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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묘-정도전(鄭道傳) 부친

 

삼봉 정도전이 봉화정씨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번에 경북 영주로 정도전 생가, 정도전 부친 정운경 묘를 답사하러 다녀왔다. 정도전이야 누구나 아는 사람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고려때 과거를 통해 관리를 한 것은 잘 모를 것 같다.

묘역은 아주 높게 급경사를 이루는 정상에 있어서 돌형으로 보이지만 막상 위에서 보면 입수룡이 옆으로 입수되어 유형 혈로 보여진다. 후손들이 앞과 옆쪽을 인작으로 축대를 쌓아서 원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 되었지만 그래도 혈장의 기운은 좋은 것으로 보여진다. 묘가 이렇듯 높은데 있는 것은 대부분의 시조묘에서 많이 본다. 이는 후손의 번창을 기대하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운경은 봉화정씨 4세조이며, 정도전이 5세조가 된다. 현무정까지 올라 용맥을 타고 내려오면서 용과 지각을 살펴보았다. 급하게 내려오던 용이 과협을 이루면서 길게 장협을 보이는데 좌우 용호 역할을 하는 지각들이 바짝 붙어있어 공협이 없어도 무난하게 맥을 이어준다. 마지막 입수처에서 분맥을 하는데 굳이 좌선맥에 재혈을 한 것은 사격을 바라보고 한 것이다. 후손들이 축대를 쌓고 넓혔는데 바람의 영향이 우려된다. 예전에 없던 작은 묘가 정운경 묘 옆에 있는데 어떤 사연이 있어 보인다. 정운경 묘에는 영주우씨와 합장되어 있는데 별도로 부인 묘를 쓴 것으로 보아 아마도 후배 묘로 보이는데, 그 후손들이 크게 영달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많은 분들이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렇듯 높은 곳에 재혈하고 축대를 앞쪽에 두르는 곳은 거의 풍살을 면키 어렵다.

 

조선개국공신 정도전 묘 바로가기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본관은 봉화(奉化). 봉화현 호장 정공미(鄭公美)의 증손이다.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정균(鄭均)의 아들이며, 부인은 당시 영주 지역의 사족이었던 산원 우연(禹淵)의 딸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아들은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 참판 정도존(鄭道存), 한성판윤 정도복(鄭道復)[1351~1435]이며, 사위는 공조판서를 지낸 황유정(黃有定)[1343~?]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집에서 자랐다. 어려서 영주(榮州)와 복주(福州: 안동)의 향교에서 수학한 뒤 개경에 올라와 십이도(十二徒)와 교유하며 이곡(李穀) 등과 사귀었다. 1326년(충숙왕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1330년 문과에 급제해 이듬해 상주목 사록으로 나갔다.
이후 전교교감(典校校勘)·주부(注簿)·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삼사도사(三司都事)·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전의주부(典儀注簿)·홍복도감(弘福都監)의 판관을 거쳐 1343년(충혜왕 복위 4)에 밀성군지사(密城郡知事)가 되었다.
당시 재상 조영휘(趙永暉)가 밀성인에게 대여했던 포(布)의 징수를 종용했으나 이를 묵살하였다. 다음 해 복주목의 판관에 전임되어서도 정실에 기울지 않으며 송사(訟事)를 잘 처리하였다.
삼사판관을 거쳐 서운부정(書雲副正)이 되어 1346년 하정사(賀正使)의 서장관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그 뒤 성균사예·보문각지제교(寶文閣知製敎)를 지냈다. 1348년(충목왕 4) 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이듬해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 등을 거쳐 1352년(충정왕 3) 전법총랑(典法摠郎)에 이르렀다.
1353년 전교시판사(典校寺判事)로 전주목사로 나가 치적을 쌓았다. 1356년(공민왕 5) 병부시랑에 올라 무반의 전선(銓選: 인사행정)을 관장하였다. 1357년 비서감보문각직학사(秘書監寶文閣直學士)로 옮겨 강릉도(江陵道)와 삭방도(朔方道)의 존무사(存撫使)로 파견되어 백성을 안찰하였다.
1358년 지형부사(知刑部事), 1359년 형부상서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1363년 검교밀직제학(檢校密直提學)에 제수되었다. 1365년 병이 들어 사퇴하고 영주에 돌아와 이듬해 별세하였다. 사시(私諡)는 염의(廉義)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봉화정씨(奉化鄭氏)
 
시조 정공미(鄭公美)는 고려 후기 봉화현(奉化縣)의 호장(戶長)을 역임하였다.
정공미의 증손자 정운경(鄭云敬)이 충숙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검교밀직제학(檢校密直提學)·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정운경의 아들 정도전(鄭道傳)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창왕(昌王)을 폐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추대하여 봉화현충의군(奉化縣忠義君)에 봉해졌다. 이후 1392년 공양왕의 선양을 이끌어 내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 개국 일등공신이 되었고, 봉화백(奉化伯)에 봉해졌다. 그러나 1398년 8월 26일, 신덕왕후 소생인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된 것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이 무인정사를 일으켜 피살되었다.
봉화 정씨는 봉화현에서 대대로 호장을 세습해 온 호족세력으로 봉화지방 토속 성씨이다. 봉화(奉化)를 관향(貫鄕)으로 정한 것은 정운경(鄭云敬)과 정도전 부자의 숭덕(崇德)과 위업(威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임술보(壬戍譜)』에 적혀 있다.
봉화 정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였다. 인구는 2015년 현재 27,088명이다.<위키백과>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소재지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산 69-2(주차:신암리 1259-1)
관리자(연락처) 봉화정씨 문중

 

▼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용맥도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입구의 문천서당... 정도전이 이곳에서 시묘살이를 했다고 한다.

봉화정씨 추원제단비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신도비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원경...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다.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역이 있는 이곳은 이몽룡인문학둘레길과 겹치면서 선비길이라고도 한다.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전경... 청룡방에 묘표 없는 묘가 하나 생겼다. (옛날에 이곳을 다녀간 분의 증언)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역광이라 빛이 반사되었다.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비와 장명등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석물... 망주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석물은 근자에 세운 것이다.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옆에 있는 작은 묘... 묘표가 없지만 아마도 후배가 아닌가 싶다.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측경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입수맥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에서 바라본 조안산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후경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입수처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 후경

 

염의(廉義)정운경(鄭云敬) 묘가 있는 이곳은 이몽룡 인문학 둘레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이몽룡(성이성) 묘는 답사하지 못했지만 이곳에 잠시 올려본다.

영주시 역사탐방로

 영주시 역사탐방로 시작점(계서정)과 끝지점(성이성 묘)

 영주시 역사탐방로 시작점(계서정)과 끝지점(성이성 묘) 

 계서 성이성이 춘향전 속 이몽룡의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이몽룡 인문학 둘레길에 세워진 인문학 이야기들...

 이몽룡 인문학 둘레길에 세워진 춘향상...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도록 잘 가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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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