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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빙고 터를 답사한 시기는 5~6년 전 쯤 인 것 같다. 그때 표석 주위로 무질서하게 자동차,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어서 안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로드뷰로 확인해 보니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행한 일이긴 한데 저는 또 한 번 방문을 해서 사진을 찍어야 하니 이것도 일 하나 추가인 셈이다.

이 부근은 보안사서빙고분실이 있는 곳으로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권관련 옛터라고 볼 수 있다. 이 부근 대원아파트 있는 곳이 보안사서빙고분실 터다. 아파트 입구 보도에 동판으로 빙고호텔 터라고 새겨져 있다. 이 일대의 표석들도 다시금 볼 겸해서 서빙고 터 표석은 다시 방문해야 될 표석이다. 조만간 다녀와서 사진을 수정 보완할 예정이니 이해 바랍니다.


 

▣ 빙고(氷庫)

 

빙고(氷庫)는 조선시대 왕실 또는 관료들이 사용할 얼음의 관리를 맡던 관청이다. 이런 관청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나타난다. 신라에는 빙고전(氷庫典)이란 관청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조선은 언제 설치하였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다만 태종 때부터 기록에 나올 뿐이다. 한성 이외의 지방에서도 별도로 빙고를 만들어 아전(衙前)이 운영하기도 하였다. 빙고는 얼음의 저장, 관리를 위해 인근 주민과 군사들 간에 빙부(氷夫)라는 노동자를 뽑았다.

현존하는 유구로 볼 때 빙고에서 관리한 창고는 대개 성 바깥, 강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겨울에 강에서 얼음을 쉽게 채취,운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주, 안동, 창녕, 영산 등지에 남아 있는 석빙고는 대부분 18세기 초 영조 때 축조한 것이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서빙고(西氷庫)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기슭 한강 가에 있었다. 고려시대의 관습에 따라 조선 건국초에 설치되었다. 얼음의 채취·보존·츌납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서이다.

여기에는 8개의 저장고가 있었고 총 13만4974정(丁)의 얼음이 저장되었는데, 이는 동빙고(東氷庫)의 12배, 내빙고(內氷庫)의 3배가 넘는 규모였다. 이곳을 관리하던 관원으로는 무록관(無祿官)인 별제(別制) 1인, 별검(別檢) 1인, 서원(書員) 1인, 군사 2인이 배정되어 있었으나, 조선 후기는 서원과 군사가 각기 3인씩으로 증치되었다.

동빙고가 국가 제사용 얼음, 내빙고가 궁중전용 얼음을 저장한 데 비해, 서빙고는 궁중, 문무백관 및 환자나 죄수들에게 나누어줄 얼음까지 저장하였다.

얼음의 저장은 한강이 4치의 두깨로 어는 12월(양력 1월)에 시작되었고, 이듬해 3월부터 빙고를 열고 반출하기 시작하였다.

얼음을 저장하고 반출할 때는 먼저 사한신(司寒神)인 현명씨(玄冥氏)에 대한 제사의식이 있었다. 서빙고의 얼음 저장과 시설 관리를 위해서 연간 쌀 1,000여석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주위가 아주 무질서해 보였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 되었다.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용산구 장애인 커뮤니티센터 앞에 있다.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이태원교회와 용산구 장애인 커뮤니티 센터 사이에 있다.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표석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다.

 

 

▼ 서빙고 터(西氷庫址)

 표석... 서빙고역에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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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