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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공원 터(育英公院), 독일영사관 터(獨逸領事館), 독립신문사 터(獨立新聞社)

 

육영공원 터(育英公院)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관립 교육기관. 서양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영어 교습을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1883년 미국에 파견된 민영익 및 보빙사 일행이 근대 문물의 도입의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귀국후 신식교육기관의 설치를 건의하였고 주한미국공사의 무관 G.C. 포크 중위의 알선으로 설립이 결정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개교가 지연되었으나 1986년 7월 미국인 교사 3명이 내한하여 1886년 9월 23일 개교하였다. 1894년 정부고관이나 그 자제만을 수용하는 신분적 한계, 공원 관리들의 운영비 유용과 정부의 재정 핍박 등으로 운영이 어렵게 되었고 폐교되었고 이후 한성외국어학교로 통합되었다.<다음백과에서 인용>


독일영사관 터(獨逸領事館)

 

구(舊) 독일영사관(獨逸領事館)은 1883년 조선과 한독수호통상조약(韓獨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하고, 1884년 10월 14일 낙동(駱洞, 현 충무로1가 서울중앙우체국 뒤편)에 처음 개설되었다. 이후 박동(현 종로구 수송동 종로구청 자리)을 거쳐 정동으로 이전하였다가, 상동(尙洞)에 건물을 신축·이전한 뒤 1903년 독일공사관으로 정식 승격되었다.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 이후 다시 독일영사관으로 격하되었고, 1914년 외교단절로 폐쇄되었다가 1928년 재개설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는 서소문동 38번지는 원래 1890년에서 1902년까지 구(舊) 독일영사관(獨逸領事館)이 자리했던 지역이었다. <서울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인용>


독립신문사 터(獨立新聞社)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 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판 신문인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간하던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가 있던 곳이다. 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순국문판 신문으로, 1896년(고종 33)에 서재필(徐載弼, 1864~1951) 등이 중심이 되어 창간하였다. 이후 1899년(고종 36)에 폐간되었다.<서울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발췌>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 터는 얼마 전까지는 배제빌딩 뒤쪽에 ‘독립신문사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독립신문의 인쇄소였던 ‘삼문출판사’가 있었던 자리로 전해집니다. 즉, 신문사 편집국과 인쇄소 혼동으로 생긴 오류라고 합니다.
또 다른 표석은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독립신문사는 독일영사관이 자리했던 구역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때문에 현재 표석이 위치하고 있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인근, 신아빌딩 바른쪽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이 설득력 높은 주장으로추정됩니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발췌>

 

 


 

▼ 육영공원 터(育英公院), 독일영사관 터(獨逸領事館), 독립신문사 터(獨立新聞社) 표석

▼ 육영공원 터(育英公院), 독일영사관 터(獨逸領事館), 독립신문사 터(獨立新聞社) 표석...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입구에 위치한다.

▼ 육영공원 터(育英公院), 독일영사관 터(獨逸領事館), 독립신문사 터(獨立新聞社) 표석

▼ 구 독립신문사 터(獨立新聞社) 표석.... 옛 배재학당 터에 표지석을 세워 독립신문사 터를 기념하고 있었는데 여러 고증을 거쳐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 옛 독일영사관 입구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배재학당에서 옛 표석의 철거를 반대하여 옛 표석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 서울 중구 정동길 부근 기념표석 위치현황 

▼ 육영공원 터(育英公院), 독일영사관 터(獨逸領事館), 독립신문사 터(獨立新聞社)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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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