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쌍회정 터(雙檜亭址)

 

쌍회정터(雙檜亭址)는 남대문시장에서 남산쪽 언덕배기에 위치한다. 그곳에 일신교회가 있는데 교회입구 담벼락에 붙어있다. 한동안 찾지 않다가 2020년 표석내용, 위치가 전면 바뀌는 바람에 서울중구 표석을 다시 답사해야해서 전체적으로 한번 다시 답사를 진행했다. 바뀌지 않은 표석들은 건너 뛰게 되는데 이날은 이상하게 한번 가보고 싶어서 언덕배기를 오르려니 힘들것 같아 머리를 쓴다고 명동에서 남산순환도로를 타고 올라갔다가 남산쪽 기념물(안중근의사기념관, 김구동상, 이시영 동상, 김유신동상)도 보고 쌍회정 터를 보고 내려올 심산이었다. 이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서울시의 '따르릉' 자전거였다.

쌍회정 터에 도착해서 보니 표석을 가린체 도로난간손잡이를 설치해 놓았다. 글자를 도무지 읽을 수 가 없다. 이곳이 언덕배기이다보니 겨울철에 오르내릴 때 미끄러워서 설치한 것 같은데 설치하는 사람이나 감독하는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하다보니 표석을 가린체 공사를 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전에 찍었던 사진과 현재 사진을 동시에 올려 놓는다. 서울시 담당자님께 알려드렸으니 지금쯤 어떤 조치가 내려졌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백사 이항복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참 후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집을 고종 때 후손 이유원이 다시 사서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자료에 나온 것을 찾아보니 쌍회정 내력이 모두 제각각이다. 아무튼 서울시에서 이번에 심혈을 기울여 내용을 수정하고 위치를 검증하고 있으니 나는 이것을 믿고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렇게 경사가 급한 곳에 집을 짓거나 사업체를 운영하게 되면 재물에는 인연이 박하다. 돈을 바란다면 그 아래 남대문시장쪽에서 집터를 찾아야 한다.

 


 

▣ 쌍회정 터(雙檜亭址)

 

쌍회정(雙檜亭) 터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집이 있던 곳으로, 쌍회정(雙檜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쌍회정은 이항복의 집 앞에 지어진 정자로, 이항복이 심은 두 그루의 회나무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쌍회정이 있던 구 회현동 일대는 남산자락에 위치하여 경치가 수려하였으므로 조선시대 때 많은 양반들의 사저가 있던 곳이다.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져 있는 이항복과 이덕형(李德馨)이 거주하였고, 조선 명종(明宗) 때 영의정을 지낸 상진(尙震)의 집도 있었으며, 권문세가인 동래(東萊) 정씨의 집거지이기도 하였다. 이항복의 후손인 이유원(李裕元)은 문집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쌍회정의 유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항복 집터에는 몇 대를 거쳐 후손이 거주하다가 주인이 바뀌게 되었는데, 새 주인은 이항복이 심은 회나무 아래에 별채를 짓고 이를 쌍회정이라 하였다. 그 후 새로 주인이 된 서염순(徐念淳)이 정자를 늘려 짓고, 주위에 단풍나무를 심어 정자 이름을 홍엽정(紅葉亭)이라 하였다. 나중에 이유원이 이를 다시 사들였는데, 이때 회나무 한 그루가 이미 죽고 없었으므로 새로 한 그루를 심었다 한다. 이와 함께 이유원이 정자의 이름을 쌍회정으로 다시 고쳤다 한다. 이유원 사후 이곳은 일본인의 소유가 되었는데, 언제 정자가 없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쌍회정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6길 36에 해당한다.<서울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인용>

 

▼ 쌍회정 터(雙檜亭址) 표석은 벽부용으로 되어 있는데 도로난간손잡이를 바짝 붙여 설치해 표석을 읽기 힘들다.

▼ 쌍회정 터(雙檜亭址) 표석은 일신교회 정문 앞에 있다.

▼ 쌍회정 터(雙檜亭址) 표석

▼ 서울중구 남대문, 명동 일원 표석 위치도

▼ 쌍회정 터(雙檜亭址) 표석 위치

 

728x90
반응형
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