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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성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 묘

 

조계상 묘역은 문중의 안내문을 보면 옥녀탄금형에 경기10대명당이라고 나온다. 몇몇 풍수답사기를 보더라도 좋은 곳임에는 틀림없는듯 보인다. 현무정이 금성체로 단정하고 조계상 묘에서 보는 혈형이 기룡혈로 보여 양쪽 물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오금봉 아래 염주혈마냥 역장으로 묘역이 이뤄져있는데 조계상 묘가 안산정혈로 봤을 때 정혈처로 보인다. 전체적인 용맥이 곧게 내려오지 못하고 우측으로 휘어진 것은 흠이라 할 수 있다.
일출이 뜨기도 전에 찾아 산을 둘러보고 있는데 청룡 너머로 해가 뜬다. 해 뜨는 묘역이 붉게 물들어 경험해 보지 못한 색감을 자아낸다. 갈길이 멀어 현무정을 오르지는 못하고 아래쪽에 있는 신도비조차 후배의 카메라를 빌어 찍어왔다.
답사도 무릎에 힘이 있을 때 다니라는 선사들의 조언이 새삼 새겨지는 겨울날이었다.

 

조계상(曺繼商)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종성(宗聖). 부제학 조상치(曺尙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지승문원사 조변융(曺變隆)이고, 아버지는 부사 조구서(曺九叙)이며, 어머니는 좌찬성 이영손(李永孫)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진사가 되고, 그 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를 지내고 승진하여 1502년 부교리(副校理)에 올랐다. 그러나 연산군의 처족인 신승복(愼承福)의 승자와 경주부사 임명에 반대하다가 의금부에 수금되고 이어 파직되었다.

1506년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중종반정을 도모하자, 여기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창녕군(昌寧君)에 봉하여졌다. 그 뒤 홍문관부제학으로 있으면서, 연산군이 죽자 각방당상(各房堂上)으로서 『연산군일기』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7년(중종 2) 7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으며, 같은 해 12월에 충청도관찰사로 나아갔다가 1508년(중종 3) 대사헌에 올랐다. 1510년 다시 대사헌이 되고 공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세번째로 대사헌이 되었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한성부좌윤을 거쳐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512년 명나라에서 제주도 표류민을 쇄환하여 왔는데, 이 일로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4년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뒤에 예조·호조의 참판을 거쳐 공조판서에 올랐으나,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537년김안로가 제거된 뒤 다시 기용되어 우참찬이 되고, 1539년 우찬성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조계상(曺繼商) 묘
소재지 경기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산 78-1
관리자(연락처) 창녕조씨수원종회

 

▼ 우찬성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 묘역

▼ 우찬성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 묘역 용맥도

▼ 창녕조씨 재실 충효재

▼ 안내판 글씨가 너무 작아 보이질 않아 크게 확대하였다.

▼ 우찬성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 묘역 전경

▼ 조계상(曺繼商) 묘역 전경

▼ 조계상(曺繼商) 묘

▼ 조계상(曺繼商) 묘비

▼ 조계상(曺繼商) 묘 석물

▼ 조계상(曺繼商) 묘 장명등

▼ 조계상(曺繼商) 묘 측경

▼ 조계상(曺繼商) 묘 측경... 이른 아침에 답사를 나서 일출을 묘역에서 맞이한다.

▼ 조계상(曺繼商) 묘 후경... 해가 뜨면서 색감이 특이하다.

 

▼ 조계상(曺繼商)의 조부 조변융(曺變隆) 묘... 조계상 묘를 먼저 조성하고 나서 부친, 조부 묘를 쓴 것으로 보인다.

▼ 조계상(曺繼商)의 조부 조변융(曺變隆) 묘

▼ 조변융(曺變隆) 묘비

▼ 조변융(曺變隆) 묘 석물

▼ 조변융(曺變隆) 묘 후경

 

▼ 조계상(曺繼商)의 셋째형 조계은(曺繼殷) 묘

▼ 조계상(曺繼商)의 셋째형 조계은(曺繼殷) 묘

▼ 조계은(曺繼殷) 묘비

 

▼ 조계상(曺繼商)의 차자(次子)  조명원(曺明遠) 묘

▼ 조계상(曺繼商)의 차자(次子)  조명원(曺明遠) 묘비

 

▼ 조계상(曺繼商)의 현손 조흥효 묘

▼ 조계상(曺繼商) 묘역 입수도두

▼ 조계상(曺繼商) 묘역 후경... 앞쪽이 치올라 자기 안산을 이루고 있다. 이런 경우 송사, 영사가 갖추어졌을 경우 기룡혈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미흡하다.

 

▼ 조계상(曺繼商) 묘역 자기 안산에 바라본 현무정과 묘역

▼ 조계상(曺繼商)의 부친 조구서(曺九敍) 묘 

▼ 조계상(曺繼商)의 부친 조구서(曺九敍) 묘 

▼ 조계상(曺繼商)의 부친 조구서(曺九敍) 묘비

▼ 조계상(曺繼商)의 부친 조구서(曺九敍) 묘 후경

▼ 조계상(曺繼商)의 부친 조구서(曺九敍) 묘 아래쪽에 후손들 묘가 있고 신도비가 있다. 왼쪽은 조계상 신도비, 우측은 조계상의 현손 하령군 조문수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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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