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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묘

 

<현장답사나 간산을 다녀온 곳은 많은데 답사기를 올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사진 정리도 제대로 되지않아 일차적으로 답사기 올리기 전까지 사진을 보관하고 관리할 목적으로 사진만 보관하려고 만든 자료실입니다. 정식으로 글을 올리기 전까지만 유지하는 곳입니다. 이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복지겸(卜智謙)[?~?]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출신의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우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고려 초 환선길과 임춘길의 모반 사건을 사전에 알아내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복지겸은 면천 복씨(沔川卜氏)의 시조이다. 초명(初名)은 사귀(沙貴) 또는 사괴(沙塊, 砂塊, 沙蕢)라고 한다. 『면천 복씨 대동보』에 따르면, 신라 말에 학사(學士) 복한림(卜翰林)이라는 인물이 당나라에서 건너와 현재의 면천면에 정착하여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고 백성을 보호했는데, 복지겸은 복한림의 후손이라고 전한다.
복지겸은 태봉을 건국한 궁예(弓裔)의 마군 장군(馬軍將軍)이었다. 궁예가 포악무도(暴惡無道)하여 민심을 잃자, 918년(태조 1)에 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배현경(裵玄慶)과 함께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웠다. 이후 개국 일등 공신(開國一等功臣)에 봉해졌고, ‘사귀(沙貴)’라는 이름도 ‘지겸(智謙)’으로 고쳤다.
그 후 마군 장군 환선길(桓宣吉)의 반역 사건을 사전에 탐지해 태조에게 알려 진압하게 하였고, 순군리(巡軍吏) 임춘길(林春吉)이 청주에서 반역을 꾀하고 있음을 알고 태조에게 알려 모두 평정시켰다. 이와 같이 복지겸은 고려 초 국가와 왕실이 안정되는 데 많은 공을 세우고, 노년에 이르러 혜성군으로 낙향했다.
일제 강점기에 서술된 『당진군사(唐津郡史)』에 의하면 복지겸의 주택은 면천 공립 보통학교의 부지 내에 있었다고 한다. 『당진군사』가 기록되던 당시까지 복지겸의 주택이 현지에 있었는지 아니면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의 면천 객사와 현재의 은행나무와 인접하여 복지겸이 거주하던 주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면천 공립 보통학교는 면천 객사 건물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겸의 묘소는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순성로 73[양유리 677-1]에 있다.
복지겸의 시호는 무공(武恭)이며, 993년(성종 13)에 태사(太師)에 추증되었다. 조선 왕실에서 1397년(태조 6)에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숭의전(崇義殿)을 세워 고려 초 7명의 왕과 신하들을 배향할 때 복지겸도 그 대상이 되었다. 또한 면천 복씨 대종회에서는 1991년 11월 당진시 순성면 양유리에 ‘고려 개국 일등 공신 태사 복무공 휘지겸 사적비(高麗開國一等功臣太師卜武恭公諱智謙事績碑)’와 복지겸의 묘역을 정비하였고, 당진군과 충청남도의 지원을 받아 복지겸을 제향하는 사당인 무공사(武恭祠)와 부대시설을 2007년부터 건축하기 시작하여 2008년 12월에 완공하였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면천복씨(沔川卜氏)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에 관향을 둔 세거 성씨.
면천복씨(沔川卜氏)는 당진시 면천에 본관을 둔 세거 성씨로, 시조는 복지겸(卜智謙)[?~?]이다. 복지겸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배현경(裵玄慶)과 더불어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한 인물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는 복지겸이 말년에 딸과 함께 낙향하여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복지겸의 딸이 병든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빚었다고 전해지는 두견주(杜鵑酒)가 지금도 주조되고 있다. 또한 순성면 양유리에는 복지겸을 제향하는 사당인 무공사(武恭祠)가 있다.
면천복씨의 시조 복지겸의 선계(先系)는 중국 당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오계(五季)의 난을 피해 우리나라 면천으로 건너와서 서해에 출몰하던 왜구를 소탕하고 민생을 안정시켰다고 전한다. 이들이 도착한 곳이라는 의미로 면천을 관향으로 삼았는데, 복지겸의 선계 이름을 알 수 없어 복지겸을 시조로 하여 계통을 잡고 있다.
복지겸은 태봉을 건국한 궁예(弓裔)의 마군 장군(馬軍將軍)이었다. 궁예가 포악무도(暴惡無道)하여 민심을 잃자, 918년(태조 1)에 홍유·신숭겸·배현경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웠다. 그 결과 개국 일등 공신에 봉해졌고, ‘사귀(沙貴)’라는 처음의 이름도 ‘지겸(智謙)’으로 고쳤다.
복지겸은 그 후 마군 장군 환선길(桓宣吉)의 반역 사건을 사전에 탐지해 태조에게 알려 진압하게 하였고, 순군리(巡軍吏) 임춘길(林春吉)이 청주에서 반역을 꾀하고 있음을 알고 태조로 하여금 모두 평정시켰다. 이와 같이 복지겸은 고려 초기 국가와 왕실의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면천복씨는 당진시 면천면이 본관이지만, 정작 후손들은 이곳에 많이 거주하지 않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세거지로는 충청남도 청양군·홍성군, 전라북도 남원군, 경상남도 울산시 등이 있다. 2015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복씨는 9,538명으로 집계되었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묘
소재지 충남 당진시 순성면 양유리 677-1
관리자(연락처) 면천복씨

 

▼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묘... 아직 수정하지 않은 원본 파일입니다. 시간 되는대로 수정하여 정상적으로 발행하겠습니다.

▼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묘 용맥도... 국세가 잘 짜여져 있다.

▼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사당... 

▼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사적비... 

▼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사당... 

▼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영정... 

▼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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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