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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을 맞아 답답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기운을 얻고자 

정말 오랜만에 도봉산을 찾았다. 딱히 어디를 가겠다는 목표도 없었지만 입구에서 

목필균 시인의 시비(詩碑)를 보고 그냥 천축사(天竺寺)를 가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도봉산 입구에 있는 목필균 시인의 시비 '천축사 가는길'

 

▼  '천축사 가는길'을 옮겨보았다.

 

 

오랜만에 찾은 도봉산이라 입구에서부터 바뀐 모습들이 자꾸만 사진기를 꺼내게 

만들었다.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하고 기억을 더듬기도 하면서 천축사

(天寺) 가는 길을 생각하며 산을 오른다.

 

▼ 도봉산 입구 국립공원 안내판

 

 

도봉산 입구에서 섹스폰 소리가 들리는데 예전에 녹야원 가는 갈림길에서 뵙던 

분 같은데 지금은 입구에서 불고 계셨다. 그때 그분인지는 나도 모를 일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거리두기 단계에 맞춰 입장시간도 새벽4시에서 7시로 

조정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일일이 확인하는 것 같았다. 오후 3시 이후에는 

산에 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 도봉산 등산로 곳곳에 걸려있는 입산시간 안내

 

 

입구의 우암 송시열의 도봉동문 각자도 다시한번 확인하고, 신정왕후 조대비의 

별장이 있었던 광륜사에 잠깐 들러 아기를 안고 계신 관세음보살님도 잠시 뵙고 

합장을 올리고 올라간다.

 

▼ 우암 송시열이 쓴 '도봉동문' 각자

 

▼ 광륜사 입구에 있는 안내판

 

 

도봉서원은 예전 발굴조사하던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서원입구에 있는 김수영 

시비는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김수영 문학관이 방학동에 있는데 그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그의 시비 

아래에 그의 화장유골이 있다고 들었다. 가던길 잠시 멈추고 김수영 시비에 

새겨진 풀을 한번 음미해 보았다.

 

▼ 김수영 시비와 미래유산 안내판

 

▼ 도봉서원 터 앞 개울에 있는 '고산앙지' 각자... 김수증이 쓴 글자이다.

 

 

그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등산로가 열린다. 그곳에서 멀리 도봉산 

선인봉이 보이는 곳에 안내판과 함께 포토포인트가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제일 멋진 

사진이 찍히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곳에 천축사(天竺寺) 안내 이정표도 설치

되어 있다. 

 

▼ 도봉산 등산로 시작지점에 있는 선인봉 관망 포토포인트

 

 

등산로에는 돌계단들이 수도 없이 놓여 있는데 예전에 다녀왔던 길들이라 그런지 

기억에 다 남아 있다. 특히 코너를 도는 곳이나 가파른 곳 등은 아주 새록새록 떠오

른다. 등산 오신 분들이나 마치고 내려가시는 분들이나 하나같이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새삼 지난 한 해가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 도봉산 천축사 안내석

 

▼ 도봉산 천축사 가는 길에 얼음이 얼어있다.

 

 

가파르다고 볼 수도 없는 길이지만 오랜만에 가는 길이고 또한 겨울 산길이라 

조심조심하면서 쉬엄쉬엄 걸었다. 걷다보니 도봉산 천축사(天竺寺) 일주문이 

보인다. 예전에는 못 보던 일주문이다. 처음에 천축사를 방문했을 때 오르던 

길은 지금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바위 틈으로 샛길이 있었는데 그 길은 

사람들이 안 다니고 새롭게 뚫린 길은 돌계단으로 근사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 도봉산 천축사 일주문

 

 

도봉산(道峰山) 천축사(天竺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673년(문무왕 13)에 의상(義湘)이 만장봉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의상대(義湘臺)에서 수도할 때 현재의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고 하였다.그 뒤 고려 명종 때는 영국사(寧國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부속 암자로 삼았으며, 1398년(태조 7)함흥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寺額)을 내렸다. 절 이름을 천축사라고 한 것은 고려 때 인도 승 지공(指空)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1474년(성종 5)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명종 때는 문정왕후(文貞王后)가 화류용상(樺榴龍床)을 헌납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1812년(순조 12) 경학(敬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에도 이 절은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 여러 차례 중수했는데, 현재의 당우는 1959년에 중수한 것이다.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圓通殿)·복운각(福雲閣)·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참선도량인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특히, 무문관은 근래에 세운 참선 정진처로서 부처의 설산(雪山)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을 면벽수행(面壁修行)하는데, 방문 밖 출입은 일체 금지되어 있고 음식도 창구를 통하여 들여보내며 수행의 규범이 매우 엄하다. 고승 중 이 무문관에서 6년 또는 4년의 정진을 한 이들이 많다.문화재로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는 제292호 비로자나삼신불도(毘盧舍那三神佛圖) 및 복장유물(腹藏遺物)・제293호 비로자나삼신괘불도(毘盧舍那三神掛佛圖)・제347호 목조석가삼존불・제366호 목조불단(木造佛壇) 등이 있고, 그외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65호 마애사리탑(磨崖舍利塔)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약 50년 전에 창건한 석굴암이 있다. 당우로는 석굴·만월보전(滿月寶殿)·나한전(羅漢殿)·종각(鐘閣)·요사채 등이 있으며, 석간수(石澗水)가 좋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예전 목필균 시인이 다녔을 때는 이런 길은 아니었겠지... 일주문 지나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끝에 금강역사 두 분이 양쪽에서 마주하며 반긴다. 그곳에 수많은 

부처님을 모셔두고 촛불을 켤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오며가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간절한 소망을 빌고 있다.

 

▼ 도봉산 천축사

 

▼ 천축사 입구 

 

 

안쪽으로 오르니 바로 도봉산(道峰山) 천축사(天竺寺) 대웅전이 한 눈에 들어오고 

절간 뒤로 도봉산의 우뚝한 바위가 위용을 드러낸다. 이런 곳에 일반인들이 산다면 

당연히 말려야 하겠지만 종교시설, 기도처로는 강한 기운을 받는 곳이니 영험한 

곳으로 인정 받을 수도 있겠다. 좁은 가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웅전 

건물도 아래층은 종무소로 사용하고 위층은 대웅전으로 만들었다. 불교를 종교로 

갖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항상 문제가 대웅전을 들어가지 못해 생긴다. 

문화재가 대부분 대웅전 안에 있다 보니 사진도 못 찍고 직접 보지도 못한다. 

이점 독자들께서는 이해 바란다.

 

▼ 천축사 전경

 

▼ 천축사 대웅전... 뒤로 연등이 걸려 있는 곳이 산신각이다.

 

 

그렇지만 나는 절을 수도 없이 방문하고 문화재를 확인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주로 산신각, 칠성각에서 이뤄진다. 천축사에도 산신각이 맨 윗쪽에 있는데 잠시 

기도하고 내려왔다. 특이하게 석굴이 있는데 이곳은 바위를 파고 그곳에 약사불을 

모셨다. 그 앞에 촛불 켜는 곳이 있어서 가족의 건강과 올 한 해 소원성취를 빌면서 

초를 밝혔다.

 

▼ 천축사 옥천석굴원

 

 

천축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근사하다. 이곳을 천축사로 개명할 때 지공

스님이 인도의 천축국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지었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여기서 

바라보는 모습이 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산신각에서 바라본 전경

 

 

돌아나오면서 탑돌이를 하고 다시금 기도를 드리면서 건강하게 무탈한 한 해가 

되도록 빌었다. 마당바위까지 올라갔다가 도봉산을 한 번 올려다보고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다시 여미며 하산을 했다. 

 

▼ 대웅전에서 바라본 입구... 삼층석탑이 보인다.

 

 

오랜만에 찾은 도봉산(道峰山)은 그대로 있었고 천축사 가는 길에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도 마련하고 올 한 해 건강한 삶을 기원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은 편안하다.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을 위해 연등을 하나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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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