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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 

 

양평답사를 꾸준히 해왔는데 아직도 남은 묘소들이 있었다. 대부분 산속 깊숙한 곳에 있어서 혼자서 찾기에는 부담되는 곳들이고 또한 차량으로 접근도 어려운 곳들이다. 그렇다고 아예 안가려고도 했었지만 이미 누군가는 다녀온 곳들이라 안가기도 찝찝하고... 그래서 이번에 후배랑 맘 먹고 몇 군데 안되는 곳이지만 양평 마지막 답사라고 생각하고 한번 더 다녀왔다. 
하나 답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곳들이고 주소도 애매한 곳도 많고 지도에도 잘 표기가 안된 곳들이라 처음부터 각오를 하고 찾아나섰다. 
성세평, 성영 부자 묘역은 양평을 다녀온 분 몇 분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다. 우선 차량으로 진입하는게 보통 어려운게 아닌듯 보여서 그만두려고 했지만 일단 한번 가보기나 하자고 나선 곳이다.

묘역 입구로 진입하기 쉬운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인근 토지 소유주들이 자물쇠를 잠가놓았는데 근자에 철거하였다고 한다.(문중회장님 전언) 이곳부터 묘역까지는 지름길이므로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등산로를 정비하지 않았다고 하니 2023년경 한번 가볼려고 한다.

그래서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봤더니 길이 거의 없고 소로만 나 있었는데, 먼저 다녀오신 분이 버섯농장까지는 갈 수 있다고 해서 차를 몰았다. 울퉁불퉁 길이 좋지 못해 차가 물구덩이에 빠지고 차 밑이 돌부리에 찍히고 해서 차 한테 미안할 정도였다. SUV 차량으로 가면 모를까 승용차로는 가능하면 앞쪽에 세워놓고 걸어가길 권한다. 승용차로는 날씨가 맑으면 그래도 무난하게 다녀올 수 있지만 비라도 오면 조심해야 한다.
이곳은 청룡,백호, 멀리 조산이 아주 근사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사격을 보고 풍수가의 조언을 듣고 쓴 곳임을 알 수 있다. 뒤 현무봉은 추읍산으로 무곡성의 산으로 멋진 자태를 뽐내는 산인데 용호, 조산까지 아주 근사한 사격들이 멋지게 늘어서 있다.  
이런 곳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바람인데 북동향의 유혈의 입지가 필연적으로 바람을 맞고 있다. 조망을 위해 나무도 식재하지 않고 훤하게 트여있어 지금도 바람이 여전히 강한 느낌이다.
향은 멀리 두 봉우리 사이에 도톰하게 자리잡은 음부혈의 형상에 맞춰져 있고 겹겹히 중첩되어 있어서 손은 많이 번창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세평(成世平) 신도비
 
성세평(成世平, 1516~1590)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령(昌寧), 자는 정중(正仲)이다. 종부시정(宗簿寺正) 성세주(成希周)의 아들이며, 처는 부사 노공좌(盧公佐)의 딸이다.
1561년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50여 세에 비로소 승문원에 등용됨으로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전적(典籍)”어천찰방(魚川察訪)을 지냈고 그 뒤 횡성현감,금산군수,성주목사 등을 거쳐 군기시정,사재감정,장악원정,통례원좌통례를 역임하였다. 원주목사로 나갔다가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선조 23년(1590)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병사하였다. 세상을 떠난후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성세평 신도비(총높이 270cm, 너비 62cm, 두께 31cm)는 이정구(李廷龜)가 지었으며, 남태제(南泰齊)가 전했다. 비문이 심하게 마모되어 서자는 알기 어렵다. 평평하게 다듬은 자연 암반을 비좌대용으로 하고 있고 옥개석을 갖추고 있으며, 비신은 백색대리석으로 전․후․우 3면에 비문이 있다. 전,후면에 걸쳐 횡으로 “江原道觀察使 贈左贊成 成公神道碑名”의 전액이 있다.



성영(成泳) 신도비
 
성영(成泳, 1547~1623)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령(昌寧), 자는 사함(士涵), 호는 우천(愚川), 태정(苔庭)이다. 강원도 관찰사 성세평(成世平)의 아들이고, 영의정 이양원(李陽元)의 사위이다. 여주군 흥천면 복대리에서 성장한 성영은 선조 6년(1573)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6년 사헌부감찰을 거쳐 의정부사인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모친상을 당하자 지평현(양평군 용문면 삼성리)에 안장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1592년 여주목사가 되었다가 임진왜란시 경기도 순찰사로서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으며 이듬해 경기좌도관찰사 겸 개성 유수로 임명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정양향사(南征糧餉使)로서 군량미의 조달을 담당하였다.
1599년 공조참판,한성부좌윤을 거쳐 대사헌,예조참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듬해에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1601년 한성부판윤이 되고 1602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서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에 다녀왔다.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 등에 의해 유영경의 당인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었고, 광해군 8년(1616) 연일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돌아갔다. 인조반정 후 복관되었고 시호는 양혜(襄惠)이다. 신도비(총높이 161cm, 폭 62cm, 두께 32cm)는 팔작지붕형으로 자연암석위에 대리석 비신을 세웠다. 신도비문은 대사헌 남태저(南泰著)가 짓고 홍문관교리 임희우(任希雨)가 썼으며, 엄도(嚴擣)가 전했다. 전,후면에 걸쳐 횡으로 “朝鮮國 吏曹判書 成公神道碑名”의 전액이 있다.<양평문화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성세평(成世平) 신도비,  성영(成泳) 신도비
소재지 경기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산 142-1
관리자(연락처) 창녕성씨 문중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 위치도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를 답사하려면 조금 복잡하다. 삼거리에서 묘소를 먼저 간다.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 원경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묘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묘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묘표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묘 석물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묘 입수도두... 넓게 퍼져서 후부하게 내려온다.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묘 후경... 해가 떠오르는듯, 음부혈을 바라보는듯... 사격이 중첩되어 있다.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묘 조산.... 향을 중앙 무곡성에 맞췄다.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묘 청룡, 백호방...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의 아들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

▼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표

▼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 청룡과 백호방 사격

▼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 후경... 묘역에 오르면 아름다운 사격이 즐비하다. 바람만 잘 잡으면 인물이 나올만 하다.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 답사를 마치고 올라올 때 삼거리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두분의 신도비가 있다. 지금은 아직 잎이 나기 전이라 쉽게 관찰할 수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숲이 우거져 찾기 힘들어진다.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신도비... 자연 암반 위에 세웠다.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신도비 전면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신도비 후면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신도비... 비문은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 이조판서 성영(成泳) 신도비... 여기도 자연 암반 위에 세웠다.

▼ 이조판서 성영(成泳) 신도비... 대리석에 글자를 새겨 잘 보이지 않는다.

▼ 이조판서 성영(成泳) 신도비... 자연 암반 위에 있어서 운치는 있다.

 

▼ 관찰사 성세평(成世平), 이조판서 성영(成泳) 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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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