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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소탑에 짓눌린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오랜만에 다녀왔다. 처음 지을 때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지은 것으로 기억한다. 애들이 어릴 때 입장료를 내면서 땡볕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특별히 갈일이 없어서 찾지 않았는데 근 30년만에 대전에 다녀오다 마음이 내켜 찾았다.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 그곳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는데 입구에서부터 공사가 한창이다. 예전 기억에도 공사가 진행되었던것 같은데 지금도 공사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착각이겠지만 조금 오래되었다 싶은 건물들은 여지없이 공사가 진행된다. 겨레의 집에서는 무슨 행사를 준비하는지 어수선하게 자재들이 펼쳐져 있어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 

주차를 하고 한참을 걸어 들어가는데 유난히 군복입은 군인들이 많이 보인다. 조금 의아해서 물어보니 현역 군인이 이곳 독립기념관을 찾으면 나중에 휴가 하루를 보너스로 준다고 한다. 왠지 좋은 아이디어 같으면서도 조금은 찜찜하다. 얼마나 국민들이 찾지 않았으면 이런 이벤트를 할까 싶다.

내가 찾은 날은 평일이라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군인들이 자주 눈에 띄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30년전에 찾을 때 아이들이랑 같이 왔는데 그때는 줄을 서서 들어간 기억이 난다. 이 넓은 곳에 많은 국민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계기도 만들고 시설도 만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민간에서 운영한다면 아마도 관람객들로 북적북적 했겠지...

겨레의 탑을 지나며 뒷산 흑성산을 보니 산정상에 기념탑 같은 것이 보인다. 그 사이에 산정상에 기념탑을 세운줄 알고 마침 지나는 분께 여쭤보니 기념탑은 아니고 방송국 송신소 안테나라고 말한다. 아니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투철한 민족정신과 국가관을 세우겠다고 만든 독립기념관 뒤 현무봉에 무지막지하게 저리 커다란 쇠로 된 물질을 산정상에 박아 놓았으니 국민들이 어찌 좋은 기운을 갖고 민족의 자부심을 키울 수 있겠는가?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산 곳곳에 일본인들이 박아놓은 쇠파이프를 기억 못하는가? 산 정상에 저런 무지한 짓을 하니까 독립기념관에 그 많던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송신소를 다른데로 이전하든지, 산 너머로 옮기든지 해서 독립기념관을 짓누르고 있는 기운을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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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은 총7개인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동선이 주욱 이어져서 한꺼번에 볼 수 있게 하지 않고 하나 보고는 밖으로 나와서 또 하나 보고 이런 식으로 7개 전시관을 들락날락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물론 지루하지 않도록 나왔다 들어가도록 한 것 같은데... 오히려 리듬이 깨지는듯한 사람들도 고려해서 동선을 연결하는 방안도 검토가 있어야 할듯하다. 밖으로 나오니 다시 들어가기가 싫어지는건 나만 느끼는 감정인지...

전시실에는 우리의 역사, 독립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품들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고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도 있고 또한 체험하도록 된 곳도 있어서 배려가 느껴진다. 독립운동체험관은 현재 휴관중이다.

끝나고 나오려는데 독립기념관 위쪽에 추모의자리가 있어서 찾았는데... 애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나는 애국선열을 위해 향불을 피우는 곳으로 알고 올랐는데 엉뚱하게 중앙에 분수를 쏘아올리도록 만들어져 있다. 어마어마하게 큰 돌로 된 조각품을 만들어 놓고 분수도 꺼놓고 있는데... 왜 만들었는지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설이다. 위쪽에 있고 특별히 안내문도 없다보니 내가 다녀오는 동안 단 1명도 관람객을 보지 못했다.

예전 처음 찾을 때 입구에 독립유공자들의 어록을 새겨놓은 비석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갔나 봤더니 독립기념관 주위에 어마어마하게 많이 세워져 있다. 100개가 넘게 세워져 있고 겨레의 탑 부근 입구에 안내판에 위치를 한꺼번에 써놓았는데 글자가 깨알만해서 봐도 모르게 되어 있다. 독립유공자의 어록은 가까이에 있어야 읽고 마음속에 되새기고 다짐을 하는 것이지 깊숙한 잔디밭 안쪽에 있다면 누가 찾을 것이며 너무 많이 배치해서 보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추모의 자리를 보고 일부러 어록비를 보면서 내려왔는데 안쪽 20여개를 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지나 대충 보고 내려오고 말았다.

내려오면서 다시 주차장으로 갈길이 멀어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데 사무실로 보이는 곳곳에는 직원들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입구에 세우게 하고 본인들은 편리하게 차를 이용하는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를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복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겨레의 전당이다.

국민운동으로 추진되어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세우자는 논의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1946년 천도교회관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기념관 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된 것과,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주최 ‘광복30주년기념심포지엄’에서 정식 안건으로 토의, 합의하여 정부에 건의한 바도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식민지 서술 부분이 한국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이에 한국 국민이 국민운동으로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정부에서는 소요 부지인 400만㎡을 매입하여 제공하였다.

국민성금 490억 2432만 5009원(1986년 4월 8일 기준)을 모금하는 한편, 국내외로 독립기념관에 전시할 자료와 유물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1986년 4월 8일「독립기념관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그 해 5월 9일 공포되기에 이르렀다. 원래는 1986년 8월 15일에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그 해 8월 4일 뜻하지 않은 화재가 일어나 1년을 늦추어 개관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소재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
관리자(연락처)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전경... 뒤에 있는 흑성산에 기념탑 같은 것이 보인다. 궁금해서 관리자에게 여쭤보니 단지 방송국송신소라고 한다. 산 정상에 저런 무지한 짓을 하니까 독립기념관에 그 많던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송신소를 다른데로 이전하든지, 산 너머로 옮기든지 해서 독립기념관을 짓누르고 있는 기운을 제거해야 한다.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상징 겨레의 탑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에 애국지사들의 애국시, 어록비를 세워놓은 안내도... 예전에는 입구에 몇개만 있었는데 그 사이에 많이 늘었다. 관람 동선 상에 없고 사이드에 있다보니 찾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어록비만 보러 별도로 와야할 판이다.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겨레의 집 원경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에 속리산 정이품속 장자목도 잘 자라고 있다.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겨레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좌, 우로 태극기 마당, 광개토대왕능비 등이 있다.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겨레의 집 전경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겨레의 집 안쪽에는 조각품 '불굴의 한국인상'... 겨레의 집 내부에서 행사가 있는지 가림막이 조각품을 가리고 있어서 대충 윗쪽으로만 사진을 찍었다.

▼ 겨례의 집 안쪽에 걸린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

▼ 겨례의 집 뒤쪽에서 바라본 모습...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전시관 배치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 주요 시설

제1전시관(겨레의 뿌리) 구석기 문화가 시작된 이후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수많은 외부의 침략에도 단결된 힘으로 슬기롭게 극복하여 이 땅을 지켜왔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인 1860년대까지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불굴의 민족혼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2전시관(겨레의 시련)은 근대적인 자주 독립 국가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좌절된 후 이어진 일제의 식민 지배 실상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도 계속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관입니다.

제3전시관(겨레의 함성)은 3·1운동과 대중투쟁에 참여했던 민중의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관입니다.
일제 식민지배 아래에서 일어난 우리 겨레의 1919년 3·1운동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국내를 넘어 국외 한인사회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역사적 순간을 함께 했던 민중은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자 독립운동의 주체임을 깨닫게 되었고, 3·1운동 이후 대중투쟁과 같은 다양한 모습의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제4전시관(평화누리)는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지향한 독립운동의 참뜻을 공감하고 나누는 공간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미래까지 계승되어야 하는 소중한 정신적 자산인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5전시관(나라 되찾기)는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 각지에서 전개된 독립전쟁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만주 지역 등을 근거로 일제와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군의 활동, 개인 또는 단체를 이루어 일제의 침략기관과 주요 인물을 처단한 의열 투쟁, 그리고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활동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6전시관(새나라 세우기)는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민중의 항일,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맞서 전개된 국학수호운동, 민족교육 등과 학생·여성·노동자·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독립운동, 그리고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이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제1전시관(겨레의 뿌리)... 무용총 내부 

▼ 황룡사 9층탑과 황룡사 치미

▼ 거북선과 명량해전

▼ 제2전시관(겨레의 시련)

▼ 제3전시관(겨레의 함성)

 

 

▼ 제4전시관(평화누리)

 

▼ 제5전시관(나라 되찾기)

 

▼ 제6전시관(새나라 세우기)...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밀랍모형

▼ 윤봉길의사, 안중근의사, 김좌진장군 동상

▼ 독립기념관 맨 윗쪽에 있는 '추모의 자리' 105인 사건을 상징하는 105계단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 추모의 자리 원경... 추모라는 말이 들어가서 애국선열들께 향불을 피우는 곳으로 알았는데 이름과는 다르게 단순한 조각품 전시장 같은 곳이다. 스케일은 어마어마하다.

 

▼ 애국지사 애국시, 어록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어 내려오면서 읽어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대충 읽고 내려왔다. 이곳에 100기가 넘게 있는데... 하나에 1분만 투자해도 100분 넘게 걸리니... 애국지사들의 어록비만 별도로 보러 와야할판이다. 다 돌아다니기 힘드니 차라리 팜플렛으로 어록을 모아 소개해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 특별기획전시실에서 '연합국과 함께한 독립운동'이 전시되고 있다.(예전 제7전시실을 활용한듯 보인다.)

▼ 야외 전시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할 때 타고 온 C-47수송기(동종모델)

▼ 독립기념관(獨立紀念館)을 나오면서 보니 통일염원의 동산에도 가을이 한창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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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