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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전 터(永禧殿址)

 

영희전(永禧殿) 터는 조선의 역대 임금의 영정 중 일부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던 영희전이 있던 장소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로 27에 해당한다. 영희전은 조선의 역대 임금의 어진(御眞) 중 일부가 봉안되었던 곳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중부경찰서(中部警察署)의 전신인 본정경찰서(本町警察署)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곳에 중부경찰서와 영락교회(永樂敎會)가 있다.

영희전(永禧殿)은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 태조(太祖)·세조(世祖)·숙종(肅宗)·영조(英祖)·순조(純祖)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던 건물로 1690년(숙종 16)에 남별전(南別殿)을 개칭한 것이다. 어진은 과거에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1713년(숙종 39)에 그 명칭을 지금과 같이 통일하였다. 영희전 터는 영희전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로 27에 해당한다. 원래 이곳은 세조의 장녀 의숙공주(懿淑公主)의 집이었고, 중종반정(中宗反正)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폐위된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가 거처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1601년(광해군 2)에 이곳에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恭嬪) 김씨의 신위를 모시고 봉자전(奉慈殿)이라 명명하였으며, 1619년(광해군 11)에 최초로 선왕인 태조, 세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남별전(南別殿)이라 하였다. 1637년(인조 15)에는 이곳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元宗)의 어진을 봉안하였고, 1677년(숙종 3)에 남별전을 증축하였다. 이어 1690년(숙종 16)에 이곳을 영희전으로 개칭하였다. 대한제국 선포 후 1900년에 영희전을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위패를 모신 경모궁(景慕宮)으로 옮기고, 나머지 어진들도 그곳으로 옮겨간 후 1909년 통감부는 이곳의 건축물들을 모두 철거하였다. 영희전을 철거한 장소에 일제에 의해 1907년 대한제국 최초의 경찰서인 본정경찰서(本町警察署)가 들어서게 되었다. 광복 이후 1947년 본정경찰서는 중부경찰서(中部警察署)로 개칭하였으며, 1982년 바로 옆에 지금의 청사를 신축하여 본청을 그곳으로 옮겼다. 또한 바로 옆의 부지에는 1945년 한경직(韓景職) 목사를 중심으로 북한 출신 교인들이 베다니 전도교회를 창립하였다. 이 교회는 1949년 영락교회(永樂敎會)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한편, 경모궁 자리로 옮겨간 영희전은 국권피탈 후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그곳은 조선총독부의원 부속 의학강습소의 일부가 되었다. 1926년 이 병원은 경성제국대학에 편입되었고, 광복 후 서울대학교가 이 기관과 부지를 이어받으면서 서울대학교병원 부지 일부의 형태로 오늘에 이른다. 2013년 이곳에 영희전의 복원이 결정되었다.<서울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인용>

 

 

 


 

▼ 영희전 터(永禧殿址) 표석

▼ 영희전 터(永禧殿址) 표석... 중부경찰서 민원봉사실 앞 화단에 있다.

▼ 영희전 터(永禧殿址) 표석

▼ 영희전 터(永禧殿址) 표석... 앞에 우체통을 기억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영희전 터(永禧殿址) 표석... 로드뷰로 바라본 모습...

▼ 옛날 영희전 터(永禧殿址) 표석... 표석은 화강암 재질로 해서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 서울 중구 충무로 주변의 기념표석 위치

▼ 영희전 터(永禧殿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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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