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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및 석탑

 

당진 답사를 하면서 고려시대 석불입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나섰다. 폐사지가 본디 그러하듯 이곳도 황량하기 그지 없고 허허벌판에 석불입상과 석탑만이 축대 위에 높게 올라서 있다. 석불입상은 은진미륵불처럼 머리에 보개를 얹고 있다. 돌아오면서 안전답사를 기원하였다.

안국사지는 당진시내에서 서남쪽으로 10.5km 떨어진 정미면 수당리 원당굴 은봉산 중턱에 있는 절터이다. 안국사지 석불에서 서남쪽으로 500m쯤 채석장을 끼고 올라가면 1,000여 평의 터가 남아있다. 안국사터의 앞면은 돌로 축대를 쌓았고 터 안에는 장대석이 이리저이 나뒹굴고 주춧돌 3개가 보인다. 이 주춧돌들은 자연석이 아니라 양각 형태로 잘 다듬어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빈 터 한쪽에 작은 옹달샘이 있고, 그 뒤쪽으로는 부속건물이 있었음직한 터에 기와조각이 흩어져 남아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해미현조에 보면『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창건연대는 문헌에 나타나 있지않아 분명치 않으나 백제 말엽 창건되어 고려 시대에 번창한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폐찰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석불, 석탑, 석축, 배바위돌 하수구 등이 현존하여 사찰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터의 동북쪽으로 500여m쯤 아래쪽에 보물 석불입상과 보물 석탑이 서 있고 그 뒤로 배바위 매향암각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대한민국구석구석>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 : 보물 제100호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안국사지 경내에 있다.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무릎 아랫부분이 매몰되어 있었으나 2004년 충청남도역사문화원의 발굴조사를 통해 불상의 발과 대좌가 모두 확인되었다.
중앙의 본존불상은 머리와 신체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대형 석불입상이다. 머리 위에는 화불이 장식된 보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보관 위에 방형의 보개가 있다. 본존불상의 이마에는 백호가 있는데 백호 위에 또 다른 원형의 구멍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우협시 보살상은 머리에 인동당초문 형태의 초문(草紋)이 장식된 비교적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으며 이마와 보관 사이에는 반원형의 머리카락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좌협시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파손되어있으며 현재 파손된 보관만이 몸통 위에 놓여 있다. 좌협시 보살상의 복부에는 리본 형태의 띠 매듭이 새겨져 있다. 좌협시 보살상의 모습은 수인의 손 위치가 다른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우협시 보살상과 동일한 모습이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에서 주목되는 형식적 특징은 본존불상이 방형의 보개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는 고려 광종대 조성된 불상에서 처음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을 들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당진 안국사지 석탑(唐津安國寺址石塔) : 보물 제101호
 
보물 제101호. 높이 3m. 받침돌은 단층으로 구성되었다. 자연석처럼 보이는 2장의 길고 큰 돌이 땅 위에 있다. 이 돌은 하대석(下臺石)으로 보이는데, 윗면에는 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면석 역시 자연석처럼 보이는 1장의 돌로, 모서리 기둥이나 가운데 기둥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덮개돌은 2장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있고 윗면에는 굄이 있지만, 그 표현은 매우 형식적이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았는데, 현재 1층 몸돌과 1~4층의 지붕돌만 남아 있다. 1층 몸돌에는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여러 조각이 새겨져 있다. 곧 3면에는 여래좌상(如來坐像)이 1구씩 배치되었지만, 나머지 1면에는 문비(門扉)가 조각되어, 사방불(四方佛)의 기본적인 모습은 갖추지 못하였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넓은 편으로, 처마 전체가 곡선을 그리고 있다. 밑면 받침은 4단인데, 추녀 끝에서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새겨져 있다. 이로 인해 추녀 끝의 반전(反轉)은 특히 심해 보인다.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졌다.
이 석탑은 받침 부분의 구조가 매우 간략하지만, 특이하게도 1층 몸돌의 3면에 여래상이 조각되어 있다. 단층의 받침돌, 지붕돌 밑면의 심한 반전, 여래상의 조각 양식 등에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규모로 보아, 원래는 몸돌과 지붕돌을 5층으로 올렸던 것으로 짐작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지정 석불입상:보물100호, 석탑:보물101호
문화재명칭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탑
소재지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골1길 188 (정미면)
관리자(연락처) 당진시청

 

▼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 : 보물 제100호

▼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이 있는 곳에 암자가 들어서 있다.

▼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석탑

▼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석탑

▼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석탑 안내판

▼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

▼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 전면, 후면

▼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은 안산의 멋진 사격을 바라보고 있다.

▼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 확대

▼ 당진 안국사지 석탑(唐津安國寺址石塔) : 보물 제101호

▼ 당진 안국사지 석탑(唐津安國寺址石塔)

▼ 당진 안국사지 석탑

▼ 당진 안국사지 석탑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唐津 安國寺地 埋香岩刻) : 충청남도 기념물 제163호
 
매향(埋香)이란 미래에 하생할 미륵불의 용화회에 공향할 침향을 마련하는 신앙 활동이다. 연해의 지방민들이 매향을 행하고 이를 바위나 비석에 기록한 것이 매향 암각과 매향비다. 당진의 안국사지 석조삼존불입상(보물 제100호) 뒤편에는 배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 전면의 양 측면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매향 사실이 음각되어 있다. 배바위 오른쪽에는 ‘경술십월일 염솔서촌출포 □목향매치(庚戌十月日 鹽率西村出浦 □木香埋置)’라는 명문이 있다. 배바위 왼쪽에는 ‘경오이월일 여미북천구 포동제매향 일구 화주각선 결원향도(庚午二月日 余美北天口 浦東際埋香 一丘 化主覺先 結願香徒)’라는 내용이 음각되어 있다. 매향 암각문 중 경오년의 연대에 대해서는 고려 전기로 보는 견해와 고려 후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고려 전기로 보는 견해는 경오년을 970년(광종 21) 혹은 1030년(현종 21)으로 추정한다. 이에 반해 고려 후기로 보는 견해는 경오년을 1270년(원종 11), 1330(충혜왕 1), 1390년(공양왕 2) 중 하나로 상정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唐津 安國寺地 埋香岩刻) : 충청남도 기념물 제163호

▼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唐津 安國寺地 埋香岩刻)이 새겨진 배바위

▼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唐津 安國寺地 埋香岩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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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