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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智異山) 쌍계사(雙磎寺)

 

봄에 전라도 답사를 할 때는 대부분 매화꽃이 필 때 강행하거나 가을 단풍이 물들 때 하는데 이번 답사는 시기를 조금 늦게 잡아서 매화는 떨어지고 벚꽃도 방금 져버린 4월초순에 진행해서 한마디로 김이 샌 답사가 되었다. 그래도 새 순이 파릇하게 돋아나는 때라서 싱그러움이 잔뜩 묻어나고 젊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답사가 되었다.

답사를 다녀온 뒤 답사기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것도 일이라고 맨날 뒤로 미루다가 결국 답사기를 올리지 못한 여행지, 답사지가 수백 곳이 넘는다. 자료가 아깝기도 하고 뭔가 흔적은 남겨야 겠다고 생각해서 사진위주의 답사기를 기획하게 되었다. 다녀온 곳의 사진을 원본 위주로 올리니 다소 미흡하더라도 이해 바란다.

 

지리산(智異山) 쌍계사(雙磎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관장하는 말사는 43개이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쌍계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절은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취한 뒤 귀국하였다.
그리고 한라산·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그 뒤 840년(문성왕 2)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국에서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다.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벽암(碧巖)이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500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명부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팔상전, 노전(爐殿),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호로 지정된 적묵당(寂默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로 지정된 설선원(說禪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나한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육조정상탑전과 청학루(靑鶴樓)가 있다.
그리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된 천왕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된 금강문(金剛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된 일주문·대방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7호인 진감국사대공탑비(眞鑑國師大空塔碑), 보물 제380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925호인 팔상전영산회상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인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인 불경책판이 있다.

대공탑비는 885년(헌강왕 11) 헌강왕이 입적한 혜소(慧昭)에게 진감(眞鑑)이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대공영탑(大空靈塔)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어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는데, 887년(진성여왕 1)에 완성되었다. 비문은 최치원(崔致遠)이 쓴 것으로 우리나라 4대 금석문(金石文) 가운데 첫째로 꼽힌다.
이밖에도 육조혜능의 초상화를 안치한 7층의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로 지정된 마애불(磨崖佛)과 아자방(亞字房)의 터가 있다.
절에서 500m 거리의 암자인 국사암(國師庵) 뜰에는 진감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살았다는 천년이 넘은 느릅나무 사천왕수(四天王樹)가 있고, 신라의 원효(元曉)와 의상이 도를 닦았고 1205년(희종 1) 보조국사(普照國師)가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그 시호를 딴 불일암(佛日庵)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 국보 제47호
문화재명칭 지리산 쌍계사,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주차:운수리 330-1)
관리자(연락처)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

 

▼ 지리산(智異山) 쌍계사(雙磎寺) 입구

▼ 지리산(智異山) 쌍계사(雙磎寺) 일주문... 삼신산(三神山) 쌍계사(雙磎寺)라고 적혀있다.

▼ 쌍계사(雙磎寺) 금강문

▼ 쌍계사(雙磎寺) 천왕문의 사천왕상...

▼ 쌍계사(雙磎寺) 9층석탑

▼ 쌍계사(雙磎寺) 육조정상탑 가는 길...

 

▼ 쌍계사(雙磎寺) 대웅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인 진감선사의 탑비이다. 진감선사(774∼850)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로,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우러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몸돌에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아래로는 거북받침돌을, 위로는 머릿돌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거북받침돌은 머리가 용머리로 꾸며져 있으며,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등 중앙에는 비몸돌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碑座)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옆의 4면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각형의 몸돌은 여러 군데가 갈라져 있는 등 많이 손상된 상태이다. 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고, 앞면 중앙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진성여왕 원년(887)에 세워진 것으로, 진감선사가 도를 닦던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고친 후에 이 비를 세웠다 한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붓의 자연스런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한 글씨는 최치원의 명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할 만큼 뛰어나다.<문화재청>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쌍계사(雙磎寺) 대웅전...

▼ 쌍계사(雙磎寺) 명부전

▼ 쌍계사(雙磎寺) 금강계단

▼ 쌍계사(雙磎寺) 마애삼존불... 최근에 세워졌다.

▼ 쌍계사(雙磎寺) 화엄전

▼ 쌍계사(雙磎寺) 삼성각...

▼ 쌍계사(雙磎寺) 나한전

▼ 쌍계사(雙磎寺) 적묵당

▼ 쌍계사(雙磎寺) 설선당

▼ 쌍계사(雙磎寺)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바라본 일주문...

▼ 쌍계사(雙磎寺) 금당으로 오르는 길

 

▼ 쌍계사(雙磎寺) 팔상전

쌍계사(雙磎寺)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자세히 글을 올려야 하지만 시간도 촉박하고 사람들도 많아서 육조정상탑은 직접 오르지 못하고 일행한테 부탁해서 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운전하랴 안내하랴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남도의 멋을 마음껏 누리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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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