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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를 그렇게 많이 드나들었지만 본찰 외에 간곳은 도솔암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번에 도솔암을 다녀오다 길목에서 참당암 표지석을 보고 무작정 찾아들었다.

참당암의 절 이름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참(懺)이라는 한자어가 우리가 즐겨쓰는 글자도 아니고 참회(懺悔)한다는 글자이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 절 이름에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곳'이라는 뜻을 일부러 포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들어오면 내가 저지른 작은 죄 조차도 모두 참회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속 깊숙히 암자가 있어서 작은 암자로 생각하고 찾았으나 산중 안으로 들어서니 엄청나게 너른 터가 나오고 그곳에 암자라 하기에는 상당한 규모의 절간이 보였다. 평일이라 신도들은 보이지 않고 잡초제거하는 제초기 소리만 정오의 적막한 사찰을 활기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참당암은 원래 대참사, 참당사 등으로 불린 큰 사찰이었는데 후에 선운사가 커지면서 부속 암자로 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대웅전도 상당히 커서 일반 사찰 규모 이상으로 보인다.

깊은 산중에 천년을 버티며 세인의 눈에는 잘 띄지도 않은 체 참선의 도량을 유지한 암자에 깊은 감동을 받고 왔다.

 

선운사 참당암(禪雲寺懺堂庵)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산내암자이다. 이전에는 대참사(大懺寺)·참당사(懺堂寺) 등으로 불렸으며,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627년(진평왕 49)에서 649년(진덕여왕 3) 사이에 의운조사(義雲祖師)가 창건하였고, 1329년(충숙왕 16)에 상량(上良)이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며, 1530년(중종 25) 일헌(一軒)이 중수하였다. 1623년(인조 1) 익순(益順)이 정문을 중수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으로 불타자 1642년 숭인(崇印)이 중건하였다. 1713년(숙종 39) 회징(會澄)이 부속암자인 몽성암(夢醒庵)을 중창하였고, 1730년(영조 6) 배극(倍極)이 안양암(安養庵)을 중창하였다. 1754년 청원(淸元)과 삼익(三益)이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삼익과 찬명(贊明)이 정문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4년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약사전, 산신각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 있었던 1992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참당암동종은 현재 선운사성보박물관에 있다. 약사전 안에는 2019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지장보살좌상(石造地藏菩薩坐像)이 있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옥석(玉石)으로 만들었으며, 의왕불좌상(醫王佛坐像)이라고도 한다. 오른손에 약병을 들고 있는 대단히 희귀한 불상으로, 이 절의 창건 시 인도로부터 왔다는 전설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지정 대웅전:보물 제803호, 석조지장보살상:보물 제2031호
문화재명칭 선운사 참당암(禪雲寺懺堂庵)
소재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605
관리자(연락처)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산내암자

 

 

▼ 선운사 참당암(禪雲寺懺堂庵) 전경...

 

고창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高敞禪雲寺懺堂庵大雄殿):보물 제803호

선운사에 속해 있는 암자인 창당암의 대웅전이다.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절을 세웠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 고승 검단선사가 지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불에 탄 것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광해군 11년(1619)에 끝을 맺었는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운사에는 원래 많은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동운암·석상암·참당암·도솔암만 남아 있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은 의문화상이 신라 진평왕의 부탁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여러 차례 수리를 거친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시대의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앞면에 짜인 공포는 전형적인 18세기 다포 양식을 보이고 있는 반면, 뒷면은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건물을 수리할 때 고려시대의 부재를 재활용한 것이라 짐작한다.
고려시대 다른 건축물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문화재청>

 

▼ 고창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高敞禪雲寺懺堂庵大雄殿):보물 제803호

 

참당암동종 (懺堂庵銅鐘):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36호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 안에 있는 입 지름 50㎝의 조선시대 범종이다.
종을 매다는 용뉴는 용이 네발을 종에 대고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다. 어깨부위에는 둥근 원으로 띠를 두르고, 원안에 범자를 양각하였다. 몸통 위쪽으로는 직사각형으로 외곽을 두른 보살입상을 4면에 주조하였고, 그 사이에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을 배치하였다. 유곽의 테두리는 빗살무늬로 장식하였고, 내부에는 꽃모양을 한 4개의 유두가 있다. 보살상 아래쪽으로는 간격을 두고 굵게 두 줄의 테가 돌려져 있고, 그 사이에 명문판이 불규칙하게 주조되어 있다. 입구 부분에는 빗살무늬를 새겼다.<문화재청>

 

▼ 참당암동종 (懺堂庵銅鐘):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36호... 한차례 도난 당하는 어려움을 겪은 뒤 현재는 선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 참당암 지장전

 

선운사참당암석조지장보살상(禪雲寺懺堂庵石造地臧菩薩像):보물 제2031호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고려 말~조선 초에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으로, 특히 불교회화에서 많이 그려진 도상이다.
온화한 표정과 불룩한 입술, 양쪽에서 드리워져서 여의두(如意頭) 형태로 마무리 진 띠 장식, 둥근 보주(寶珠)를 든 모습, 그리고 가슴에 들려진 띠 매듭 등은 고려 말기 보살상 양식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띠로 묶어 주름잡은 섬세한 두건의 표현 등이 조형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보주를 든 두건 지장의 정확한 도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여말 선초의 지장 신앙 및 지장도상 연구에 귀중한 사례이다. 이 시기 금동과 목조로 제작된 지장보살상은 몇 점이 전하고 있으나, 석조로 제작된 지장보살 중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사례는 참당암 지장보살좌상이 거의 유일하다.
대좌의 경우 보살상과 함께 조성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상․중․하대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고 가늘고 긴 형태, 여의두문(如意頭文)이 새겨진 안상(眼象) 등에서 고려 중기의 시대적 특징이 뚜렷하므로 함께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할 가치가 있다.<문화재청>

▼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상(禪雲寺懺堂庵石造地臧菩薩像):보물 제2031호

▼ 선운사 참당암 응진전과 명부전... 내부 수리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 참당암 산신당... 최근에 준공한 당우이다.

▼ 선운사 참당암 우물...

▼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안산... 좌측 천왕봉, 우측 개이빨산... 천왕봉 뒤로 낙조대가 보인다.

▼ 선운사 참당암 종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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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