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안향(安珦) 조부

 

경북 영주 답사를 하다 갑자기 일행분 중에 순흥안씨가 계셔서 선조 묘를 소개했는데 시간이 조금 있어서 들른 곳이다.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는 시조(始祖) 안자미(安子美)의 장남으로 순흥안씨 1파조(派祖)이며, 성리학의 태두라고 일컬어지는 안향(安珦)의 조부이시다. 추밀공 묘는 시조 묘가 실전 되어 순흥안씨 선대 묘 중 가장 오래된 묘이다. 이곳은 높은 강 위에 우뚝 솟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대부분의 시조 묘에서 보듯 멀리 조안산이 겹겹이 둘러쳐진 곳에 추밀공 안영유 묘가 있다. 아마도 후손들이 번창했을 것으로 보인다. 

용은 횡룡으로 입수하며 세월이 흘러 지형이 많이 변형 되었겠지만 뒤쪽에 귀성이 효순귀 형태를 띄었는데 중앙이 너무 심하게 파여 앙와(仰瓦)형태를 보인다. 바람이 심한 곳이라는 뜻이 된다. 즉 뒤쪽에 낙산이 받혀 주면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손(孫)이 번창하는 곳으로 순흥안씨들의 1파조(派祖)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순흥안씨 시조(始祖) 안자미(安子美)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추밀공(樞密公) 영유(永儒), 별장공(別將公) 영린(永麟), 교서공(校書公) 영화(永和)가 그 분들이다. 
추밀공은 송 나라 가태 신유년(1201년)에 출생하였으며, 바로 문성공 회선 선생(안향)의 조부로서, 추밀원부사 상호군에 추봉 되었다. 부인에 대하여는 실전하여 알 수 없다. 다만 구보 기록에, "경주박씨 족보에서 계림군 박순(朴純)의 사위에 안영유(安永儒)가 등재되어 있으나 이는 우리 족보에 전해오지 않는 것이어서 참고로 기록해 둘 뿐이다." 하였다. 
묘소는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甘谷里) 지장산(智藏山)에 있으며 신(辛)좌이다. 후손 판서 상(瑺)이 영천군수(榮川郡守=지금의 영주)로 부임하였을 때 재실 영모암(永慕庵)을 창건하고 위토를 마련하여 매년 10월 상정일(上丁日)에 제사를 지내왔다. 근래에 후손들이 묘소를 정비하고 '영모암관리위원회(永慕庵管理委員會)'를 설치하고 음력 10월 1일 순흥 추원단 제사를 올린 뒤, 오후 2시에 제사를 올린다. 슬하에 태사공 부(孚)를 두었다.<순흥안씨찬성공파 인용>


순흥안씨(順興安氏)
 
순흥안씨는 순흥의 토족 성씨이다. 고려 신종(神宗1197-1204)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시조(始祖) 안자미(安子美)가 순흥현(順興縣)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여 관향(貫鄕)을 순흥(順興)으로 삼게 되었다. 그후 증손 안유(安裕=珦으로 개명하였다가 조선조 문종 어휘와 같게 되어 초명으로 쓴다)가 크게 현달하여 생활 근거지가 개성으로 나뉘어져 살게 되었다. 시조 [子美] 아들 3형제를 두었으니 영유(永儒), 영린(永麟), 영화(永和) 이며 이를 각각 1파, 2파, 3파라 부른다. 영유의 후손에 14개파, 영린의 후손에 4개파, 영화의 후손에 4개파가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 생활근거지가 파주 금촌으로 옮겨졌는데, 여러 사화를 겪으면서 전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종가는 서울 도동에 있다가 다시 이북 연백으로 옮겨졌다. 특히 관향지 순흥에 살던 종족들은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다.
드러난 조상으로는 시조의 증손 안향이 1260년[고려 원종 1년] 18세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과 감찰어사(監察御史), 상주판관(尙州判官)을 비롯한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고, 충령왕(忠烈王) 복위 때 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가 되어 <섬학전(贍學錢)>이라는 육영재단(育英財團)을 설치,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유학(儒學)의 학풍(學風)을 일으켰다. 특히 그의 문하(門下)에서 백이정(白이正), 우 탁(寓倬) 등 훌륭한 유학자(儒學者)가 배출,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 등에 의하여 계승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朱子學者)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겨 문묘(文廟)를 비롯한 장단(長湍)의 임강서원(臨江書院)과 순흥(順興)의 소수서원(紹修書院), 곡성(谷城)의 회헌영당(晦軒影堂)에 제향되었다. 묘소는 장단 대덕산에 있고, 경기도 부곡에 안자묘(安子廟)가 있다.<순흥안씨대종회>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묘
소재지 경북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산 80(주차:감곡리 821)
관리자(연락처) 순흥안씨대종회

 

영모암(永慕庵) 
 
영모암은 경북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서쪽에 지장산이 있는데 이곳에 순흥안씨 제1파의 파조이신 추밀공[永儒]의 묘소가 있다. 시조공의 묘소가 실전이 되었고 그 밑의 삼형제분 중 둘째(안영린), 셋째(안영화)분의 묘소도 모두 실전이 되었는데, 첫째분의 묘소만이 현존하고 있으니 순흥안씨의 선조묘소로서는 가장 오래된 묘소이다. 그리고 이 묘소를 관리하는 재실이 있는데 이 재실이 바로 영모암이다.
추밀공께서는 서기 1202년 순흥 서남 평리촌에서 탄생하셔서 덕을 쌓아 아들인 태사공과 손자인 문성공(안향)을 두어서 후에 추밀원부사로 추봉되셨다. 그리고 영모암은 1558년 시조공(안자미)의 12대 손인 판결사 휘 상(瑺)께서 영천군수로 부임했을 때 건축했다. 이 영모암의 묘소는 명당중의 명당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시조공(안자미)의 12대 손인 판서 휘 위(瑋)께서 찬한 비문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선고 추밀공의 상을 당하여 슬퍼한 나머지 해를 넘기고 달이 바뀌도록 장례를 거행하지 못하여 걱정하던 차 마침 이상한 사람이 그 상중에 애통하는 것을 보고 말하되, “내가 지리를 조금 아니 그대가 나를 믿고 따르겠는가” 하자 태사공이 이를 허락하고 드디어 함께 지장산에 가서 고루 답사하였으나, 그 자리를 말하지 않고 산에서 내려와서 말하되 “내 손부채를 그 산중에 두고 왔으니 가서 찾아올 수 있겠는가” 하기에 태사공이 홀로 그 곳에 가보니 부채가 정중에 놓아 있는데 상하 양끝이 좌향을 가리키는 것 같은지라 곧 깨닫고 그 끝을 표하여 산을 내려오니 그 사람은 온데 간데 없었다.
돌아와서 준비하여 장례를 행하였다. 그후 3년상이 끝난 후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차츰 올라 밀직부사를 거쳐 판도판서에 올랐으며 뒷날 태사문하시중에 추봉되었다.
정말 이 산소는 순흥안씨라면 각파를 초월하여 모두가 성묘하고 잘 받들어야 할 것이며, 영모암은 해마다 전국에서 모이는 자손들이 제사를 올리는 전날밤에 선조님들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규약을 배우고 또 숭조목족을 위하여 여러 가지를 강론한 전통있는 재실인 것이다.<순흥안씨대종회>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는 백두대간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가는 도중 자개산에서 영주시로 들어서는 자개지맥상에 묘가 있다.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재실 영모암 삼문 사원문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재실 영모암(永慕庵)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 원경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소 가는 길...왼쪽 계곡 아래에 약천이라는 샘이 있는데... 흔히 묘역 아래에 이런 샘이 있으면 진응수라 해서 혈증으로 보는데... 이렇듯 계곡에 있을 때는 혈장 아래에서 나오는 진응수와는 구별해야 된다.

▼ 추밀공(樞密公) 묘에서 바라본 영모암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 전경... 함께한 후손이 간단하게 재물을 놓았다.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비... 유송고려국(有宋高麗國)이라는 것은 처음 보는 비문 문구다.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란 문구는 많이 봤으니 이에 대비되는 문구로 여겨지는데... 고려시대는 자주적인 사상이 있어서 그런 문구를 안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다.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 석물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 후경... 안산이 골이 지고 멀리 조산 노인봉이 조금 더 높게 솟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좌우 멀리 보이는 모든 산들이 겹겹이 감싸고 있어서 후손은 크게 번창했을 것이다.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는 상당히 높은 곳에 모셔졌다.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 현무정에서 바라본 묘

▼ 횡룡입수로 올 때는 뒤에서 받혀 주어야 한다. 뒤가 움푹 파인 앙와로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두 개의 귀성이 보인다. 이를 효순귀라고 하는데... 효순귀가 되려면 가운데가 어느정도 두툼해야 한다. 뒤쪽에 낙산이 있어야 하는데... 골이 형성되어 있다.

▼ 추밀공(樞密公) 안영유(安永儒) 묘를 내려오면서 보니 예사스럽지 않은 바위가 있어 살펴봤다. 그곳에 지장치원(智藏致遠)이라고 적혀있고, 2016년 순흥안씨 대종회에서 새긴 것으로 되어 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장산(智藏山)과 최치원(崔致遠)이 연관된 듯하다.

정보가 유익했나요? 도움이 되었다면 공감, 댓글, 광고 등에 터치 한번 부탁해요...

728x90
반응형
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