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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에 유일하게 있는 표석이 방학호진 터 표석이다. 예전에 표석 답사를 할 때도 이곳에 하나 있어서 동작구와 연계해서 답사를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도 차량으로 하기에는 주차 문제 등이 있어서 지하철과 자전거(서울시 따르릉)을 이용하여 동작구와 함께 진행했었다. 

지금 지형을 생각해 본다면 이곳에 나루터가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인데 당시에는 이곳까지 샛강의 흰 모래사장이 펼쳐졌다고 하니 여의도 샛강 지형이 많이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방학호진 터 표석은 영등포로 큰 길가에 있는데 대로변의 한강쪽에 있는게 아니고 반대쪽 신길동 쪽에 위치한다. 

방학호진 터 표석 내용이 옛날과 달라져서 다시금 찾아 사진을 찍었는데 이곳은 왠지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는 그런 썰렁한 느낌이 든다. 새로 만든 표석의 글자체도 그렇고 옛날 표석처럼 정감이 안가는 것은 나만 그런건지 모르겠다.



▣ 방학호진(放鶴湖津)나루터


학이 놀다간 호수 같았다는 옛 나루터 방학호진

이 방학호진(放鶴湖津)나루터는 예전에 이곳에 그곳의 흰 모래사장과 언덕에 소나무 등의 나무가 무성하고 경치가 빼어나 학이 놀다가는 호수같은 나루터라 하여 이름 붙여진 곳으로, 「동국여지승람」 금천현조에 「금천현(시흥읍의 옛명칭)에서 북쪽으로 25리 되는 곳에 암곶(岩串)이라는 포구가 있다.」라 하여 바위곶이와 연유된 방하곶진(方下串津) 나루터라고도 불러졌다. 

고려말기의 충신 목은 이색(李穡)은 이 포구에 조운선(漕運船, 물건을 실어 나르는 데 쓰는 배)이 모여들어 1천척이나 되는 배의 노 젖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했으며,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 진도조(津渡條)에는 「방학호진이 있는데, 그 나루터는(여의도샛강을 돌아) 서울 마포로 가는 길이다」라 했으며, 조선말기 고종 때 이곳에 향연의 장소로서 방학정(放鶴亭)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나루터 주변 부군당에서 한해의 풍년과 한강을 무사히 잘 건너게 해주길 기원하는 영등굿 행사 등이 널리 행해졌다 하고, 방학호진의 또 다른 별칭인 「방하곶(方下串)」의 바로 아랫마을을 뜻하는 하방하곶(下方下串)은 지금의 영등포동으로 지칭되어, 이러한 여러 사항 등을 짐작해 볼 때, 이곳이 永登浦란 명칭을 태동한 계기를 제공한 곳으로 대개 추정된다.

한편, 이곳은 1899년 영등포역 출현과 1925년 대홍수에 따른 한강치수사업 및 1968년 여의도개발추진, 1988년 올림픽대로 개통 등으로 해서 지금은 자동차전용도로인 올림픽도로와 노들길사이 간선변으로 변해 옛나루터의 흔적이 거의 없어진 채, 인근 ‘방학곳지 부군당’과 ‘귀신바위와 느티나무’ 전설 등을 통해 그 희미한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출처 : 永登浦 近代100年史,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청, 2011년.|영등포story8(작성자 khandole)에서 재인용]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은 삼성빌딩,자연드림카페 앞 담에 붙어 있다.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은 우성아파트 402호 길 건너에 있다.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 명성타워힐 오피스텔 길 건너에 있다.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 뒷면... 앞쪽 도로가 영등포로 큰 길이다.



▼ 옛날 방학호나루터(放鶴湖津址) 표석...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 방학호진 터(放鶴湖津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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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