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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집터(柳成龍家址)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집터는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내면서 국난을 승리로 이끈 명재상(名宰相) 유성룡이 살았던 곳이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때 겪은 뼈저린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을 저술하였다.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명재상으로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로 성리학의 대가였던 그는 대사헌·경상도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권율 같은 명장을 천거하여 국난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 조선의 5대 명재상(名宰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임진왜란 때 겪은 뼈저린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을 저술하였다. 이곳은 유성룡이 어린 시절 살았던 집터이다. 조선시대 한양 남부에 위치한 이 마을은 ‘묵사동(墨寺洞)’ 또는 ‘먹절골’이라 불렸는데, 이유는 부근에 ‘묵사(墨寺)’ 혹은 ‘먹절’이라 부르던 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산 기슭에서 발원해 이 주변을 흐르던 개울 이름도 묵사동천(墨寺洞川)이었다. 이 개울 상류는 풍경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많은 문사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유성룡은 말년인 1598년에 북인(北人)의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削奪)되었다가 1600년에 복관되었으나 그 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 안동 옥연서당(玉淵書堂)에 은거하면서 저술활동에 전념했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228 중앙 에너비스직영 퇴계로지점 주유소 앞 화단에 1989년에 설치한 ‘유성룡 집터’ 표지석이 있다. 한편 서울특별시는 1998년 4월 문화재지정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유성룡 집터 부근인 퇴계로4가 교차로에서 필동3가까지의 약 375m의 도로를 ‘서애로(西厓路)’로 지정하였다.<서울중구역사문화자원에서 인용>

 


 

 

▼ 유성룡 집터(柳成龍家址) 표석

▼ 유성룡 집터(柳成龍家址) 표석... sk에너지 퇴계로점 앞에 있다.

▼ 유성룡 집터(柳成龍家址) 표석... 길 건너 건물

▼ 유성룡 집터(柳成龍家址) 표석,,, 길건너에서 바라본 sk에너지 퇴계로점과 기념표석 위치

▼ 서울 중구 충무로역 부근 기념표석 위치 안내

▼ 유성룡 집터(柳成龍家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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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