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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정 터(樂天亭址)

낙천정 터는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인데 이번에 또다시 방문해야만 했다. 표석이 팬스형으로 바뀌고 내용도 바뀌어서 또 찾게 되었다. 인근에 복원된 낙천정은 서울시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건물이 고증이 안된 상태로 복원되었다고 다시 해제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답사객들이 헷갈리게 생겼다.

기존 표석이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팬스형으로 설치한 표석과 기존 표석이 같을 수는 없다. 팬스형은 아마 1년만 지나면 또다시 보수해야 할 것이다. 표석에 대한 호기심도 별로 없고 귀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드는 것은 왜일까? 형식이 어떤 때는 내용을 앞서는 경우도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 낙천정 터(樂天亭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가 이후 본래 낙천정(樂天亭) 터가 있던 자리에서 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조선시대 건물 양식이 아닌 정자(낙천정)가 건립된 사실이 판명되어 2009년 10월 22일 기념물에서 해제되었다. 낙천정은 조선시대 3대 임금인 태종을 위하여 건립된 정자였다. 한강이 마주 보이고 주변의 경치가 좋아 태종 임금은 말년에 임금자리를 세종에게 넘겨주고 낙천정에 정자와 별궁을 짓게 하여 1419년(세종 1)에 완공한 후 자주 낙천정을 왕래하였다. 그리고 정자의 이름은 당시 좌의정 박은(朴訔)이 『역경(易經)』에 실린 ‘천명을 알아 즐기노니 걱정이 없네(樂天知命故不憂)’란 글귀에서 인용하여 낙천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그 뒤 태종과 세종은 자주 낙천정에서 자연풍광을 감상하고 나라의 정책을 의논하였으며 나중에는 태종과 왕비가 아예 거처를 낙천정으로 옮기다시피 하였다. 태종은 낙천정 이외에도 동쪽에 풍양궁, 서쪽에 연희궁 등의 별궁을 지었는데 특히 낙천정에서는 세종과 함께 왜구에 대비한 정책을 구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하여 삼판선을 꾸미는 계획, 대마도 정벌 계획 등이 모두 이곳에서 결정된 것이다. 태종이 세상을 떠난 후로는 낙천정이 퇴락하여 허물어졌는데 근래에 들어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팔작지붕 형태의 낙천정을 옛터 부근에 신축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낙천정 터(樂天亭址) 표식...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 중 특이하게 펜스형 표석이다. 표석 중 어떤 것은 건물 벽에 붙여져 있는 경우(송진우 집 터), 땅바닥에 표기한 경우(김상용 집 터)도 있지만 펜스에 붙인 경우는 낙천정 터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는 돌로 된 것이 아니다 보니 표석이라 부르기 애매해서 그냥 표식이라고 쓰겠다.

 

 

 

▼ 낙천정 터(樂天亭址) 표식... 펜스형으로 담장에 붙여져 있다. 

 

 

 

▼ 낙천정 터(樂天亭址) 표식... 자양현대3차아파트 301동 모퉁이에 있다.

 

 

 

▼ 낙천정 터(樂天亭址) 표식... 아마도 자양현대3차아파트 터가 낙천정이 있었던 대산이 있던 곳일게다.

 

 

 

▼ 낙천정 터(樂天亭址) 표식...

 

 

 

▼ 낙천정 터(樂天亭址) 구 표석... 옛 표석 옆 펜스에 신 표식을 붙여 놓았다.

 

 

 

▼ 낙천정 터(樂天亭址) 표식... 현대아파트 301동과 302동 사이에 있다.

 

 

 

▼ 낙천정 터(樂天亭址) 표식... 주변 사진은 카카오맵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 낙천정 터(樂天亭址)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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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임금의 말 못할 사연을 간직한 낙천정

(樂天亭)

 

 

 

 

동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었던 저자도. 세종은 이 섬을 둘째 딸 정의공주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하사한 이유는 세종이 딸 정의공주를 남달리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아버지도 풀지 못했던 한글의 변음과 토착(민간 용어 또는 사투리)을 풀어 올린 공이 있어서라는 말도 전한다. 어쨌든 공주의 아들 안빈세가 소유했던 섬, 저자도는 서호의 선유도만큼이나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봄에는 살구꽃이 아름답고 가을에는 갈대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 섬에는 풍월정(風月亭)이란 정자가 있었는데 이곳에 오르면 선릉, 정릉, 헌릉이 다 보였다고 한다.저자도를 가장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역시 태종의 별장이던 낙천정(樂天亭)이다. 『정자가 남쪽으로 큰 강을 내려다보는데 저자도 작은 섬이 뚜렷하게 물 가운데 있다. 물 구비가 여기서 돌고 흰모래, 갈꽃의 경치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길손이 이곳 가까이 오면 갈 곳을 잃고 풍광에 취한다.』  서거정이 낙천정에서 저자도를 보며 지은 시다. 그런데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낙천정이 세워진 이유는 엉뚱하게도 귀신 때문이었다. 궁궐에서 부엉이가 출현하는 것을 무서워한 태종이 불길한 새 울음소리를 피하고자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그리고 이곳까지 내려와 만든 별궁이었던 것이다. 낙천정이라는 이름은 《주역》의 '樂天知命故不憂(천명을 알아 즐기노니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1419년(세종 1년) 11월 23일 낙천정의 임금 침실 부근에서 또다시 부엉이가 울자 태종은 다음 날 새벽 일찍 풍양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갑작스러운 이궁 소식에 놀라 달려온 조말생에게 태종은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근일에 부엉이가 와서 우는데 내가 무서워서 이리 피하는 게 아니다. 다만 부엉이 유(鶹)를 풀이하면 흉하다는 뜻이 있어 흉한 짐승을 피하려 한 것뿐이다."  태종의 부인 원경왕후 역시 죽기 직전 지독한 학질로 고생하다 낙천정에서 요양한 적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학질에 걸리면 몸속에 귀신이 들어온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효성 지극한 세종은 어머니 몸에 든 귀신을 떼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세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술사둔갑법(術士遁甲法)을 써서 시위를 다 물리치고 밤에 환관 두 명, 시녀 다섯 명, 내노 열네 명만 데리고 대비를 견여(肩輿)로 모시어 곧 개경사로 향하니, 밤이 이미 삼경이었다. - 《세종실록》, 1420년 6월 6일 설명하자면 "나쁜 귀신이 몸에 들어와 어머니를 괴롭힌다고 판단한 세종이 술사들을 몰래 동원해 여러 모양으로 도술을 부려 낙천정 주변을 지키던 병사들을 따돌렸다. 왕과 대비는 술사들의 도움으로 개경사(유휴사로 불리기도 한 개경에 있던 다른 궁궐)로 향했는데 밤이 벌써 자정 무렵이었다"라는 내용이다. 그날은 광주로 쫓겨났던 양녕대군까지 낙천정에 올라와 어머니 원경왕후의 병세를 살피고 돌아갔다고 한다. 세종은 어머니 원경왕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거의 한 달 이상을 궁궐을 비우고 술사들을 대동한 채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풍수지리에 밝은 자들의 조언을 듣고 귀신이 꺼린다는 방위를 찾아 대비를 모시고 돌아다녔다. 이렇게 집요하고 고집스러운 피병 활동 때문일까? 원경왕후는 잠시 병에 차도가 있자 창덕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8일 만에 다시 발병하고 이틀 뒤인 1420년 7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야외 피병소 생활을 하며 때로는 지키는 병사도 없이 내시나 궁녀 몇 명만을 대동하고 귀신을 피해 돌아다녔던 세종. 그러나 끝내 그도 어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 저자도를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며, 두 임금의 말 못할 사연을 간직한 낙천정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숨은그림찾기보다 더 찾기 어려운 정자가 됐다. 자양동 현대아파트 놀이터 한편으로 볼품없이 자리한 낙천정은 서울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됐지만 지역 주민조차 그 사실을 잘 모른다.(주:2009년 10월 22일 기념물에서 해제됨)  원래 위치도 그곳이 아니었다. 낙천정이 있던 곳은 모양새가 시루를 엎어놓은 높은 언덕과 같다 하여 '대산'이라 불리던 야산이었다. 그러나 재개발에 밀려 이곳 놀이터 옆에 버려진 듯 놓이게 됐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도 소재를 잘 모르는 숨은그림찾기 속의 문화재가 된 것이다.  토건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문화재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한다. 낙천정이 처한 현재 모습을 보면 문화재를 홀대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김용관 | 인물과 사상사 에서 인용> 

 

 

 

 

 

▼ 복원한 낙천정(樂天亭) 현대강변아파트 안에 있다.

 

 

 

▼ 복원한 낙천정(樂天亭) 

 

 

 

▼ 복원한 낙천정(樂天亭) 서울시 기념물12호로 지정되었으나 위치, 건물형태 등에 문제로 기념물에서 해제 되었다.(2009년 10월 22일)

 

 

 

▼ 복원한 낙천정(樂天亭) 현대강변아파트 102동 옆에 있다.

 

 

 

낙천정(樂天亭) 터 위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불편하다. 자양2동주민센터를 기준으로 찾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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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