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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기념표석 답사를 하다보니 수시로 표석 설치 현황이 바뀐다. 언론에 보도 되는 것은 개별적으로 찾아가곤 하는데 언론에 발표없이 설치되거나 철거 되는 표석들은 알 길이 없어서 서울시에 문의하여 표석현황을 제공 받아서 살펴보고 있다.

별영창.읍청루 터(別營倉 挹淸樓 址)는 2019년에 설치한 비교적 최근 표석이다. 그 전에 여러 사이트에서 이곳에 별영창, 읍청루가 있었다고 사진 등으로 보던 거라 새로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울시에서 설치한 표석이니 안 가볼 수 없어서 이번에 표석 답사를 하면서 우선순위에 넣고 찾았다. 

이 부근은 한강이 있고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는 여지없이 정자나 누각이 있어서 관청이나 이름 있는 사람들의 별장이 존재한다. 또한 마포구와 용산구의 경계에 있다 보니 한꺼번에 답사를 해야 하는데 표석 소개가 따로따로 되어 있다 보니 답사 하는 사람이 알아서 동선을 잘 짜야 한다.

최근의 표석은 돌로 만든게 아니라서 표석이라고 말하기 조차 곤란하다.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데 품위가 도무지 살아나지 않아 관람객들도 옛 터에 대한 향수나 정감을 느끼기에는 미흡하다고 여겨진다. 표석은 돌로 만들어서 품격을 갖추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동국여지비고』권1 무직공서 조에"별영이 용산에 있는데 헌종 14년에 세웠다. 혹 선조 병신년에 세웠다고도 한다. 훈련도감의 군병들 급료를 지급하는 곳으로 거기에 읍청루가 강가에 있어 명승으로 친다."라고 했고, 『한경지략』명승조에도 "읍청루는 소속된 별영창고에 딸린 누각이다. 앞으로 긴 강물이 흘러서 경치가 매우 좋다."라고 적고 있다. 읍청루는 정조 원년에 지은 집으로 여기까지 나와 놀다가 읊은 정조 임금의 읍청루 시도 전한다.

읍청루는 조선조 말기에 이르러 세관감시소가 되고 뒤미쳐 총세무사이던 영국인 브라운의 별장이 되었다가 일제 시기에는 이른바 조선총독부의 정무총감 별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개화의 물결과 더불어 용산강의 수운도 현대화하여 고종 25년 8월 용산강에 증기선이 나타나서 삼산회사의 16톤급 용산호와 13톤급 삼호호가 인천과 용산 사이를 운항하기 시작하였다. 다음 해에 인천에 있던 독일 계통의 세창양행의 35톤급 제강호가 고종 28년에는 미국인 타운센트의 순명호가 운항하고 30년에는 동순태 라는 청국 상사가 용산에 화물마차회사를 설치하고 육지 운송권을 따내는 한편, 청조수항공사 관리선인 100hs급 한양호를 건조하여 역시 인천과 용산간의 수상운송을 맡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용산은 한때 외국상사 특히 청일 상인들의 경쟁무대가 되었다. 이때 읍청루에 세관이 설치되었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청국계의 한양호가 일본에 빼앗긴 후로 용산은 일본인의 독무대처럼 되었다.

<문화콘텐츠닷컴에서 인용>



읍청루(挹淸樓)


조선시대 한강용산 일대에 세운 정자.

읍청루(挹淸樓)는 1777년(정조 1)에 도성 남서쪽의 대표적인 포구이자 관문이었던 마포나루 일대의 별영창(別營倉) 부근에 세운 정자이다. 별영창에 부속된 정자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였으며, 주로 한강을 조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읍청루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암동의 강안(江岸)에 위치하였으며, 한강 일대의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왕족이나 사대부들이 여가를 즐기던 정자로 사용되었다. 별영을 세우고 거기에 읍청루를 지어 훈련도감의 군병들 급료를 지급하는 곳으로 이용하였다. 읍청루는 별영 창고에 딸린 누각으로 강가에 있어 수변경관이 수려한 명승으로 손꼽혔다. 정조대에는 왕이 거둥하여 수군 훈련을 열병(閱兵)하였다(『정조실록』 19년 3월 18일).

한강변 용산 강안 일대의 산턱 중에 돌출된 부분이 있는데, 이를 ‘용머리’ 또는 ‘부루배기’라 불렀다. 1596년(선조 29)에 용머리의 동남쪽, 원래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이 있던 자리에 별영창을 세웠다. 이를 ‘벼랑창’이라고도 하였다.

별영창은 훈련도감 군인들의 급료와 마료(馬料)를 출납, 관리, 보관하는 군사용 창고였다. 거기에 읍청루를 지어 훈련도감 군병들의 급료를 지급하는 곳으로 이용하였다. 현재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과 용산구 청암동 경계에 있었다.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 용산강에 증기선이 나타나고 용산이 청나라와 일본 상인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을 때 읍청루에 세관을 설치하였다. 이후 총세무사였던 영국인 브라운(Brown)의 별장으로 쓰였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별장으로도 사용되었다. 현재는 모두 소실된 상태이다.

<위키실록사전에서 인용>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sk네트웍스 강변주유소를 찾으면 쉽게 도착할 수 있다.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 위치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



▼ 별영창.읍청루(別營倉 挹淸樓) 표석 위치



▼ 용산구 표석 위치... 마포대교 부근은 마포구 표석과 용산구 표석이 같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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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