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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청 터(糧餉廳址)

 

양향청 터(糧餉廳址)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훈련도감과 함께 설치되었는데  군인들의 의복이나 무기, 비품 등의 물자를 조달하고 급료 등의 재정을 관리하던 관청이라 한다. 요즘으로 치면 조달본부나 조달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곳은 일제 때 전매국이 들어섰다가 경성세무서(京城稅務署)가 들어서고, 1950년에 중부세무서, 1997년부터 남대문세무서가 사용하다 2006년 새 청사를 건설하였다. 지금은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입주되어있다. 이곳은 명동성당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곳인데 인제대학 백병원이 바로 옆에 있다.

양향청 터 표석을 사진으로 찍으면 항상 반사되거나 글자가 희미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 표석을 만들 때 이런 면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할듯 보이다. 조금 오래된 표석은 글자에 입힌 페인트가 벗겨져서 글자가 쉽게 식별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정비를 하면서 이런 표석에 덧칠이라도 해주면 좋을듯......  

 


 

▣ 양향청 터(糧餉廳址)

 

양향청(糧餉廳)은 조선시대 훈련도감(訓鍊都監)에서 소용되는 의복이나 무기, 비품 등의 물자를 조달하고 급료 등의 재정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선조 27)에 훈련도감의 발족과 함께 그 부속관청으로 설치되었다. 양향청은 지금의 저동(苧洞)에 있었는데, 9개의 창고를 설치하여 돈, 쌀, 귀중품, 문서 등을 각각 하나씩의 창고에 보관하고, 나머지 5개의 창고는 예비로 비워두었다고 한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양향청 터는 양향청이 있던 곳이다. 양향청은 의정부 1인이 겸하는 도제조(都提調), 호조판서와 병조판서 및 훈련대장 3인의 제조(提調), 1인의 낭청(郎廳) 등을 관원으로 두었다. 그 아래로 계사(計士)와 서리(書吏), 고직(庫直) 등의 하급관리들을 두어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양향청이 있던 곳에 조선총독부 전매국(專賣局) 인쇄부 건물이 신축되었으며, 1934년 〈조선총독부 세무관서관제(朝鮮總督府稅務官署官制)〉가 공포됨에 따라 경성세무서(京城稅務署) 건물이 새로이 들어서게 되었다. 광복이 되고서도 경성세무서가 그대로 이 건물을 사용하다가 1950년에 중부세무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7년부터 중부세무서는 남대문세무서가 되었는데, 2006년 옛 건물을 철거하고 남대문세무서 새 청사를 준공하였다. 남대문세무서 오른쪽 건널목 앞에 2002년에 설치된 양향청 터 표지석이 있다.<서울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인용> 

 

▼ 양향청 터(糧餉廳址) 표석

▼ 양향청 터(糧餉廳址) 표석은 남대문세무서 옆에 있는데... 요즘엔 남대문세무서 보다는 서울지방국세청, 국가인권위원회가 치고 들어온 느낌이 든다.

▼ 양향청 터(糧餉廳址) 표석... 인제대학교 백병원 건물을 보고 찾으면 쉽다.

▼ 양향청 터(糧餉廳址) 표석... 로드뷰 사진

▼ 서울중구 을지로, 충무로 일대 표석 위치도

▼ 양향청 터(糧餉廳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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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