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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천불천탑 운주사(雲住寺)

 

20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찾은 운주사.
이번에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찾았더니 사람도 없고 절간이 한산해서 오히려 을씨년스럽기 까지 했다. 예전과는 달리 걷는 것도 힘들어서 위에 있는 공사바위는 오르지 못하고 그 근처에서 절간을 내려다 보는 걸로 만족했고, 대신 부처님 전에 기도를 많이 하고 소원지를 달고 왔다. 
또한 와불에 올라 주위 풍경을 원없이 조망하고 운주사를 한바퀴 돌고 내려왔다. 20여 년 전이나 크게 바뀐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입구에 보니 천불천탑을 이어가려는듯 계속 불상을 세우고 있었다. 
요즘엔 좀 이름 난 관광지다 싶으면 도로가 뚫리고 해서 접근이 용이한데 네비에 의지해서 간 운주사는 유난히 멀리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직접 연결되는 도로가 아직 없는듯 보였다. 나는 오히려 이런 절을 더 선호한다. 절간도 돈 냄새를 많이 풍기지 않고 예전처럼 그대로여서 좋았다. 

20년 전에도 다음에 올 때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절간 구석구석을 돌면서 음미도 해보고 자신도 돌아보는 기회를 얻고자 했었는데 그 시간이 다시 돌아와도 매한가지로 시간은 없어서 빠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이 늘상 하는 말 즉 오늘에 충실하라는 말이 실제적으로 느껴진 날이었다. 다음은 없는 거와 같다. 오늘 못하는 것은 20년이 지나도 못한다고 봐야 한다. 오늘에 충실하자.....

 

(2002년도 답사기)천불천탑 화순 운주사  바로가기

 

운주사(雲住寺)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운주사는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절을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15세기 후반에 다시 크게 지어졌다가 정유재란으로 폐찰되었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배를 움직인다’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돌부처 70구와 석탑 18기만이 남아 있으나, 조선 초기까지는 천 여 구의 불상과 탑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 70여 구의 돌부처들은, 수 십 ㎝에서 10m 이상의 거대한 돌부처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탑 또한 그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3층·5층·7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둥근 공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다. 또한 탑의 표면에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특이하다.
 운주사에는 누운 부처(와불)가 있어 유명하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하룻밤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난 동자승이 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불상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운주사는 특이한 돌부처와 석탑이 모두 한 절 안에 있다는 점에서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우리나라 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문화재청>

 

문화재지정 사적 제312호
문화재명칭 화순 운주사지 (和順 雲住寺址)
소재지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산3번지 외(주차장:용강리 77-3)
관리자(연락처) 운주사(雲住寺)

 

▼ 운주사(雲住寺) 가람 배치도

▼ 운주사(雲住寺) 일주문... 영구산운주사로 되어 있다. 

▼ 운주사(雲住寺) 일주문 아래에 있는 신령스러운 거북이상, 운주사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듯...

▼ 운주사(雲住寺)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사적 명칭은 운주사지(雲住寺址)로 되어 있다.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和順 雲住寺 九層石塔) 보물 제796호

 

운주사로 들어가는 남쪽 골짜기의 첫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커다란 바윗돌로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을 삼고 그 위로 윗층 기단을 쌓은 후 9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윗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짜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긴 후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또한 기단의 맨윗돌은 탑신의 1층 지붕돌로 대신하고 있는 점이 특이한데, 운주사의 모든 탑이 이러하여 고려시대로 오면서 나타난 특징으로 보인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면마다 2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는데, 이러한 수법은 운주사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다. 각 지붕돌은 밑면이 약간 치켜올려져 있고, 여러 겹의 빗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원기둥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이루고 있다.
 탑의 면이 사각형인 것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들과 같으나,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새긴 장식이 일반형에서 벗어난 모습들은 보기 드문 예이다. 이는 지방적인 색채가 뚜렷했던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운주사의 여러 탑 가운데 높이가 가장 높은 것으로, 원래 지방유형문화재 제8호였다가 1984년 보물로 등급이 조정되었다.<문화재청>

 

▼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和順 雲住寺 九層石塔) 보물 제796호

▼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和順 雲住寺 九層石塔) 뒤로 7층석탑 2기가 보인다.

▼ 운주사(雲住寺) 진입로 주변 바위 아래에는 많은 불상들이 놓여 있고 부서진 부재들이 많다.

▼ 운주사(雲住寺) 광배석불좌상

▼ 운주사(雲住寺) 쌍교차문 칠층석탑에서 바라본 입구... 맨 뒤에 탑이 보물796호인 9층석탑이다.

▼ 운주사(雲住寺) 석불군...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和順 雲住寺 石造佛龕) 보물 제797호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는 그 규모가 작다. 다탑봉(多塔峰) 골짜기에 자리한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 예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의 정상에 이르는 동안 여러 기의 석탑과 불상을 볼 수 있다.
 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놓았다. 감실 안에는 2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등이 서로 맞붙은 모습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예이다. 불상을 새긴 수법은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들어 나타난 지방적인 특징이 잘 묻어나온다.
 이처럼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유례를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등을 서로 맞댄 감실 안의 두 불상 역시 특이한 형식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문화재청>

 

▼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和順 雲住寺 石造佛龕) 보물 제797호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 (和順 雲住寺 圓形 多層石塔) 보물 제798호

 

운주사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아배 한복판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 땅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하여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을 하루낮 하루밤 사이에 도력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현재 절에는 탑 18기, 불상 70구가 남아 있는데,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앞에 자리잡은 이 탑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형태에서 일반적인 석탑의 형태를 따르지 않은 특이한 모양의 석탑으로 고려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기단(基壇)은 2단의 둥근 바닥돌에 높직한 10각의 돌을 짜올리고 그 위로 16장의 연꽃잎을 장식한 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원형이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2줄의 선이 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6층 뿐이나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조형면에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문 모습으로, 고려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양식이라 하겠다. 기단의 맨윗돌이 윗면이 편평하고 옆면이 둥근데 비해, 탑신의 지붕돌은 정반대로 아래가 편평하고 윗면이 둥글다. 이는 상하의 조화와 안정감을 꾀하려 한 의도로 추측된다.<문화재청>

 

▼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 (和順 雲住寺 圓形 多層石塔) 보물 제798호

▼ 운주사(雲住寺) 보제루(종무소)...

▼ 운주사(雲住寺) 대웅전

▼ 운주사(雲住寺) 대웅전 왼편에 지장전...

▼ 운주사(雲住寺) 대웅전 오른편에 요사체...

▼ 운주사(雲住寺) 대웅전에서 바라본 입구쪽 보제루(종무소)...

▼ 운주사(雲住寺) 대웅전은 좋은 기운이 뭉쳐 있다. 대웅전으로 내려오는 용맥...

▼ 운주사(雲住寺) 산신각과 미륵전...

▼ 운주사(雲住寺) 미륵전 앞 원구형석탑과 명당탑

▼ 명당탑 앞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

▼ 운주사(雲住寺) 와불 앞에서 바라본 공사바위... 명당탑 위로 올라가면 공사바위로 갈 수 있다.

▼ 운주사(雲住寺) 공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

▼ 운주사(雲住寺) 경내 다양한 석탑...

▼ 운주사(雲住寺) 범종각...

 

화순 운주사 거북바위교차문칠층석탑(和順 雲住寺 거북바위交叉紋七層石塔)

 

화순 운주사 거북바위교차문칠층석탑(和順 雲住寺 거북바위交叉紋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9호)은 운주사 계곡의 거북바위라고 불리는 암반을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7층의 탑으로 탑신의 2층에서 7층까지의 4면에 X자형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높이 7.17m의 고려시대 탑이다. 
탑은 지대석이나 기단부 등의 별다른 시설 없이 경사진 암반을 파내어 탑신을 세웠다. 현재 7층 옥개석까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기단부는 4매의 판석으로 ‘H’자형으로 조립하였으며 네 면에는 좌우 귀퉁이에 우주가 모각되고 면석 부분에 면석의 안쪽으로 문선대와 같은 보조 우주가 하나씩 얕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보조 우주의 표현은 고려 시대에 건립된 석탑에서 간혹 보인다. 
또한 1층의 탑신이 길쭉하여 1층 옥개석을 기단 갑석으로 오해하기도 하나 층급 받침이나 지붕골 같은 지붕 형식이 뚜렷한 경우는 옥개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7층탑을 이루려면 당연히 기단 갑석이 아니라 1층 옥개석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운주사 탑에서 흔히 보이는 경우이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옥개 받침이 6단의 각형 받침으로 표현되었고 모서리에서 중심을 향해 마치 목조 건축의 추녀목과 같은 두툼한[폭 9㎝, 높이 3㎝] 단이 양각되었다. 이러한 예는 한국 석탑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특이한 사례이다. 
옥개석의 상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평박하며 네 귀퉁이에는 합각머리가 두툼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을 1석씩으로 조성하였는데 초층과 2층의 탑신만은 4매석이다. 특히 2층 옥개석은 상면의 낙수면부를 별도의 판석으로 조성하여 올려놓았으며 그 최상부에 1단을 만들어 탑신 괴임석을 두었다. 
탑신석에는 우주의 모각이 없고 ‘×’형의 교차문을 양각하였으며 옥개석 아랫면 모서리의 단과 함께 일관성을 보여주는 문양의 표현이 주목된다. 또한 각층 옥개석에는 하면에 받침이 초층과 2층에는 5단, 4층 이상은 모두 4단씩을 표현되었다. 7층 옥개석 상면에는 1단의 괴임석만 두었을 뿐 아무런 부재도 없다. 
석불군 ‘바’군의 뒤쪽에 거북 바위 오층 석탑[무문양의 신라 전형 탑 형식]과 함께 자리하여 1금당 쌍탑의 기능도 고려한 듯하다는 견해도 있다. 
나름대로 조형미가 있는 탑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옥개석은 신라 형식에 가깝고 탑신은 고준하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문화유산정보, 문화유산채널) 

 

▼ 운주사(雲住寺) 와불 오르는 길에 있는 거북바위와 탑

▼ 운주사(雲住寺) 거북바위에 세워진 7층석탑, 5층석탑

▼ 운주사(雲住寺) 와불 앞에 있어서 시위불이라 불리워지는 부처... 와불 옆에서 떼어낸 것으로 확인 되었다.

 

화순 운주사 외형석조여래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3호)

 

운주사 계곡 서쪽 산 정상의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석불 2구로, 일명 와불(누워 있는 불상)이라고도 한다. 좌상의 대불은 어깨의 폭에 비해 양 무릎 사이의 폭이 너무 넓어 인구(사람의 형상)의 균형을 잃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큰 불상에 속한다. 작은 불상인 입상의 수인(손 모양)이 시무외인, 여원인 을 취한 것 같으나 어색하고 사실적이지 않다. 또한 옷 주름은 수직선과 사선으로만 처리하여 매우 단순하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 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다 세우고 이 와불을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울어 중단했다고 한다. 이 두 석불은 운주사의 많은 석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며, 크기도 각각 12.7m와 10.3m나 되어 국내에 있는 석불 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문화재 안내문을 인용> 

 

▼ 운주사(雲住寺) 와불

▼ 운주사(雲住寺) 와불 4방위에서 바라본 모습...

▼ 운주사(雲住寺) 와불은 산정상 능선 아래에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4방위 전경...

▼ 채석장에서 바라본 운주사(雲住寺) 

▼ 운주사(雲住寺) 칠성바위와 7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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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운주사(雲住寺)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천불천탑의 기운을 얻고자 소원지를 붙이면서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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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