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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답사를 하다보면 매번 한두군데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 번 가기도 힘든데 어쩌다 기회를 잡으면 그 일대를 다 돌아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매번 다녀와서 아쉬움을 갖곤 한다.
이런 때는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제일 많고, 시간에 쫒겨 건너 뛰는 경우가 그 두번째로 많다. 나머지 하나는 답사지가 사유지에 있어서 문중이나 땅 주인이 못들어가게 막아놓아 미쳐 가보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다.
개화산은 이곳에 풍산심씨 문정공 심정 묘가 있어서 20여년 전 묘지답사를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다가 10여년 전에 단체로 답사를 한 곳이다. 제 블로그에도 자료가 올라가 있다. 그 이후로도 몇번 개화산에 올 일이 있어서 이곳 묘역을 방문했었는데 유독 약사사는 지천에 두고도 그냥 지나쳤다.
요즘 전통사찰을 순례하기로 마음 먹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서울의 전통사찰 중 강서구에 약사사, 미타사, 법성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약사사를 가보겠다고 맘 먹고 있었다.
엊그제 방화역에 갈 일이 있어서 일을 보고 개화산을 올라 약사사와 개화산전망대를 찾았다. 내려오면서 풍산심씨 묘역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왔다.  막상 다녀와도 특별한 것은 없지만 못간 곳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매번 안가본 곳에 발길이 닫는 것이다.
개화산은 야트막한 산인데 이곳에 오르면 한강이 조망되고 강건너 행주산성, 인왕산 등이 조망된다. 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접근하기 어렵지만 그 아래쪽에 넓게 해돋이 광장을 조성해서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 산이 둘레길로 더 알려지고 약사사 절로 더 유명하겠지만 묘지답사객들에게는 이 산이 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으로 알려져 한 두 번은 다녀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산 아래 삼정초등학교 입구에는 좌의정 심정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약500여년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기려면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데 이곳 묘역의 입향조 격인 심정은 기묘사화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좌의정에 올랐지만 결국 동궁사건으로 김안로에 의해 사사되었다. 김안로가 죽은 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원되었지만 사림의 미움을 받아 영의정 남곤과 함께 끝까지 신원되지 못했다. 개화산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심정의 묘를 바라보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많이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 같다.

 

개화산(開花山)
 
강서구 개화동에 있는 산으로서, 開火山,주룡산,開化山,봉화뚝이라고도 한다. 개화산의 원래 이름은 주룡산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 때에 主龍 선생이라는 한 도인이 이 산에 살면서 매년 9월 9일에는 동자 두 세 명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구일용산음이라 하였으므로 주룡산이라고 하였다. 선생이 돌아간 후에 그 자리에는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개화산이라 일컬었다. 선생이 살던 곳에 언제부터인지(고려 때) 절이 생겼고 절 이름을 개화사라고 하였다. 개화사 절에는 약효가 좋다고 하는 약수 때문인지 조선 말기 쯤에 절 이름이 약사사로 바뀌었다. 산 정상에는 조선시대 사용했던 봉화대가 있었다. 또 산의 형상이 꽃피는 형국이라 하여 개화산이라고 한다. 전라도 순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하였다.<서울지명사전>

 

문화재지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9호, 제40호
문화재명칭 약사사3층석탑(藥師寺 三層石塔), 약사사 석불입상 (藥師寺 石佛立像)
소재지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332-2
관리자(연락처) 대한불교조계종 개화산 약사사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개화산(開花山) 약사사는 서울 강서구 관내 전통사찰 중 제1의 위상을 지닌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사찰입니다.
도량 중앙에는 삼층석탑(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호)과 석불(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호)이 모셔져있어 고려 후기의 창건 역사를 가늠케 합니다.
1486년(성종 17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약사사가 주룡산에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조선 후기 작성된 「양천읍지(陽川邑誌)」에 따르면 신라 때 주룡이라는 도인이 이 산에 머물렀다하여 주룡산(駐龍山)이라 이름하였고, 주룡 선생이 돌아간 후 기이한 꽃 한 송이가 피어 사람들이 개화산(開花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봉화를 받는 산이라 하여 개화산(開火山)으로도 불리었는데, 조선 초기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올라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하였다고 합니다.
1737년에 이르러 송인명(宋寅明)이 개화사(開花寺)에서 공부하고 재상이 되어 그 인연으로 절을 중수하였고, 순조 이후에는 약사사(藥師寺)로 개칭하였습니다. 1827년 송숙옥(宋叔玉)이 쓴 「개화산약사암중건기(開花山藥師庵重建記)」에 의하면 ‘약사암’이라 하고 삼한고찰(三韓古刹)로 표기하였습니다. 조선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謙齋鄭歚, 1676~1759)은 개화사(開花寺)라는 제목으로 사찰과 주변 풍경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1911년에는 일제의 사찰령에 의해 약사암은 잠시 봉은사의 말사가 되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사찰입니다. 1928년에는 원표스님이 약사전을 고쳐지었고, 1984년 설호스님이 다시 고쳐지었으며, 1988년 요사채와 범종각을 신축하였습니다. 2015년에는 기본교리 27기를 배출하였고, 종단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아 불교대학 1기생을 배출하였습니다.<약사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답사 코스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이정표

▼ 약사사(藥師寺) 오르는 길에 이곳 땅을 기증하신 분들을 위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입구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입구에 있는 인공폭포... 여름에는 시원할듯...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들어가는 길... 이곳까지 차량통행이 가능하여 평일인데도 차량이 많이 보인다.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전경...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연혁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대웅전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대웅전에 모셔진 석불입상(약사사 홈페이지, 관광공사에서 옮겨옴)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석불입상은 미륵불로 보는 경향이다.

▼ 약사사(藥師寺) 대웅전 뒤쪽에 작은 부처님이 아기를 안고 있다.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범종각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삼성각...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개화산(開花山) 약사사(藥師寺) 감로당... 종무소와 요사체로 쓰이고 있다.

▼ 약사사3층석탑(藥師寺 三層石塔)

▼ 개화산(開花山), 개화산둘레길 소개

▼ 개화산(開花山) 이정표...

▼ 개화산(開花山) 조망점...

▼ 개화산(開花山) 전망댕서 바라본 인왕산 방면...

▼ 개화산(開花山) 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양산(행주산성)

▼ 개화산(開花山) 봉수대... 원래 이곳이 아니지만 군부대에 있어서 이곳에 임시로 모형을 세운듯...

▼ 개화산(開花山) 둘레길에서 바라본 약사사...

▼ 개화산(開花山) 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 안내판... 우의정 심수경 묘에 있는 안내판

▼ 우의정 심수경 묘

▼ 개화산(開花山) 풍산심씨 입향조격인 좌의정 심정(沈貞) 묘

좌의정 심정(沈貞)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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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