일 복잡할 거라 예상을 했었는데 의외로 한산해서 절간을 천천히 돌아보고 기도도 하고 촛불도 밝히고 소원을 빌고 내려왔다. 사진으로 상원사 용문선원을 소개한다.

 

상원사(上院寺) 용문선원(龍門禪院)
 
상원사(上院寺)는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용문산 중턱 용문사와 윤필암(潤筆庵)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절이 있는 지역인 양평군은 본래 지평군으로서 1908년 양평군에 편입되었고, 다시 1914년에 연안리와 장수리가 합쳐져 연수리가 되었던 곳입니다.
절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창건사실 뿐만 아니라 절의 모든 역사를 적고있는 기록은 현대 이전까지 거의 없습니다. 절에 대한 최초의 기록도 용문산 주변의 사찰과 마찬가지로 고려 말엽 이후 조선 전기의 기록 일부가 전부이고 그 밖에는 20세기 이후 있었던 몇 차례 중수에 관한 기록뿐입니다.
용문산이 영험 있는 깨달음의 땅으로 주목 받는 것은 태고 보우의 12가지 서원 이후로, 무학대사가 부도암에서 오도를 체험했고 조선 후기에는 관세음보살이 서기 방광한 곳으로 유명하다”라고 했으며, 무학대사(1327~1405)는 조선 이태조의 왕사를 지내면서 많은 일을 했고 나옹 선사의 법을 이었습니다.
1398년 왕사를 사양하고 용문산 용문사 또는 상원암 에 들어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1402년 왕명으로 회암사로 옮기기까지 4년 동안 용문산에 주석하였습니다. 1403년 다시 사퇴하고 금강산 금강암에서 입적하신 것을 보아서는 1398년 왕사를 사임하고 용문산에 들어왔으면 조용한 수행처인 상원사에 주석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있습니다.
조선이 개국 된지 얼마 안 된 1398년(태조 7)에 상원암은 조안(祖眼)스님에 의해 중창 되었다고 합니다. <용문산정지국사비>에 의하면 조안스님은 1378년(우왕) 이곳에 대장전을 짓고 대장경을 봉안한 정지국사(正智國師) 지천(智泉, 1324~1395)스님의 제자로 이곳에 와서 1395년에 용문사를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 절의 규모가 어떠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당시 고승들이 머문 사실과 용문사와의 관계에서 상원암의 사세도 대체로 그러하였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 조선시대 초기 절의 사세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당시 불교를 배척하는 시책을 폈던 세종이 구병수륙재(救病水陸齋)를 이곳에서 베풀었다는 것, 세종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이 범종을 만들어 보시하였다는 것, 그리고 세종의 아들인 세조가 절에 행차하여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절을 중창하였다는 것  등입니다. 이때 어떻게 절에서 구병수륙재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1450년(세종 32) 1월 24일 정효강(鄭孝康)을 이곳에 보내 구병수륙재를 베풀었던 것은 절의 사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절의 역사는 조선 초기에 집중되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종의 둘째이자 세조의 백부인 효령대군에 의해 사세가 확장되면서부터 입니다. 《단종실록》에 의하면 1452년(단종 즉위년) 10월 13일에 효령대군은 공장(工匠)을 별서(別墅, 농장)에 모아서 동철로 범종을 만들어 절에 보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효령대군이 종을 만든 별서는 아마도 상원암 근처인 미지산(용문산) 아래에 있었다는 농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뒤 세조 역시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는데, 이때의 정황이 최항(崔恒, 1409~1474)이 쓴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에 보이고 있습니다. 《관음현상기》는 세조가 그의 비와 세자와 함께 경기도를 순행하다가 효령대군의 원찰이었던 상원사를 들르게 되었을 때 백의관세음보살이 나타나심을 보게 되고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게 한 것입니다. 즉 세조가 절에 들렀을 때 백의의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고 상서롭고 아름다운 빛과 음악이 들리다가 한참 후 흩어졌다고 합니다. 감격한 세조는 절에 쌀 200석을 하사하고 내관으로 하여금 향을 봉안토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양으로 돌아와서는 죄인들을 사면시키고 정부 관원들은 축배를 들어 경하하였고 훈부(勳府)에서는 상원사에 불상을 만들어 건물에 봉안토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관음보살상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또한 신숙주•홍응(洪應)•전균(田畇)을 상원사에 보내 다시 깊이 공양하였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관음보살의 현신(現身)은 세조가 더욱 선정을 베푸는데 있어 하나의 큰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상원사 용문선원 홈페이지 상원사 연혁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전통사찰 제49호
문화재명칭 상원사(上院寺) 용문선원(龍門禪院)
소재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220-5
관리자(연락처)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奉先寺)의 말사 상원사

 

▼ 상원사(上院寺) 용문선원(龍門禪院) 대웅전 전경

▼ 상원사(上院寺) 입구에는 미륵전이 있다.(관광공사에서 인용)

▼ 상원사(上院寺) 전경... 뒤쪽으로 용문산 정상이 보인다.

▼ 상원사(上院寺) 대웅전

▼ 상원사(上院寺) 대웅전 앞 3층석탑... 석재 재질이 특이하다.

▼ 상원사(上院寺) 대웅전

▼ 상원사(上院寺) 대웅전 부처님...

▼ 상원사(上院寺) 안내판

▼ 상원사(上院寺)는 양평의병 활동 무대가 되어 일제에 의해 전소가 되었다. 

▼ 상원사(上院寺) 종무소로 쓰이는 제월당...

▼ 상원사(上院寺) 제월당 현판... 현판 글씨는 봉선사 주지 한암 정수(閑庵 正修)스님이 쓰셨다.

▼ 제월당 반대편에는 청운당이 있다.

▼ 상원사(上院寺) 산신각 원경...

▼ 세조가 이곳을 방문해서 친견했다는 백의관세음보살 그림... 

▼ 상원사(上院寺) 삼성각...

▼ 삼성각 앞에 놓인 부처님...

▼ 상원사(上院寺) 삼성각에서 바라본 양평...

▼ 상원사(上院寺) 제월당은 'ㄱ'자 건물이다.

▼ 상원사(上院寺) 제월당 측면... 주련에 한글로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 상원사(上院寺) 동종... 비운의 문화재이다.

▼ 상원사(上院寺) 동종... 국보 367호에서 하루 아침에 짝퉁으로 전락해서 신분이 급전직하 된 문화재이다.

▼ 상원사(上院寺) 동종의 재심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국보에서 '짝퉁'으로···‘상원사 종’의 재심을 청구한다

원문보기:http://photo.khan.co.kr/khan_index.html?artid=201810091416011&code=960100#csidx555c07bb8c92fe8b10438f2df4f45cb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국보에서 '짝퉁'으로···‘상원사 종’의 재심을 청구한다

상원사 동종이라고 하면 강원 평창 오대산의 상원사에 있는 국보(제 36호)를 쉽게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경기 양평 용문산(해발 1069m)에도 또다른 상원사가 있으며, 그 용문산 상원사에도 한 때��

news.khan.co.kr

▼ 상원사(上院寺) 동종 연혁

▼ 상원사(上院寺) 선방

▼ 상원사(上院寺) 부도

 

상원사(上院寺)는 절간이 아늑하고 가람을 잘 가꿔놓아 무척 정감이 가는 곳이다.

이곳은 관세음보살을 세조가 친견한 곳으로 유명하다.

기도처로 이름난 곳이므로 한 번 쯤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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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