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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 국보2점 동시 공개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었는데 항상 있던 반가사유상이 안보였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11월경 새롭게 일반에 공개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얼마 전에 뉴스에 '사유의 방'을 만들어 반가사유상 국보2점을 동시에 일반에 공개한다고 대대적으로 나왔다. 참을수 없어서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그동안 전국민 거리두기를 해서 사전예약제로 운영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사전예약이 없어지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새롭게 전시한 '사유의 방'은 국립중앙박물관 내 상설전시관 2층에 있으며, 오는 12일부터 연중 무료 관람이다. 조금 쉽게 설명하면 입장하면서 금속탐지기 검사를 받는 곳에서 나와 바로 우측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서 2층으로 가면 첫번째 방에 있다.
이번에 '사유의 방'을 만든 취지는 "지치고 힘들 때 오셔서 반가사유상으로 치유받으시길 바란다"고 했는데 아직은 관람객이 많은 편이라 마음 편하게 감상하고 사유하기에는 어수선한 편이다. 조금 지나면 본래 취지대로 정착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때쯤이면 나도 다시 방문해서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항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2점에 대해 헷갈리고 구분하기도 어려웠는데 한 장소에 2점을 동시에 공개하니 너무나 감동적이고 일목요연하게 머리에서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문화재청에서 올해부터인가 국보, 보물의 번호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국보 2점을 구분하는 방법이 애매모호하다. 현장에서 다운받아 읽어보는 팜플렛에는 왼쪽 반가사유상 국보(국보78호인데 그걸 사용 못하다 보니 이런식으로 표기), 오른쪽 반가사유상 국보(국보83호를 이런식으로 표기함)이라고 적혀있어서 정말 이래도 되는지 문화재청에 묻고 싶다.
문화재 명칭이 유사한게 많아서 국보번호를 병행해서 표기하면 이해도 빠를텐데 어떤 고집이 있길래 번호를 아예 없앤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팜플렛에 웃지못할 표현 방식을 쓰고 있으니 웃어야 할지...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의 미소' 반가사유상 애칭 공모전을 하였는데 최근에 당선작 발표 결과 당선작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 금상에 당첨된 애칭은 국보78호/국보83호를 기준으로 '반디/반야, 해아림/별아림, 금비/신비'로 발표 되었다. 나는 애칭 공모전이 있는 줄도 모르고 흘러갔지만... 이왕이면 당선작을 내서 왼쪽 반가사유상 국보... 이런 식의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다른 대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위에 표기식으로 반가사유상을 표기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두 반가사유상을 한 곳에 놓고 보니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우선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이 더 크다. 또한 78호는 화려한 관을 머리에 이고 있고 83호는 상체는 단순한데 비해 아래쪽에는 옷주름이 아주 화려하게 보인다. 언뜻 드는 생각이 국보78호는 여성스러움이 있고, 국보83호는 남성스러움이 있다고 여겨진다.
내가 애칭을 짖는다면 나는 국보78호는 여성스러운 한국의 미소이니 달미소, 국보83호는 남성스러운 한국의 미소이니 해미소라고 짖고 싶다.
'사유의 방'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안내해주는 내용이 있어 옮겨온다.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공간이다.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지나면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을 만나볼 수 있다.
뛰어난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고,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근엄한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한다.<국립중앙박물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보78호) 의자 위에 앉아 오른발을 왼쪽다리 위에 올려 놓고,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손가락을 뺨에 댄 모습의 보살상으로 높이는 80㎝이다. 1912년에 일본인이 입수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던 것을 1916년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 놓았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여기에서 나온 2가닥의 장식은 좌우로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네모꼴에 가까운 얼굴은 풍만한 느낌을 주며, 광대뼈를 나오게 하고 입가를 들어가게 하여 미소 띤 얼굴을 만들었다. 상체는 당당하면서도 곧고 늘씬한 모습이며, 하체에서는 우아한 곡선미를 느낄 수 있다. 늘씬한 팔이나 체구에 비해서 손이나 발은 상대적으로 큼직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탄력이 있고 매끄러우며 부드럽고 율동적이어서 보살상의 우아한 모습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목 뒤로 돌아 양 어깨를 감싼 천의(天衣)는 새의 깃털처럼 치켜 올라갔다가 다시 가슴쪽으로 흘려내려 왼쪽 다리에서 교차한 다음, 양 무릎을 지나 두 팔을 감아 내렸다. 하체에 입은 치마는 다소 두툼해 보이는데 U자형 주름이 능숙하게 새겨져 있다. 왼발을 올려 놓은 타원형의 대좌(臺座)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 흔적만 있을 뿐 광배(光背)는 없어진 상태이다. 1963년 방사선 투과법으로 촬영한 결과 내부의 결함이나 고친 흔적이 없으며, 재질이나 만든 기법이 매우 특이함이 밝혀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자세, 아름다운 옷주름, 명상에 잠긴 듯한 오묘한 얼굴 등으로 보아 한국적 보살상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6세기 중엽이나 그 직후의 작품으로 생각된다.<문화재청>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보83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과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이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으며,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三山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얼굴은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고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목에 2줄의 목걸이가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꽃무늬 대좌(臺座)를 밟고 있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왼손으로는 오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얇게 표현하여 신체 굴곡이 잘 드러나며, 연꽃무늬 대좌를 덮은 옷자락은 깊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왼쪽으로 옥을 꿴 치마의 띠가 내려가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긴 촉이 달려 있어 광배(光背)를 꽂았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잔잔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반가상의 자비로움은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준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문화재청> |
문화재지정 | 국보78호, 국보83호 |
문화재명칭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
소재지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
관리자(연락처) | 국립중앙박물관(대표전화 02-2077-9000) |
사유의 방
▼ 사유의 방
▼ 사유의 방을 들어서면 넓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는데... 반가사유상 국보2점이 떡 버티고 서있다.
▼ 문화재청의 국보 번호 사용을 못하게 한 까닭에 두 반가사유상의 이름을 우습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 반가사유상 국보, 오른쪽 반가사유상 국보...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보니 애매한 것 같아 저는 왼쪽 반가사유상은 국보78호로, 오른쪽 반가사유상은 국보83호로 부른다.
▼ 사유의 방에 있는 두 반가사유상... 카메라 탓도 있고 후레쉬를 사용 못하는 탓도 있지만... 핸폰으로 얻을 수 있는 사진은 한계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배포한 사진을 활용한다. 두 반가사유상을 한 곳에 놓고 보니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우선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이 더 크다. 또한 78호는 화려한 관을 머리에 이고 있고 83호는 상체는 단순한데 비해 아래쪽에는 옷주름이 아주 화려하게 보인다. 언뜻 드는 생각이 국보78호는 여성스러움이 있고, 국보83호는 남성스러움이 있다고 여겨진다.
내가 애칭을 짖는다면 나는 78호는 여성스러운 한국의 미소이니 달미소, 83는 남성스러운 한국의 미소이니 해미소라고 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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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존재, 반가사유상의 의미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상(像)의 자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가(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입니다. ‘사유(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나타냅니다.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태자 시절부터 인간의 생로병사를 깊이 고뇌했고, 출가를 결심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도 깊은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이처럼 깊은 생각에 빠진 석가모니의 모습이면서, 깨달음을 잠시 미루고 있는 수행자와 보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반가의 자세는 멈춤과 나아감을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움직임 가운데 있습니다. 한쪽 다리를 내려 가부좌를 풀려는 것인지, 다리를 올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갈 것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가의 자세는 수행과 번민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그려 보게 합니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국립중앙박물관> |
반가사유상 국보83호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보83호... 두 반가사유상을 한꺼번에 보다보니 차이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화려한 국보78호보다 나는 국보83호가 크기도 크고 남성미가 있는 것 같아서 먼저 눈길이 갔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먼저 사진을 올린다.
▼ 반가사유상의 신비로운 미소
▼ 반가사유상에는 광배를 단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반가사유상 국보78호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보78호... 여성스러움이 많이 묻어나는 반가사유상이다. 얼굴은 네모에 가깝고 머리에는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다. 국보83호에 비해 크기가 작다.
▼ 국보78호 반가사유상도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 반가사유상의 머리에 광배를 단 흔적이 남아있다.
사유의 방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의 방’에는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둡고 고요한 사유의 방을 걸어 들어가면 끝없는 물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며 반짝임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1,40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 앞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됩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 고뇌하는 듯,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치유와 평안이 다가옵니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의 방’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여정은 우리 시대의 특권입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나의 경험, 나의 여정,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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