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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유적지 답사

율곡선생 묘, 자운서원을 여러번 다녀왔는데 블로그에 기록이 누락되어 이번에 학우님들과 다시찾은 율곡유적지 사진으로 포스팅한다. 율곡유적지는 상당히 넓은 터에 율곡기념관, 가족묘지, 자운서원 등이 있고 조금 떨어진 임진강가에 화석정이 있다. 
유적지 넓이 만큼이나 사진의 양도 많아서 사진을 보면서 답사를 함께한다.

파주 이이 유적 (坡州 李珥 遺蹟)


이 곳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경세가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선생의 유적지 이다. 선생의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ㆍ우재(愚齋), 본관은 덕수(德水)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출생했다.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장원한 이후 모두 아홉차례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으로 불렸으며 대사간, 대사헌, 대제학, 형조ㆍ 병조ㆍ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선생은 조선 유학계에 이황(李滉)과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학자로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했고 당쟁의 조정, 10만 대군의 양성, 대동법, 사창실시 등에 노력하였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며 문묘에 배향되었다.
유적지내에는 율곡 선생을 비롯한 가족묘역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자운서원이 자운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가족묘역에는 율곡 선생과 부인 곡산노씨묘를 비롯해 부모인 이원수와 신사임당 합장묘, 선생의 형 이선 묘, 아들 이경림 묘 등이 중심묘역을 이루며 그 외의 가족묘 등 모두 14기가 조성되어 있다. 
자운서원은 조선 광해군 7년(1615)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어 효종 원년(1650) ‘자운(紫雲)’이란 현액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으로 숙종 39년(1713)에 선생의 제자인 김장생(金長生)과 박세채(朴世采) 선생을 추가로 모셨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1970년 유림의 기금과 국가지원을 받아 복원하였다. 
이외에도 숙종 9년(1683)에 건립된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 廟庭碑)’와 ‘이이선생 신도비’ 유적 등이 있으며 율곡 선생의 유품 및 일대기를 전시한 율곡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1973년 자운서원, 율곡이이묘, 신사임당묘가 각각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2월 율곡이이 관련 유적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장소성이 인정되어 국가사적 제525호“파주 이이 유적”으로 승격되었다. 


<자운서원>
이 서원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7년(1615)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들로 인하여 창건되었다. 효종(孝宗) 원년(1650)에 '자운(紫雲)'이라 사액을 받았으며, 그 뒤 숙종(肅宗) 39년(17B)에 그의 후학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 1632∼1695) 두분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나 조선후기인 고종(高宗) 5년(1868)에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빈터에 묘정비(廟庭碑)만 남아 있다가 1970년 유림의 기금과 국가지원을 받아 복원하였고 1973년 경내 주변을 정화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팔작지붕으로 된 사당(祠堂)과 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담장 밖에는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높은 대지 위에 세워졌다. 최근에 사당 전면에 강당과 동재, 서재, 협문, 외삼문을 신축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사당 내부에는 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모셨으며 매년 음력 8월 중정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자운서원묘정비>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 廟庭碑)는 자운서원의 역사를 적은 비로 자운서원의 자운문 밖 우측에 위치해 있다. 이 비는 자운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한편 자운서원의 건립내력을 기록하고 있다.비의 받침돌은 2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아랫단은 두꺼운 판석 4장으로 짜 맞추어 지대석(地臺石)을 만들고 그 위에 사각의 비좌(碑座)를 놓았는데 복련문(覆蓮紋)이 새겨져 있으며 측면에는 연주문(蓮珠紋)과 괴운문(怪雲紋)이 조각되어 있다.비문은 예서체로 되어있는데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짓고 당대의 명필인 곡운 김수증(谷雲 金壽增)이 썼으며 비명은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비의 상단에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廟庭碑)’라는 전액(篆額-머리글)이 쓰여져 있으며 비문 끝의 ‘숭정56년 계해(崇禎五十六年癸亥)’라는 연기로 보아 비의 건립연대가 숙종 9년(1683)임을 알수 있다.


<율곡이이묘>
조선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묘이다. 이이는 중종 31년(1536)에 강릉 북평촌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6세에 어머니 신사임당과 함께 서울 본가로 올라와 어머니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명종 3년(1548) 13세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이후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29세에 호조좌랑에 처음 임명된 이후 황해감사, 대사헌,대제학, 호조, 병조,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견해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주장하였으며,대동법 실시와 사회제도의 개혁에 노력하였다. 학문에 있어서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룬 유학자로 근본원리를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학문연구의 태도로 삼았으며, 학문을 이론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책으로 민생과 국가 재정 문제에 적용하려고 하였다. 선생의 저서로는《성리설》,《성학집요》, 《격몽요결》등이 있다. 현재 묘역에는 선생의 묘와 부인 곽산노씨의 묘가 위·아래로 인접해 있으며, 묘 오른쪽에는 묘비가 있고, 좌우로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한 쌍씩 있는데, 이이의 명성에 비해 소박하고평범한 묘제 형식이다. 후대에 묘비 1기가 추가되었으며, 신사임당 묘를 비롯하여 가족 묘 13기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신사임당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이자 율곡이이(李珥)의 어머니인 신사임당(1504∼1551)의 묘소이다. 묘는 남편 이원수(李元秀)와 합장묘이다. 신사임당은 조선 연산군 10년(1504)에 강릉에서 진사(進士) 신명화(申命和)의 무남 5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19세 때 이원수에게 출가하였는데 친정에 아들이 없어서 남편에게 동의를 구한 뒤 친정에 머물렀다. 그 후 시댁의 오랜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서 생활하기도 하였고 38세가 되어서 서울 수진방 시댁에서 시댁살림을 주관하고 슬하에 4남 3녀를 둔 다복한 생활을 하였다. 본명은 신인선(申人善)이고 사임당은 당호(堂號:이름대신 허물없이 부르거나 쓰기 위해 지은이름)로써, 최고의 여성상인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사임당은 어려서 경전(經典)에 능통하였으며, 7세 때 이미 산수도(山水圖), 포도도(葡萄圖)를 그렸는데, 여성적인 섬세함과 정교함을 발휘하는그의 화풍은 따를 자가 없었고, 필법(筆法)도 능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이와 같은 대정치가이자 대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서, 남편을 잘 보필한 아내로서, 그리고 교양과 학문을 갖추고 천부적 소질을 발휘한 예술가로서 우리나라 현모양처의 본보기로 평가되고 있다. 묘역은 봉분 앞 중앙에 묘비가 있고 묘비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일렬로 놓여있고 좌우에는 키작은 문인석 1쌍이 자리잡고 있다. 후에 새로 세운 까만 돌(烏石)로 만든 묘비 1기가 묘 뒤편에 있으며, 상석 앞부분은 화강암 바닥으로 단장하였다.


<율곡이이신도비>
율곡이이 신도비는 자운서원 경내의 좌측 산기슭에 세워져 있는데 조선 중기 대학자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이다. 이 신도비는 율곡선생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난 인조 9년(1631) 4월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이항복(李恒福)이 짓고 신익성(申翊聖)이 썼으며 전액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비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앞뒷면에 걸쳐 각자(刻字)되어 있는데 앞면에 몇 군데의 총탄 흔적이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223cm, 너비 109cm, 두께 39cm이며 현재 비각을 지어 보호하고 있다.

<파주시청 문화관광홈페이지에서 인용>


화석정(花石亭)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61호.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초익공(初翼工)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말기의 문신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였다. 1443년(세종 25)에 이명신(李明晨)이 건립하였고 1478년(성종 9)에 이숙함(李淑瑊)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명신의 증손인 이이(李珥)가 중수하여 퇴관(退官) 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시를 지으며 학문을 논하고 이(理)를 구(究)하니,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정자를 찾아와 음시(吟詩), 청유(淸遊)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장단(長湍) 쪽을 향하였는데 바로 밑을 흐르는 임진강을 굽어볼 수 있고,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면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五冠山)이 아득하게 보인다. 정자 안에는 ‘화석정중건상량문’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숙함의 정기(亭記)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별서(別墅)인 평천장(平泉莊)의 기문(記文) 중에 보이는 ‘화석(花石)’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80여 년 동안 터만 남아 있었다가 그 뒤 이이의 후손들이 1673년(현종 14) 중건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된 것을 1966년 파주(坡州) 유림(儒林)이 성금을 모아 복원하였다.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申師任堂)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화석정이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사적 제525호
문화재명칭 파주 이이 유적 (坡州 李珥 遺蹟)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자운서원로 204
관리자(연락처) 파주 이이유적 031-958-1749

 

▼ 율곡선생유적지 입구... 입장료 1000원을 받고 있다.

 

▼ 율곡선생유적지는 사적 525호로 지정되어있다. 

 

▼ 율곡선생과 신사임당 동상... 사직공원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 율곡선생 신도비

 

▼ 율곡선생 신도비... 아래 평지가 있는데도 가파른 언덕에 세운 뜻이 있을까? 묘역과도 떨어진 곳에... 

 

▼ 율곡선생신도비 

 

▼ 율곡선생 신도비는 높은 곳에 있다보니 유난히 총탄의 흔적이 많다. 

 

▼ 율곡선생 신도비 

 

▼ 율곡기념관 

 

▼ 율곡기념관에서 바라본 율곡선생 묘역... 묘역의 산이 담장을 두른듯 하다.  

 

▼ 율곡선생 가계도 

 

▼ 율곡선생 묘역 삼문인 여견문... 

 

▼ 율곡선생 가족묘역 

 

▼ 율곡선생 가족묘역... 율곡기념관에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 율곡선생 묘역 오르는 길 

 

▼ 율곡선생 묘역... 맨 앞쪽에 보이는 묘가 율곡선생 장남 이경림 묘 

 

▼ 이원수와 신사임당묘... 우리는 그냥 신사임당묘라고 부른다.ㅎ 

 

▼ 신사임당 묘... 

 

▼ 신사임당 묘 전경

 

▼ 신사임당 묘... 뒤로 보이는 묘가 큰아들 이선, 맨 위가 이이 묘.

 

▼ 신사임당 묘비

 

▼ 신사임당 신 묘비에는 사임당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신사임당 묘역이 비교적 검소하게 꾸며져 있다.

 

▼ 신사임당 묘 후경

 

▼ 율곡선생 묘 안내문...

 

▼ 율곡선생 묘 전경

 

▼ 율곡선생 묘비

 

▼ 율곡선생 묘 뒷면...

 

▼ 율곡선생 묘 망주석과 문인석...

 

 

 

▼ 율곡선생 묘 석물

 

▼ 율곡선생 묘는 부인 곡산노씨묘와 상하합장으로 이뤄져있다.

 

▼ 율곡선생 묘 후경... 앞쪽이 잘 관쇄되어 있다. 그러나 율곡선생 묘는 너무 높게 점혈되어 있다.

 

▼ 율곡선생 장남 이경림 묘 

 

▼ 율곡선생 장남 이경림 묘표 

 

▼ 율곡선생 큰형 이선 묘 

 

▼ 율곡선생 형 이선 묘비 

 

▼ 이선 묘 후경 

 

▼ 율곡선생을 모신 자운서원 안내문.. 

 

▼ 자운서원 원경... 

 

▼ 자운서원 외삼문인 자운문...

 

▼ 자운서원 강당과 동재, 서재

 

▼ 자운서원 강당

 

▼ 자운서원에 있는 450여년 된 느티나무

 

▼ 자운서원 묘정비 안내문...

 

▼ 자운서원 묘정비와 뒤로 보이는 사당...

 

▼ 자운서원 묘정비

 

▼ 자운서원 사당 문성사...

 

▼ 화석정 안내문

 

▼ 화석정 전경

 

▼ 화석정 앞 임진강 건너 아름다운 터...

 

▼ 화석정 건너 장단면의 산과 들판의 조화... 너무 아름답다

 

▼ 지금은 민통선 안쪽이어서 못들어가는데... 개방이 되거나 땅을 소유할 수 있거든 이곳에 터를 잡을 만 하다. 

 

▼ 화석정에 세워진 임진 8경... 

 

▼ 화석정에 붙여져 있는 율곡이 8세때 쓴 시... 

 

▼ 율곡이 8세에 지었다는 화석정시... 

화석정은 지난번에 포스팅한 것이 있어서 이번에는 율곡유적지에 포함하여 올린다.

풍수적인 해설을 곁들여야 하는데 너무 사진이 많아서 많은 부분을 생략한 체 올리니 이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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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