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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독립운동기념터 표석으로 표시된 곳이 여러 곳이다. 그러다보니 조금 헷갈리기 때문에 아마도 서울시에서도 나름 구분을 짓기 위해 표시를 했는데 아직 표석에는 수정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 서울역 부근에 있는 표석은 남대문역전이라고 구분해 놓았다. 따라서 나도 구분 짓기 위해 '3.1독립운동기념터; 남대문역전'이라고 표기한다.

이곳은 이미 오래전에 답사를 진행했었는데 특별히 바뀐게 없어서 지난 봄에도 찾지 않았었다. 그런데 포스팅을 하려고 보니 바로 앞 연세세브란스빌딩 앞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터; 세브란스병원' 표석이 위치가 바뀌고 주변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다시 찾아야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꺼번에 이곳과 부근의 한음 이덕형 선생 집터까지 다녀왔다.

이곳도 예전의 서울역고객주차장이 폐쇄되고 주변이 정리 된 듯한데 노숙자들이 여전히 주위에 많이 계시다보니 이 표석은 항상 깨끗한 환경하고는 거리가 멀다.


▣ 3․1독립운동기념터;남대문역전


1919년 3월 5일 오전 9시경 학생단의 주도면밀한 사전 준비 속에 남대문역 광장에 모여든 군중은 수만 명을 헤아렸다. 학생단 대표로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과 보성법률상업학교의 강기덕이 각각 인력거를 타고 ‘조선독립’이라 크게 쓴 기를 휘두르며 달려와 제2차 독립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선언하자, 군중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고, 선두에 선 김원벽과 강기덕의 지휘에 따라 남대문 방향으로 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때 붉은 완장을 두른 학생들이 격문을 뿌렸고 시위에 동참하는 군중은 더욱 늘어났다.

남대문 앞에서 시위대를 제지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관헌에 의해 김원벽·강기덕 등 지도부가 체포된 뒤, 검속을 면한 시위대는 여러 대로 나뉘어 한 무리는 남대문시장에서 조선은행 앞을 지나 종로 보신각으로 향하고, 또 한 무리는 남대문에서 대한문 앞과 무교정을 거쳐 종로 보신각으로 향했다. 대한문 앞에서는 약 1만 명에 이르는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였고, 종로 보신각 앞에서는 정오 무렵 여러 대로 나뉘어졌던 시위대가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다 강제 해산당하였다.

3월 5일 시위 이후 일제 관헌이 독립시위를 기획하는 학생과 일반인을 대대적으로 검문했기 때문에, 이후 서울 중심가에서의 대규모 시위는 일어나지 못했다.

<독립기념관 국내사적지소개 남대문역전 학생단 3·1운동 만세시위지에서 인용>


▼ 3․1독립운동기념터;남대문역전 표석


▼ 3․1독립운동기념터;남대문역전 표석... 예전 고객주차장은 폐쇄 되었다.


▼ 3․1독립운동기념터;남대문역전 표석.. 서울역전우체국 옆에 있다.


▼ 3․1독립운동기념터;남대문역전 표석... 서울역 방향 서울로 7017 고가도로가 보인다.


▼ 3․1독립운동기념터;남대문역전 표석 위치


▼ 3․1독립운동기념터;남대문역전 표석 위치... 주위의 다른 표석도 참고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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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