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부민관 폭파 의거 터(府民館爆破義擧址)

 

땅에도 이력이 있고 사람에게도 이력이 있듯이 건물에도 이력이 있다. 현재 서울시의회 건물처럼 파란 만장한 이력의 소유 건물도 드물 것이다. 처음에는 일본 경성부(京城府) 부립극장이었는데 1945년 전쟁 막바지에 친일파 주도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개최되자 애국청년 조문기·유만수·강윤국 등이 부민관에 사제 폭탄 2개를 투척하였다. 이 건물은 광복 후 미군정이 임시로 사용하였고 1950년 국립극장으로 사용하다가 서울 수복 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75년 시민회관으로 이용되다 세종문화회관 건립과 동시에 그 별관으로 이용되었다. 1991년 서울특별시의회 청사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국회의사당일 때 이 건물에서 현대사의 큰 일들이 많이 진행되었는데 좋은 것은 거의 기억에 없고 안 좋은 것만 기억이 나는 것은 왜일까? 그곳을 이어받은 서울시의회 또한 굴곡 많은 의정사가 이어지고 있다. 건물의 이력은 쉽게 바꿔지지 않는다. 어떤 큰 변화가 주어져야 바뀌는데 내부구조를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는 등록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건물구조를 바꾸는 것도 힘들 것 같다.

오래 전에 다녀왔고 그 부근을 지날 일이 많았는데 어느날 확인해 보니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다녀와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몇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번에 새로 올리려고 일부러 다녀왔다. 세상일이 다 그런 것이 뭐든 필요할 때는 없고 필요 없을 때는 넘쳐나는 것이 다반사인데 이곳 서울시의회에 있는 부민관 폭파 의거 터 표석이 나한테는 유난히 힘들게 답사한 곳이었다.

 


 

▣ 부민관 폭파 의거 터(府民館爆破義擧址)

 

부민관(府民館)은 경성부(京城府)가 1935년에 경성전기주식회사(京城電氣株式會社)로부터 100만원의 기부금을 받아 건립한 부립(府立)극장으로, 지금의 서울시 중구 태평로1가에 소재하고 있었다. 부민관폭파의거(府民館爆破義擧) 터는 1945년 7월 24일 애국청년 조문기(趙文紀)·유만수(柳萬秀)·강윤국(康潤國) 등이 부민관을 폭파해 박춘금(朴春琴) 일당의 친일행사를 무산시킨 의거가 일어났던 곳이다.
현재 서울시의회 건물로 쓰이고 있는 부민관(府民館)은 본래 1935년 일본 경성부(京城府)가 건립한 부립극장이었다. 부민관은 연건평 5,676㎡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다목적 회관으로서, 1,800석의 관람석과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대강당을 비롯하여 중강당·소강당 등에서 연극이나 음악, 영화 등을 공연하였다. 그 밖에 담화실·집회실·특별실·식당·이발실 등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어 극단들의 공연을 비롯해 중요한 집회나 강연회 등이 자주 개최되었던 곳이다. 1945년 7월 24일, 부민관에서 1급 친일민족반역자 박춘금(朴春琴)의 주도하에 일본, 만주, 대만, 조선 등 동아시아 각국의 친일부역자들이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애국청년 조문기(趙文紀)·유만수(柳萬秀)·강윤국(康潤國) 등이 부민관 폭파계획을 수립한 뒤, 대회진행 당일 친일연설을 하는 연단에 사제 폭탄 2개를 투척하여 회의 자체를 무산시켰다. 이 의거는 8·15광복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항일의거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끝까지 표현한 민족독립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부민관 건물은 광복 후 미군정이 접수해 임시로 사용하다가 1949년 서울시 소유가 되었고, 1950년 4월 29일 국립극단이 창단되면서 국립극장으로 지정되었다. 부민관은 1950년 서울 수복 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다가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준공됨에 따라 시민회관으로, 다시 1976년 세종문화회관 건립과 동시에 그 별관으로 이용되었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지금은 서울특별시의회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2002년 5월 31일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그 앞에는 1995년에 설치된 부민관폭파의거(府民館爆破義擧) 터 기념 표지석이 있다.<서울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인용>

 

▼ 부민관 폭파 의거 터(府民館爆破義擧址) 표석

▼ 부민관 폭파 의거 터(府民館爆破義擧址) 표석은 서울시의회 앞에 있다.

▼ 부민관 폭파 의거 터(府民館爆破義擧址) 표석

▼ 부민관 폭파 의거 터(府民館爆破義擧址) 표석이 있는 서울특별시의회 현판

▼ 서울특별시의회 앞에는 부민관 폭파 의거 터(府民館爆破義擧址) 표석과 더불어 등록문화재 동판, 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안내판이 함께 있다.

▼ 예전 부민관 폭파 의거 터 표석과 표석의 위치... 예전의 표석을 같이 올리는 것은 정보제공의 의미가 있다. 즉 같은 이름으로 사진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떤게 최근 것인지, 내용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 서울 중구 태평로, 을지로입구 부근 표석 위치

▼ 서울 중구 정동 일대 표석 위치

▼ 부민관 폭파 의거 터(府民館爆破義擧址) 표석 위치

728x90
반응형
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