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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손와(損窩) 최석항(崔錫恒) 묘

 

최석항은 영의정 최명길의 손자로 영의정 최석정의 동생이다. 언뜻보면 한 집안의 도도한 물 흐름처럼 권력의 정점을 찍고 흘러내린듯이 보이는데 당시의 정치권력은 아주 복잡하게 흐른것 같다. 최명길은 인조 때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척화파에 반하여 주화파로 정국을 타개하였고 그로인해 강경파들에게 공격을 당해 후에는 제자격인 송시열이 조차도 그를 배격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의 형 최석정은 숙종 때 당파를 완화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영의정을 8번이나 지낼 정도로 정치안정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석항은 경종 때 소론4대신으로 불리우며 신임사화를 일으켜 소론이 정권을 잡는데 기여한 인물로 후에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정권을 잡자 관작이 추탈, 복관을 반복하다 정조 때 최종적으로 추탈된 것으로 나온다.

최석항의 묘는 남양주에 친부 최후량의 묘역과 같은 능선에 있는데 묘비가 없어서 누구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앞서 다녀오신 분들이 최석항 묘로 올려서 나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답사기를 올린다. 그러나 그 아래에 있는 정경부인 묘는 뒤에 기록된 내용으로 봐서 최석항의 부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석항의 묘는 용이 내려오는 중턱에 기룡혈로 쓴 듯 보이는데 받아들이는 영사가 불비하고 과협의 바람을 막아주는 공협사가 없어서 바람이 묘역을 치고 있다. 현재 묘 봉분이 전후좌우가 모두 헐벗은 것은 바람 때문인 것이다. 생전에 적덕을 많이 쌓아야 좋은 곳에 묻힌다는 명구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된다.

 

손와(損窩) 최석항(崔錫恒)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구(汝久). 호는 손와(損窩). 영흥부사 최기남(崔起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명길(崔鳴吉)이고, 아버지는 최후량(崔後亮)이며, 어머니는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최후원(崔後遠)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아우이다.
1678년(숙종 4) 진사가 되고 168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몸집이 작고 차림이 초라하였으나, 사리판단이 정확하여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는 전국의 관찰사 중 제일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1721년(경종 1)부터 2년에 걸친 이른바 신임사화에서 소론이 승리하는 데에 큰 구실을 하였다. 1721년 10월 왕세제(王世弟: 뒤의 영조) 대리청정의 지시가 내렸을 당시 좌참찬으로서 왕을 만나 그 부당성을 지적하여 그것을 철회시키기도 하였다.
이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고, 나이 70이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당시 소론4대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혔는데, 이러한 당색 때문에, 영조가 즉위한 뒤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복관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손와유고』 13권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좌의정 손와(損窩) 최석항(崔錫恒) 묘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산 5-30
관리자(연락처) 동래정씨사암공파

 

▼ 좌의정 손와(損窩) 최석항(崔錫恒) 묘 전경... 봉분이 벗겨져 있고, 장명등이 무너져 있으며 묘비가 없다. 

 좌의정 손와(損窩) 최석항(崔錫恒) 묘 용맥도... 기룡혈로 용사한듯 보이나 공협사가 없어서 바람이 치고 있다. 

 좌의정 손와(損窩) 최석항(崔錫恒) 묘 오르는 들머리... 보람유치원에서 시작한다.

▼ 최석항(崔錫恒) 묘는 들머리에서 능선을 올라서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능선을 오르면 처음 만나는 묘역이 부친 최후량 묘, 큰형 최석진 묘가 되겠지만 최석항(崔錫恒) 묘 위주로 답사기를 쓰기 때문에 최석항 묘를 먼저 소개한다. 

 최석항(崔錫恒) 묘 전경... 뒤쪽 현무에서 내려오는 용이 넓게 폭을 넓혀 혈을 맺고자 한 흔적이 보인다. 이럴 경우 기운이 흘러내리지 않으려면 송사, 영사가 있어야 하고(내팔거팔) 좌우 능선 밖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산(공협사)이 있어야 성립한다. 이곳은 공협사가 없어서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최석항(崔錫恒) 묘... 묘비가 없어서 이 묘가 최석항 묘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먼저 다녀오신 분들이 문중에 문의해서 알아낸듯 보인다.

 최석항(崔錫恒) 묘... 봉분이 이처럼 메마르고 푸석푸석하게 흘러내리는 것은 바람을 지속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최석항(崔錫恒) 묘 좌우 석물

 최석항(崔錫恒) 묘 석물

겨울철에 묘지답사를 하면 이처럼 속살이 훤하게 보여 여러모로 좋다.

 최석항(崔錫恒) 묘 입수도두...

 최석항(崔錫恒) 묘 후경... 앞쪽이 높아 안산역할을 하므로 기룡혈로 볼 수 있지만 부족함이 많은 곳이다. 묘 봉분이 상고머리를 한 것 처럼 위만 남고 빙둘러 허물어져 있다.

 최석항(崔錫恒) 묘 뒤쪽 현무로 올라오는 입수룡... 뒤쪽으로 천마산이 보인다.

 최석항(崔錫恒) 묘를 내려올 때는 청룡쪽 마을로 내려왔다. 이곳은 사유지라서 조심스럽게 지나왔다.

 최석항(崔錫恒) 묘의 주산 천마산과 입수룡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 최석항(崔錫恒) 묘 동영상

 

▼ 최석항(崔錫恒) 묘를 오를 때 먼저 만나는 묘역... 앞쪽이 친형 최석진, 그 뒤가 친부 최후량, 맨 위쪽이 정경부인 의령남씨 묘이다.

 최석항(崔錫恒) 친형 최석진 묘

 최석항(崔錫恒) 친부 최후량 묘

 최석항(崔錫恒) 친부 최후량 묘 후경

 최석항(崔錫恒) 친부 최후량 묘 뒤쪽으로 정경부인 의령남씨 묘가 있는데... 최석항의 배위 묘는 아닌듯... 묘표 내용을 보니 최석정의 고조인 최수준의 배위로 보인다. 1694년 현손 최석정이라고 말미에 보인다. (上之二十季甲戌秋孟)

▼ 증 정경부인 의령남씨 묘표

▼ 증 정경부인 의령남씨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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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