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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옮긴 노태우(盧泰愚)대통령 묘소 방문

노태우대통령 묘소를 포스팅 한 뒤 묘소가 옮겨서 그 이후에 겨울에 다녀오고, 이번 여름에 또한번 다녀오게 되었다. 수정된 내용을 올려야 하는데 자꾸 미뤄지게 되어 맘 먹고 글을 올린다. 요즘엔 선현묘지 답사를 꾸준히 하면서도 글은 거의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미 올린 묘역과 겹치는 면도 있지만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다. 무엇이든 열정이 있을 때가 하나라도 이뤄지는 게 나타나는데 요즘은 그런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예전 노태우대통령 묘소(이장 전) 바로가기

 

겨울에 한번 다녀오고 이번 여름에 또한번 가서 사진을 두 번 모두 올리려고 하다보니 좀 정신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이 점 감안하면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예전 묘소 위치는 경황 없이 묘를 써서 그런지 묘역 중앙에 서향으로 배치하였는데 그러다보니 뒤에서 불어오는 계곡풍을 온 몸으로 다 받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는데 누군가의 조언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위치를 한쪽 구석으로 옮기고 남향 배치를 하면서 뒤에 산을 등지면서 바람은 많이 완화가 되었다.

곡장형식의 사성을 쌓은 것도 바람을 막는 중요한 시설이 된다. 처음 위치보다 훨씬 좋아진 현재의 묘소는 나름 후손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되어진다. 사진으로 함께 합니다.

 

노태우(盧泰愚)대통령 
 
노태우(盧泰愚, 1932년 12월 4일~2021년 10월 26일[1][2])는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이다. 제4공화국 당시 친구인 전두환과 하나회를 결성하여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하였다. 반란 성공 이후 정계에 입문하였고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제41대 내무부 장관직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교하이며 대구 출생이다.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하고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전두환, 김복동의 육사 동기이기도 하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12·12 군사 반란 등에 가담했다. 제12대 국회의원과 정무2장관, 체육부와 내무부의 장관을 지냈으며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제13대 대통령을 지냈다.대구공업중학교를 다니다가 경북중학교로 전학한 뒤, 1950년 한국 전쟁 중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입대하였다. 1951년에 육사에 11기 생도로 입학, 1955년에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1961년 8월 17일에는 학생군사교육단(ROTC의 전신)의 창설준비요원과 교관을 역임했고, 베트남 전쟁에는 1967년 지구대대의 대대장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1974년에 장성으로 진급한 그는 신군부의 2인자로 제 9공수특전여단장, 청와대 작전차장보, 보안사령부 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1980년에는 국가보위입법위원회 비상대책위원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1981년에 대장으로 예편한 후 제5공화국에서 1981년 정무2장관, 대통령 특사, 1982년 체육부 장관, 41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985년에 민주정의당 최고위원으로 전두환 당시 총재로부터 내정되어 당권 전부를 위임받고 1987년부터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제13대 대선에 36%의 낮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물론 그의 대통령당선에는 김영삼 김대중 양김의 분열이 한몫했다.198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정치인 및 정치에 대한 풍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동구권, 소비에트 연방 등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고, 1991년에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자치제 부활을 수용하여 지방자치제도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또한 1991년 남북한 UN 동시 가입 결정이 내려지자 보수 세력의 반발에도 이를 강행하였다.1993년에 퇴임한 후 1995년 비자금 사건 등으로 연루,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구속되었다.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97년 12월 22일에 특별 사면을 받고 복권되었다.1983년 서울 올림픽 임시 조직위원장이 되었다가 그해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구성되어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올림픽을 준비하였고, 서울 아시안 게임을 유치한 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 아시안 게임 조직위원장으로 준비와 진행을 지원했다.체육을 좋아하여 육사생도 시절에는 육상부와 럭비부 팀원으로 활약했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는 제28대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제13대 대선 당시 보통 사람임을 강조했는데, 이는 1994년 그가 정치 비자금을 챙긴 것이 당시 총무처 장관 서석재와 당시 국회의원 박계동 등에 의해 연이어 폭로되면서 풍자되었다.<위키백과에서 인용>

 

▼ 노태우대통령 묘소... 파주동화경모공원 묘지 맨 위쪽 전망휴게실 옆에 위치한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 이장 전, 후의 위치... 앞쪽에 안산을 조성하고 뒤에 곡장을 둘러 한층 안정감이 있다.

▼ 노태우대통령 묘역

▼ 노태우대통령 묘소... 전직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된다면 국립현충원으로 갔겠지만 이곳으로 오게 된 경위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것이다. 국립현충원에는 매일 꽃바구니 묘역에 올리는데... 이곳은 그나마 일부 후손, 시민들이 찾아와 꽃을 올리는듯 보인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민족의 번영과 통일을 염원하며...

▼ 노태우대통령 묘소 후경... 겨울과 여름 비교... 아침에 주로 찾다보니 역광으로 찍게 된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 이장 전, 후 위치와 향선

▼ 노태우대통령 예전 묘소 위치... 뒤에서 계곡을 타고 오르는 바람길에 노출되었는데 지금은 그런 우려는 없어졌다.  앞쪽에 안산을 만들고 뒤에 곡장을 둘러 바람은 어느정도 해소된 느낌이다.

▼ 앞쪽 안산에서 바라본 묘역... 하수도가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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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