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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하면 여러가지가 떠오른다. 미당 서정주의 시, 가수 송창식의 노래, 천연기념물 동백꽃 등 익히 들어온 내용들이다.
선운사는 내 고향에 있고 풍수적으로 유명한 곳이 많아서 1년에 두세번은 찾는데 그때마다 본찰과 주변만 보고 오든지, 남들이 잘 안가는 옛 백련암 자리의 복치혈 묘자리(인촌 조부 묘)를 찾는데 도솔암까지는 거리가 멀어 답사 동선과 시간 관계상 항상 제외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상 기도를 하러 선운사를 찾는다면 도솔암내원궁을 가서 마애불에 향 피우고 간절함을 빌어야 하는 것이다.
도솔암은 기도를 하고자하는 신도들에게는 차량출입을 허용하기 때문에 사전에 연락하고 조계종신도증을 챙겨서 다녀오시기 바란다.
도솔암에 올라 내원궁으로 가다보면 왼펀에 커다란 암벽이 나오는데 그 벽면에 마애불을 조성하였다. 정식 명칭은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지만 보통은 도솔암 마애불로 부른다. 이곳이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 부처님 앞 초함에는 항상 향초가 그득하고 참배하는 신도들도 언제나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그만큼 효험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런 곳은 학술적인 내용보다 구전이나 전설같은 좀더 친근한 내용으로 소개하고 싶어서 현지에 적혀있는 안내문을 소개한다.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高敞 禪雲寺 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보물 제1200호)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으로, 신체 높이가 약 15.7m, 무릎 너비는 약 8.5m이며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마애불의 양식으로 보면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성 시기는 신라 말기,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으로 의견이 다양하고 백제 위덕왕 때 검단 선사가 새겼다는 전설도 있다.
마애불 머리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에 목재가 박혀 있는 것도 있다. 이것들은 마애불의 장엄함을 위해 설치한 닫집(법당의 부처를 모신 자리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이 있었던 흔적이다.
가슴 아래 새겨진 복장<불상(佛像)을 만들 때, 그 가슴에 금ㆍ은ㆍ칠보(七寶)와 같은 보화(寶貨)나 서책(書冊) 따위를 넣음>에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내용은 복장 안에 보관된 비기가 알려지는 날 조선은 망한다는 것이다. 18세기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 기록을 꺼내 보려다 천둥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대목만 보고 도로 넣었다고 한다. 100여 년 후 동학농민혁명이 움트던 1892년에 동학 접주 손화중이 그 기록을 무사히 꺼내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농민들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전설이기도 하다.<현지 안내문 기록>



▼구 문화재 표석... 지정 당시 명칭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로 표기 되어 있다.

▼도솔암 마애불의 정식 명칭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안내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전경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석질 자체가 구멍이 많이 나있기도 하지만 닫집을 만들기 위해 구멍을 여러개 뚫은 흔적도 많다. 가슴 중앙 부분에 복장의 흔적이 유난히 큰 것으로 봐서 동학혁명 당시 접주 손화중이 열어본 흔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석질에 대한 조사내용...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측면...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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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