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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盧泰愚)대통령 묘소

 

얼마전 현대사의 질곡의 역사를 이끈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타계했다. 본래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시면 서거(逝去)라고 하여 한단계 높여 부르는데 이번에 한 달 간격으로 타계하신 두 분에게는 서거(逝去)란 말을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나마 노태우대통령은 국가장으로 치렀지만 전두환대통령은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은 분들이다. 육사11기로 동기이면서 12.12군사반란을 주도했고 5공화국과 6공화국을 서로 바톤 터치하면서 대통령을 지냈다. 그런데 같은듯 다른 것이 너무 많아 친구에서 나중에는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하였다.

노태우대통령은 재임시절 이북출신 실향민들을 위해 파주에 동화경모공원을 조성한 업적으로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재임시절 북방정책을 편것과도 연관이 되고 임진강, 황해도가 바라보이는 곳에 묻힌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전두환대통령의 유골은 아직도 연희동 자택에서 갈곳을 모르고 안치되고 있다. 합천에 생전에 신후지지로 잡아놓은 가묘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곳도 못들어 가는가 보다.

우리 정서상 돌아가시면 어느정도 용납도 하고 인정도 베푸는데 두분에게는 참 냉혹한 현실로 되어 대전 현충원에 국가원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도 감히 생각조차 못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이 진리이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볼 일이다.

노태우대통령 묘소를 갑자기 가보고 싶어졌다. 묘소는 동화경모공원 맨 꼭대기 전망휴게실 옆 현재는 빈터로 된 곳 중앙에 모셔졌다. 대통령을 지냈으니 위로 올라가는 것도 괜찮다 싶다. 꼭대기라서 바람이 거셀 것으로 봤는데 길 건너 앞쪽으로는 바람이 엄청난데 이곳 묘소는 바람도 잔잔한 것이 괜찮아 보인다. 앞쪽이 안산 역할을 하여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묘역을 정비할지는 몰라도 작은 비석이라도 세워졌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부디 영면을 취하시길 빈다.

 

 

노태우(盧泰愚)대통령 
 
노태우(盧泰愚, 1932년 12월 4일~2021년 10월 26일[1][2])는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이다. 제4공화국 당시 친구인 전두환과 하나회를 결성하여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하였다. 반란 성공 이후 정계에 입문하였고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제41대 내무부 장관직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교하이며 대구 출생이다.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하고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전두환, 김복동의 육사 동기이기도 하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12·12 군사 반란 등에 가담했다. 제12대 국회의원과 정무2장관, 체육부와 내무부의 장관을 지냈으며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제13대 대통령을 지냈다.
대구공업중학교를 다니다가 경북중학교로 전학한 뒤, 1950년 한국 전쟁 중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입대하였다. 1951년에 육사에 11기 생도로 입학, 1955년에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1961년 8월 17일에는 학생군사교육단(ROTC의 전신)의 창설준비요원과 교관을 역임했고, 베트남 전쟁에는 1967년 지구대대의 대대장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1974년에 장성으로 진급한 그는 신군부의 2인자로 제 9공수특전여단장, 청와대 작전차장보, 보안사령부 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1980년에는 국가보위입법위원회 비상대책위원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1981년에 대장으로 예편한 후 제5공화국에서 1981년 정무2장관, 대통령 특사, 1982년 체육부 장관, 41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985년에 민주정의당 최고위원으로 전두환 당시 총재로부터 내정되어 당권 전부를 위임받고 1987년부터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제13대 대선에 36%의 낮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물론 그의 대통령당선에는 김영삼 김대중 양김의 분열이 한몫했다.
198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정치인 및 정치에 대한 풍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동구권, 소비에트 연방 등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고, 1991년에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자치제 부활을 수용하여 지방자치제도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또한 1991년 남북한 UN 동시 가입 결정이 내려지자 보수 세력의 반발에도 이를 강행하였다.
1993년에 퇴임한 후 1995년 비자금 사건 등으로 연루,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구속되었다.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97년 12월 22일에 특별 사면을 받고 복권되었다.
1983년 서울 올림픽 임시 조직위원장이 되었다가 그해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구성되어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올림픽을 준비하였고, 서울 아시안 게임을 유치한 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 아시안 게임 조직위원장으로 준비와 진행을 지원했다.
체육을 좋아하여 육사생도 시절에는 육상부와 럭비부 팀원으로 활약했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는 제28대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제13대 대선 당시 보통 사람임을 강조했는데, 이는 1994년 그가 정치 비자금을 챙긴 것이 당시 총무처 장관 서석재와 당시 국회의원 박계동 등에 의해 연이어 폭로되면서 풍자되었다.<위키백과에서 인용>


동화경모공원

 
동화경모공원은 단순한 묘원이 아닌, 통일을 갈망하는 이북 도민들의 생전에 이루지 못한 망향의 한을 위로하기 위한 성지로 조성되었습니다.
또한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긴 후 이북 도민들께서 겪은 인고의 세월과 반공투쟁으로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한 산 증인이자 주역들의 넋을 기리고 그 역사를 재조명하여 자랑스러운 정신적 유산을 후손들에게 길이 남길 수 있도록 조성된 경모 숭조의 참다운 「추모의 기념장」입니다.

◆ 설립 배경
ㅇ이북 7개 도민회로 구성된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출자한 동화경모공원은 1995년 9월 6일 재단법인을 설립, 이북도민들의 자유민주통일의 성지로 조성했다.
ㅇ이북실향민들에게 추모의 장을 조성, 생전에 풀지 못한 망향의 한을 위로하고, 후손들에게도 설날, 한식, 추석 등 명절에 이북도민 후계세대로써 도민 1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고향수복의 정신을 되새기고 자유민주통일을 염원하는 애향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통일안보교육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ㅇ동화경모공원은 이북실향민들의 70년 망향의 한과 통일염원의 뜻을 담고 실향민들의 한강의 기적 성역화를 이루는 동시에 도민사회의 자긍심을 드높이게 되는 계기가 된 이북실향민의 성역이다.

1995년9월7일 개원하여 현재 2단계 묘역공사를 준공하였고 제1추모관, 제2추모관을 갖추고 있다.<(재)동화경모공원 홈페이지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노태우대통령 묘소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32
관리자(연락처) 파주동화경모공원묘지

 

▼ 노태우대통령 묘소... 파주동화경모공원 묘지 맨 위쪽 전망휴게실 옆에 위치한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9일 경기 파주 통일동산내 동화경모공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그동안 임시 안치됐던 파주의 사찰인 검단사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묘역 및 납골당 시설인 동화경모공원내 맨 위쪽 전망휴게실 옆 부지에 안장됐다. 이곳에서는 한강과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이 맨눈으로 보인다.
납골함을 안치한 묘지는 봉분이 없는 평장묘(8.3㎡) 형태로 가로, 세로 1.8m의 둘레돌(묘지석)을 놓았다. 둘레돌에는 아무것도 새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생전에 검소한 장례를 희망하셨고 '보통사람 노태우'에 걸맞게 가족들이 뜻을 모았다"는 게 유족측의 설명이다.
다만 둘레돌 안쪽 납골함을 넣은 안쪽 돌에는 "한반도에서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 세계에는 확실한 평화가 올 것입니다", "참고, 용서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참용기입니다"처럼 고인이 생전 즐겨하던 말을 새겨넣었다고 한다.
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보통사람 노태우"라는 글귀와 "6.29선언, 88서울올림픽, 남북기본합의서, 7·7 선언, 5·18 광주시민 명예회복 및 보상법 제정" 등 재임시 치적도 써넣었다.
안장식은 국가장 집행위원장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노 전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박정 국회의원, 최종환 파주시장과 가족 등 2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안장식은 개식,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경례, 종교의식, 추모사, 헌화 및 분향, 안장, 취토, 유족인사, 조총 및 묵념, 폐식 등 순서로 진행됐다.
아들 노재헌 씨는 "'아버지는 부족한 내가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이 더없는 영광이고 행운이었다'는 말씀을 남기셨다"며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또 개선해 나가야 할 책임이 저희 유족들에게 남아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임 시 실향민들을 위해 조성하신 동화경모공원에서 분단된 남북이 하나가 되고 한민족이 번영과 화합의 길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시리라 믿는다"며 "아버지의 걸어오신 길, 살아오신 길이 굴곡도 있었으나 보람 있는 길이었음을 새삼 느꼈다"고 덧붙였다.
또 "이 자리에 참석하신 박남선 5·18 민주화 운동 상황실장님, 장호권 장준하 기념사업회장님 등 많은 분이 보여주신 화해와 화합의 정신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여러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고 비무장지대에 평화시 건설 구상을 제시했다"며 당시 이북 도민회 건의로 조성된 동화경모공원에 노 전 대통령이 돌아왔다고 전한 뒤 "편안히 쉬시길 빈다"고 추도했다.
동화경모공원은 이북 도민의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1995년 통일동산 지구 내 탄현면 법흥리에 조성된 묘역 및 납골당 시설이다. 원래는 실향민과 파주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묘지 시설이지만, 파주시와 시설 운영진이 노 전 대통령 측의 안장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날 안장식을 끝으로 지난 10월 26일 세상을 떠나 화장 절차 등을 거친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은 모두 마무리됐다.
한편 불교의 제사 의식인 49재는 오는 13일 오전 10시 검단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연합뉴스에서 인용>

 

▼ 노태우대통령 묘소...전망휴게실 옆에 위치하는데... 이곳에는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는 전망휴게소 옆에 위치한다. 이곳 명칭은 안내판에 2.2평이라고 되어 있는데 묘역은 L-6으로 되어 있다. 안내판에는 묘지가 그려졌는데 현재는 비어있는 묘역이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 넓은 터에 나홀로 들어서 있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 전경... 묘소 뒤쪽에 천으로 덮혀 있는 것이 혹시 묘비일까 싶어 열어봤는데 묘비는 아니고 묘소 둘레석과 같은 크기의 그냥 석물이었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 앞뒤좌우를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 측경

▼ 노태우대통령 묘소 후경... 앞쪽에 나무가 있는 곳이 안산 역할을 하는 곳으로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 이곳은 비교적 온화한 곳이다.

▼ 노태우대통령 묘소 건너편 안산에서 바라본 임진강과 그 너머 황해도... 재임 시 북방정책을 추구하였고 통일을 염원했던 업적과도 맞는듯 보인다.

▼ 나무 사이로 보이는 노태우대통령 묘소

▼ 노태우대통령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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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