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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 (唐津 솔뫼마을 金大建神父 遺蹟)

 

당진 답사를 하면서 솔뫼마을이 있어서 뭔가하고 찾아봤더니 천주교 성지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신 김대건신부의 생가가 있는 곳이라한다. 원래 묘지답사를 위주로 계획한 답사지만 문화유산도 자주 가는데 주로 절간 위주로 갔었다. 간간히 성당도 가긴 하지만 당진에 김대건신부 생가가 있는 건 이번에야 알았다.

김대건(金大建)은 한국인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이자 순교자로, 세례명은 안드레아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다. 이곳 솔뫼성지에는 생가가 복원되었는데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이곳에 들러 기도하는 모습이 조각으로 전시되어 있다. 생가 뒤편으로 소나무밭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소나무밭 둘레로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예수님의 고행의 길이 재현되어 있다.

이곳에는 여러 시설이 있는데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모두 문을 굳게 닫고 있어서 내부를 돌아볼 수 없었다. 최근에는 김대건신부 200주년을 맞아 '기억과 희망'을 건축하였다. 성당과 문화공간을 함께 어우르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 (唐津 솔뫼마을 金大建神父 遺蹟) : 사적 제529호
 
Ο 우리나라 천주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신부(1821~1846년)를 비롯하여 김대건신부의 증조할아버지(김진후), 작은할아버지(김종한), 아버지(김제준)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으로 전해짐
Ο 1836년에 작성된 김대건신부의 신학교 입학 서약서에는 김대건신부의 출생지가 ‘충청도 면천 솔뫼’로 기록되어 있는데, ‘솔뫼’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松山)‘이라는 뜻에서 유래하며 현재의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 위치하고 있음
Ο 이 유적에는 2004년 복원된 김대건신부 생가와 김대건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1946년 세워진 순교복자비, 김대건신부 동상, 울창한 소나무 숲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김대건신부 기념관, 야외 성당 등이 조성되어 있어 김대건신부의 발자취와 생애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음
Ο 아울러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발생한 천주교 전래와 사상과 신앙의 자유에 대한 박해과정 등을 집약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종교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사상적 변천을 반영하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됨<문화재청>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다.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종한(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의 신앙이 싹튼 곳이며,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김대건은 이곳(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다. 그러나 이미 증조부와 종조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고 또 어느 새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조부 김택현은 김대건이 7세 무렵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했다.
김대건은 그곳에서 16세 때인 1836년 모방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뽑혀 최양업(토마스)와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신품을 받았다. 1845년 입국한 김신부는 선교 활동에 힘쓰는 한편, 동료 최양업 부제와 외국선교사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힘쓰다 1846년 6월 5일 체포되었다.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만의 일이었다. 1859년 9월24일 가경자, 1925년 7월5일 복자품,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려졌다. 김신부는 조선 최초의 방인 사제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였다. 또한 우리니라 최초의 서양학 유학생이며 조선의 최장거리 여행자이기도 하다. 1845년 초 우리나라 조선전도를 만들었다. 저서로는 22편의 서한이 있고, 한국 교회사에 관한 비망록 등이 있어 79위 시복자료가 되었다. 대전교구에서는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김신부 생가 복원을 결의하고 2004년 9월 22일 생가 안채 복원을 완성하였다.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는 성 김대건신부 생가터를 충남 지방문화재 제146호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2005년 10월에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완공하였다.
2014년 5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 사적지 제529호로 등록되었고 2014년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제3회 한국청년대회가 대전교구에서 개최되면서 이 기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시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솔뫼성지에서 가지게 되었다.<솔뫼성지홈페이지>


김대건(金大建)
 
본관은 김해(金海). 세례명은 안드레아. 초명은 재복(再福), 보명(譜名)은 지식(芝植). 충청남도 당진 출신. 아버지는 김제준(金濟俊)이다.
증조부 김진후(金震厚)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하자, 할아버지 김택현(金澤鉉)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함에 따라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신자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1836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Maubant, P.)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 최방제(崔方濟)·최양업(崔良業)과 함께 15세 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巴里外邦傳敎會東洋經理部)로 가게 되었다. 그 곳 책임자인 신부 리부아(Libois, N.)의 배려로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의 교육을 마친 뒤 다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 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주교 페레올(Ferreol, J. J .J. B.)의 지시로, 동북국경을 통하는 새로운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남만주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땅에 잠입했으나 여의치 못하여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그 동안에도 꾸준히 신학을 공부하고, 1844년에 부제(副祭)가 되었다.
그 해 말에 서북국경선을 돌파하고, 1845년 1월 10년 만에 귀국하였다. 서울에 자리잡은 뒤 박해의 타격을 받은 천주교회를 재수습하고, 다시 상해로 건너가서 완당신학교(萬堂神學校) 교회에서 주교 페레올의 집전하에 신품성사(神品聖事)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같은 해 8월에 주교 페레올, 신부 다블뤼(Daveluy, M. N. A.)와 서울에 돌아와서 활발한 전교활동을 폈다. 1846년 5월 서양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하다가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뒤 문초를 통하여 국금(國禁)을 어기고 해외에 유학한 사실 및 천주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임이 밝혀졌다.
이에 정부는 그에게 염사지죄반국지율(染邪之罪反國之律)을 적용,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선고하고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의 시체는 교인들이 비밀리에 거두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에 안장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수선탁덕(首先鐸德: 첫번째의 성직자라는 칭호)이라 불리는 김대건의 성직자로서의 활동은 1년 여의 단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국인 성직자의 자질과 사목능력을 입증하여 조선교구의 부교구장이 되었고, 투철한 신앙과 신념으로 성직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그를 성직자들의 대주보(大主保)로 삼고 있다. 1925년 로마교황 비오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2019년 11월 유네스코는 제40차 총회에서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확정했다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하였고, 영국제의 세계지도를 번역, 색도화(色圖化)해서 정부에 제출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지정 사적 제529호
문화재명칭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 (唐津 솔뫼마을 金大建神父 遺蹟)
소재지 충청남도 당진시 솔뫼로 132 솔뫼성지
관리자(연락처) 천주교 대전교구 솔뫼성지(041-362-5021~2)

 

▼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 (唐津 솔뫼마을 金大建神父 遺蹟) : 솔뫼성지

솔뫼성지는 한국최초의 사제(司祭) 성(聖)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탄생지(誕生地)이다.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대전교구가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추진해 온 솔뫼성지 천주교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이 7월 20일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에서 문을 열었다.
교구는 이날 오전 11시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성당에서 교구장 유흥식 대주교가 주례하고 한국 주교단이 공동집전한 유흥식 대주교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 감사미사에서 천주교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Memoria et Spes) 축복식을 거행했다.
교구는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총 공사비 130여억 원을 들여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 일원 2만2365㎡ 규모의 부지에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을 조성했다. ‘기억과 희망’은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방한해 아시아 청년들과 만났던 솔뫼성지 현장에 건립됐다.
‘기억과 희망’은 기억과 희망 성당과 예술 공연장, 전시관, 회랑 등으로 이뤄진 연면적 4752.51㎡ 규모의 복합예술관과 전시실 보조동,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됐다. 가운데에 400석 규모의 기억과 희망 성당이 배치됐으며 좌우에 전시실 두 곳이 마련됐다. 특히 소규모 실내 행사뿐만 아니라 대규모 행사시에는 건물을 개방해 외부 광장까지 객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붕은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사목표어인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에서 영감을 얻어 장미 꽃잎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박해로 인한 피와 땀이 오히려 신앙의 꽃을 피워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건설하자는 의미를 담아 크고 작은 13개의 들장미 꽃잎을 지붕 형태의 덮개로 올렸다.
솔뫼성지 전담 이용호 신부는 “현대는 문화의 시대이므로 복음화의 노력도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기억과 희망’이 인문학, 예술과 영성의 찬란한 꽃을 피워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복합예술공간‘기억과 희망’ 조성 사업은 대전교구와 당진시를 주축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충청남도 등 민관과 지자체가 긴밀한 협력 체제 속에서 이뤄낸 성과다. 특히 당진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솔뫼성지 방문 후 순례객들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역사와 문화 체험 공간, 종교 관광지로서 솔뫼성지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카톨릭신문>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안내문과 배치도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정문 앞과 뒤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우측에 카페솔뫼도 있다.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전경

충청남도 천주교 성지와 당진시 천주교 성지 안내판

 솔뫼성지 주출입문...

 솔뫼성지 방문한 때는 겨울인데... 2021년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다.

 솔뫼성지 각종 조각품

 솔뫼성지 성(聖) 김대건(金大建) 신부 생가지. 

성(聖) 김대건(金大建) 신부 생가 들어가며... 

 성(聖) 김대건(金大建) 신부 생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여 기도하시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생가 마루에 마련된 성(聖) 김대건(金大建) 신부 상(像)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

솔뫼성지 김대건(金大建) 신부 동상

 성(聖) 김대건(金大建) 신부 시성 기념비와 순교 100주년 기념비

솔뫼성지 십자가의 길 조형물

 솔뫼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솔뫼성지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의 집'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지로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근자에는 지속적으로 시설물이 들어서고 있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곳이다.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내부를 공개하지 않아 실내는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분위기 만으로도 거룩한 곳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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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