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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예전에 만들었던 블로그가 틀이 깨지고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정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원하는 형태대로 유지가 안되서 티스토리로 메인 블로그를 옮겼습니다. 예전 블로그에 있던 자료를 하나씩 옮기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난 것은 내용이나 사진이 현재와 맞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이점 이해바랍니다. 추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내용과 사진을 수정할 예정입니다.>

 

노한(盧閈) 노사신(盧思愼) 묘 및 신도비

 

노사신 묘가 파주에 있어서 답사를 가야했는데 서울 대방동에서 옮겨온 묘라하여 갈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후배가 노사신 묘 간다고 해서 나는 노수신과 헷갈려서 얼른 따라 나섰는데 나중에 보니 노수신과 노사신은 본관도 다르고 시대가 연산군때와 선조 때로 거의 80여년 차이가 난다. 아무튼 두분 다 영의정을 지냈는데 언뜻 이름만 보면 형제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교하노씨는 근자에 노태우대통령을 배출한 가문으로 노대통령 시절에 이곳 효사재를 지었고 현판도 노태우대통령 친필이다. 한 가문에서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큰 소리 칠만한 일이다.
이곳은 비록 옮겨온 묘역이지만 아늑한 국세에 수구도 잘 막아져 있어 무난한 터로 여겨진다.

 

우의정 노한(盧閈)
 
본관은 교하. 자는 유린, 호는 효사당. 증조부는 첨의정승 책이며, 아버지는 대리경 균(鈞)이다. 좌의정 민제의 사위로 태종과 동서간이다. 16세에 음서로 등용되었다. 지사간원사를 거쳐 1403년(태종 3) 좌부승지, 이듬해 이조전서·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405년 동지총제, 이듬해 풍해도관찰사 등을 거쳐 1408년 한성부윤이 되었다. 1409년 처남인 민무구·민무질 형제가 신극례와 함께 종친을 이간하는 불충한 언동을 했다고 이화(李和) 등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자, 이 사건에 연좌되어 파직당했다. 그뒤 양주별장에서 14년간 은거했다. 1422년(세종 4)에 상왕인 태종의 전교로 다시 한성부윤이 되었다.
그뒤 형조판서·참찬의정부사·판한성부사를 거쳐, 1432년에 찬성사, 1434년에 찬성사 겸 대사헌, 이듬해 우의정 등을 지낸 뒤 1437년에 사직했다. 시호는 공숙이다.

영의정 노사신(盧思愼)
 
세종에서 성종 때까지 사서편찬과 번역사업에 공헌했으며, 유자광 등과 함께 무오사화를 주도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조예가 깊어 문과 급제 직후 집현전학사가 되었다. 글을 잘하여 명성이 높았고, 경서와 사서를 강론할 때 사리분별이 뚜렷하고 대답하는 데 막힘이 없어 세조가 친히 그와 토론하기를 즐겼다. 1465년 호조판서가 되어 최항과 함께 〈경국대전〉의 편찬을 주관하고 〈동국여지승람〉·〈동국통감〉·〈삼국사절요〉 등의 편찬과 〈향약집성방〉의 국역에 참가했다.
1495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과거시험에 처족을 합격시켰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영의정을 사직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를 주도했을 때는 유자광 등이 옥사를 확대하려는 것을 적극 견제하여 사림파의 피해를 줄이는 데 힘을 기울였다. 사옥이 진행되던 그해 9월에 병사하였다.<다음백과>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노한(盧閈) 노사신(盧思愼) 묘 및 신도비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백석리 131-1
관리자(연락처) 교하노씨 창성군파 공숙공종회

 

 

▼ 교하노씨 창성군파 재실... 효사재... 노태우대통령 친필...

▼ 효사재 안내문...

▼ 공숙공 노한 신도비

▼ 노한 신도비... 오래되었는데도 글자가 아주 선명하다.

▼ 영의정 노사신 신도비... 표면이 마모되어 글자 식별이 어렵다.

▼ 우의정 노한 묘 전경

▼ 우의정 노한 묘

▼ 우의정 노한 묘비... 글자가 다 마모 되었는데 이름만 남아있어서 식별이 가능하다.

▼ 우의정 노한 묘 석물

 

▼ 우의정 노한 묘 석물

▼ 우의정 노한 묘 후경... 노한, 노사신 묘는 서울 대방동 부근에서 1940년 일제시대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 영의정 노사신 묘 전경...

▼ 영의정 노사신 묘비... 이곳도 다른 곳은 마모 되어 식별이 안되는데 이름자만 글자가 보인다.

▼ 영의정 노사신 묘 석인... 앞쪽에 서있는 석인은 무인석으로 보인다. 문무 배치도 안맞고, 무인석을 민묘에 세우는 것도 안맞다.

▼ 영의정 노사신 묘 석인... 앞쪽에 작은 석인은 아마 무석인 같은데 너무 작고 손에 쥔 것이 칼자루인지 식별이 안간다.

▼ 영의정 노사신 묘 후경

▼ 영의정 노사신 묘에서 바라본 효사재... 수구가 잘 막아져 있다.

<제 다른 블로그 '좋은터 길라잡이' 2019. 1. 18 올린 글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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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