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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묘

 

얼마 전 성북동 답사를 안내할 기회가 있어서 간송 미술관 수보전과 최순우 옛집을 다녀왔다. 여러번 다녀온 곳이지만 지금까지 최순우 선생의 묘가 어디있는지 한번도 궁금해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궁금해져 안내인에게 여쭤보니 광주공원묘원에 있다고만 나온다고 하며, 본인은 다녀온 적이 없다고 한다.

이리저리 자료를 검색해 보니 최순우 묘역을 다녀온 분이 딱 한 분 나온다. '보현당의 묘지기행'을 쓰고 있는 보현당님이 이미 다녀와서 글을 올렸다. 보현당님은 묘지 위치는 올리지 않고 있는 분이다. 보현당님에게 연락해서 아주 쉽게 답사를 할 수 있었다.

최순우 선생 묘역은 묘비와 상석, 향로석만 있고 망주석은 없다. 광주공원묘원의 전체적인 국세로 볼 때 산진처에 해당하는 곳으로 앞쪽에 저수지가 있어서 재물 또한 넉넉한 곳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예전 사진을 보면 큰 나무들이 묘역을 감싸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나무를 모두 베어 양명한 햇빛이 충분하게 비추고 있다. 공원묘지에 있다면 안타까운 묘들이 많은데 최순우 선생 묘는 답사객이 봐도 좋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참고로 성북동 최순우 옛집은 최순우(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하실 때까지 사시던 집인데, 매매로 나와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시민들의 성금으로 매입하여 보전된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등록문화재 제268호)로 보존되고 있다.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혜곡(兮谷). 본명은 희순(熙淳)이며 순우(淳雨)는 필명이다.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유섭(高裕燮)의 감화로 한국미술사 연구를 시작하였다.
1946년국립개성박물관 참사를 지내고, 1948년 서울국립박물관으로 전근하여 보급과장·미술과장·수석학예연구관·학예연구실장을 거쳐 1974년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한 이후 죽을 때까지 재직하여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마쳤다.
6·25사변 중에는 생명을 내걸고 소장 문화재를 부산으로 안전하게 운반하였다. 1950년대 초반 서울 환도 등 혼란 중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세 번이나 이전, 개관할 때마다 그의 공이 컸다. 1981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을 구중앙청 청사 건물로 이전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자 그 주역으로서 일하다가 제반 계획과 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격무와 신병으로 개관을 눈앞에 두고 순직하였다.
1962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도자기·목기·회화 전시를 비롯하여 ‘한국미술2천년 전시’ 등 대소 규모의 특별 전시를 수십 차례나 주관하여 한국 미술의 이해와 보존·진흥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국외에서도 1950년∼1961년 사이 한국 미술의 미국·유럽 전시와 1976년∼1984년 사이 ‘한국미술5천년’의 일본·미국·유럽 전시의 주역으로 한국 미술 문화를 세계에 크게 선양하였다. 또한 이화여자대학교·홍익대학교 등 여러 학교에 출강하여 한국·동양 미술사를 강의하면서 후학을 많이 길러내었다.
1945년부터 5년간 문학 동인지 『순수(純粹)』의 주간도 맡은 바 있는 그는 한국 미술에 대한 주옥같은 많은 글을 발표하였다.
그의 감식안은 당대 제일로 고미술계가 혼란한 중에서도 옥석을 가리고 자신 있게 정론을 폈다. 그의 지론은 한국 미술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다우며 미술품에 잔재주를 부리면 한국 미술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문화재위원회 위원(1967년∼1984년), 한국미술평론인회 대표(1962년∼1965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대표(1965년∼1966년), 한국미술사학회 대표위원(1976년∼1980년)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 미술 연구와 문화재 보존에 깊고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그에게는 방대한 저서·논문보다는 국민을 폭넓게 이해시키기 위한 수많은 수필·논고가 있다. 그의 유고집으로는 『최순우전집』(전 5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가 있다.
1960년 녹조소성훈장(綠條素星勳章), 1977년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을 받고, 1984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순우 옛집(崔淳雨 古宅)
 
최순우 옛집(崔淳雨 古宅)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혜곡(兮谷) 최순우(1916년 ~1984년)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처하였던 한옥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로 유명하며 한국미에 대한 빼어난 안목을 가졌던 최순우는 이 집에 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아 넣으려 했다고 한다.
1984년 최순우가 죽은 뒤 딸 최수정이 살고 있다가 성북동 빌라 건축 붐 때문에 보존 환경이 어려워지자,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2002년 12월 시민 성금으로 매입한 뒤 보수·복원 후 2004년 4월부터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일반에 개방하면서 문화유산의 전문적인 관리와 운영, 모금을 위하여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설립되면서 최순우 옛집은 이 재단법인의 기본자산으로 출연이 되면서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1호로 명명되었다. 2006년에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2002년 매입금액은 7억8천만 원이었으며, 보수 비용은 2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규모는 대지 395.042m2, 건물면적 101.92m2이며, 건물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대청과 사랑방에 유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위키백과>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묘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매자리길 235(관리사무소)
관리자(연락처) 양천최씨

 

▼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묘 전경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묘비... 임창순 撰, 김응현 書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묘... 묘역이 아주 단촐하다.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묘 측경... 1986년 4월에 세움.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묘 측경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묘 후경

  • 야초 묘지답사의 주소를 금년 6월1일부터 인근지역까지만 공개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더라도 조금만 살펴보시면 다 알수가 있습니다.
  • 이미 올린 내용도 수정할 때는 새로운 주소공개 원칙에 따라 수정할 예정입니다.
  • 너른 이해를 바랍니다.  야초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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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