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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있는 군자감(軍資監) 강감(江監) 터는 한동안 KT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표석이 밖으로 나오지 못했는데 최근 KT용산IDC가 준공되면서 다른 표석들과 함께 근사한 모습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군자감(軍資監) 강감(江監) 터는 유사시에 대비하여 군량미를 비축하던 곳이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유지되다가 갑오개혁으로 폐지된 곳이다.

이곳은 자동차로 진입을 하게 되면 네비가 가르쳐주는 곳이 애매해서 헷갈리기 일쑤다. 가장 좋은 방법이 근처 용문동우체국을 치고 가서 거기서 표석을 찾는게 유리하다. 보통은 효창공원을 방문하고 나서 인근의 표석을 답사한 후 이곳을 찾게 되는데 이때는 용문시장을 통해 내려오면서 시장 구경도 하면서 오면 의미있는 답사가 될 수 있다.

지난번 용산 표석을 올리면서도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빼놓고 다른 표석만 올렸는데 이번에 용산의 다른 표석들이 내용이 바뀌어 다시 찾을 때 군자감 강감 표석도 함께 다녀오게 되었다. 군자감 강감 터 표석 옆에 이곳이 3.1운동 용산인쇄소 노동자 만세 시위지 표석과 대한제국 용산전환국 터였다는 표석이 함께 세워져 있어서 새로운 지식을 터득할 수 있어 좋았다. 현재 이곳은 4차 산업혁명의 자산인 디지털데이터 센터를 건립하였는데 과거 군량미를 보관하던 곳과 묘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그래서 KT에서 이곳에 나름 의미있는 표석하나를 세워 놓았다.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 군자감(軍資監) 강감(江監) 터

 

용산구 원효로 3가 1번지에 있었던 조선시대 군자감 강감은 군자감에 소속된 창고로 군자창(軍資倉), 또는 군자고(軍資庫)로도 불리었다. 원래 군자감 창고는 조선 건국 초에 세웠으나 협소하므로 태종 10년(1410)에 승려들을 동원하여 서강(西江)에 84칸을 지어 놓아 군량미 30만석을 저장할 수 있었다. 그 뒤 임진왜란을 겪고나서 군량미 비축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인조 18년(1640), 용산강 북쪽에 따로 군자감 강감을 건축한 것이다.
군자감은 군사상에 필요한 물자를 비축하여 그 출납을 맡아 온 관아로 고려 때부터 설치된 제도를 조선 초에도 계승하여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되었다. 즉 조선 5백년간 유사시에 대비하여 중앙의 군량미로 사용될 각 지역의 군자전세(軍資田稅)를 수납하여 군자창에 보관한 것이다. 군자감 본감(本監)은 서부 여경방(餘慶坊), 분감(分監)을 남대문 안에, 그리고 용산에 군자감 강감을 두어 3감이라고 칭하였다.
조선 초에는 군자창에 약 50만석 정도가 비축되어 있었으나 점점 줄어 선조 1년(1568)에는 10만석이 채 못 된 것으로 밝혀졌다.
영조 20년(1744)에는 도성 안의 군자감 본감과 분감을 폐지하였으므로 용산 군자감 강감은 실질적으로 군자감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군사 물자 비축 외에도 그 기능이 확대되어 각 관아의 쌀과 콩을 보관하고, 군사와 잡직 관원의 급료를 지급하였다.
그 후 이 곳은 인천에서 이전해 온 전환국이 자리하였는데 청일전쟁 때 일시적으로 일본군의 주둔지로 쓰였고, 일제 때 조선서적주식회사가 들어섰다. 광복 후에는 한국인쇄주식회사로 고쳐지고 체신공무원교육원이 사용하다가 최근 kt용산IDC가 들어서 있다.<서울시문화유적표석, 인터넷 등에서 발췌>

 

군자감(軍資監) 강감(江監) 터 표석

 

▼ 군자감(軍資監) 강감(江監) 터는 KT용산IDC 건물 앞에 있다.

3.1운동 용산인쇄소 노동자 만세 시위지 표석,  대한제국 용산전환국 터 표석

KT용산IDC 건물과 과거 군량미 창고가 묘한 인연이 되었다고 KT에서 표석을 세웠다.

▼ 용산구 일원 표석 위치도

▼ 군자감(軍資監) 강감(江監) 터는 KT용산IDC 건물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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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