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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長靈山) 용암사(龍巖寺)

 

옥천 답사를 진행하면서 사찰을 한 곳은 가야할듯 해서 찾아보니 천년고찰이 있는데... 산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사찰을 답사에 포함시킬 때는 우선은 자동차로 접근이 용이해야 하므로 도로사정을 살피고 시간대가 복잡하지 않을 때를 골라서 가게 된다. 요즘은 코로나 시대이다보니 사찰도 한가한 편이다. 

차량으로 절까지 접근할 수 있어서 올랐는데 한가지를 간과했다. 절이 동향일 때는 오전에 오르면 역광이 되어 사진이 잘 안나온다. 반대로 서향일 경우 오후에 오르면 역광이 된다. 절 사진이 흐릿하게 나온 것은 오전에 방문해서 역광이 된 결과이니 이해 바란다.

용암사에는 비보용 삼층석탑이 있어서 공부 차원에서라도 방문해야 하고 그곳에 마애불상은 마의태자상이라고 불리우는 전설이 있어서 소원성취가 잘 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지금 대웅전 기와공사가 한창이어서 절은 아주 어수선한 실정이다. 산중턱에 있다보니 조망이 아주 근사한데 이곳은 일출명소로 유명하다. 절 위쪽으로 올라가면 운무대가 있는데 구름이 춤을 추듯 한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옥천 전경이 아주 멋드러진다.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에도 선정되었다 하니 유명한 곳은 확실하다.

절이 상당히 가파른 지형에 위치하다보니 축대를 높게 쌓고 그 사이로 길을 내고 절간을 짓다보니 제약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천년고찰치고는 아담한 절이다. 돌로 된 석탑이나 마애불 외에는 전각들은 요새 불사를 한 것들이다. 대웅전 안에 후불탱화 등이 좋은 작품으로 나와 있지만 공사중이라 들어가지 못해 보지는 못했다.

안개가 낀 날이라 시원한 눈맛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누리고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애불이 있어서 소원성취 기원하는 사람들에는 다녀오기에 좋은 천년고찰이다.

 

장령산(長靈山) 용암사(龍巖寺)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천축국(天竺國)에 갔다가 귀국한 의신조사(義信祖師)가 552년(진흥왕 13)에 창건하였으며, 법주사의 창건보다 1년이 앞선다.
사찰명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로 이름 지었으나, 민족 항일기 때 일본인의 손에 용바위는 파괴되어 현재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중창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라 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잠시 머물러 용바위 위에 서서 신라의 서울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하였다는 설과, 수많은 당우로 산야를 메웠던 사찰이 임진왜란의 병화로 폐허화되었다는 설만이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이 절은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최근에 대웅전을 비롯한 요사채 3동을 중건하였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5종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 중 화법이 정교한 후불탱화(後佛幀畵)와 1877년(고종 14)에 조성된 신중탱화(神衆幀畵)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옥천 용암사 동서삼층석탑(沃川龍岩寺東西三層石塔)
 
보물 제1338호. 동탑 높이 4.3m, 서탑 높이 4.1m. 동탑과 서탑은 자연암반 위에 동서로 나란히 자리하는데, 모습이 대체로 같다. 다만 동탑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서탑은 받침돌 1면과 2~3층 몸돌을 보수하였다.
석탑은 크기가 비교적 작은 편으로,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1층의 몸돌은 매우 높은데 반해, 1층 지붕돌부터 3층 지붕돌까지는 거의 체감이 없다. 바닥돌과 아래층 받침돌의 면석은 여러 장의 돌로 구성되었고, 아래층 덮개돌은 4장의 널돌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윗층 받침돌은 1~2장의 돌로 조립되었다. 윗층 받침돌의 덮개돌 위에는 1단의 굄을 테두리 장식으로 표현하였다.
1층 몸돌은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을 새겼지만, 너무 높아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잃은 듯이 보인다. 각 지붕돌의 네 귀퉁이에는 풍경(風磬)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고, 상륜부(相輪部)에도 노반(露盤)·복발(覆鉢)·보주(寶珠)만이 남아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보물 제1338호
문화재명칭 옥천 용암사 동서삼층석탑(沃川龍岩寺東西三層石塔)
소재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51-1
관리자(연락처) 장령산(長靈山) 용암사(龍巖寺)

 

▼ 장령산(長靈山) 용암사(龍巖寺)에 오르면 마주치는 전각... 위쪽에 별도로 산신각이 있는데 산신각은 아닌듯 하다.

▼ 용암사(龍巖寺) 종각

▼ 용암사(龍巖寺) 대웅전은 지금 지붕보수 공사 중이라 출입이 제한된다.

▼ 용암사(龍巖寺) 천불전

▼ 옥천 용암사 동서삼층석탑(沃川龍岩寺東西三層石塔) 안내문

▼ 옥천 용암사 동서삼층석탑(沃川龍岩寺東西三層石塔) 원경

▼ 옥천 용암사 동서삼층석탑(沃川龍岩寺東西三層石塔) 

▼ 용암사 동서삼층석탑(龍岩寺東西三層石塔)에서 바라본 용암사 전경... 대웅전 지붕공사로 어수선하다. 

 

용암사마애불(龍岩寺磨崖佛)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높이 3m. 화려한 연화대좌(蓮華臺座) 위에 서 있는 정면관(正面觀: 앞에서 바라본 모습)의 여래입상이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유려한 옷주름 선 그리고 고부조(高浮彫: 높은 돋을새김)에 의한 적절한 양감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불상의 얼굴은 갸름한 달걀형으로 정제된 상호(相好: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에서 정감이 넘치면서도 위엄 있는 불성(佛性)을 잘 반영하고 있다.
두부(頭部)에는 둥근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큼직하다. 살이 많이 올라 풍만한 양 뺨에서는 사실적인 양감이 느껴진다. 반타원형의 눈은 길게 반개(半開)하였다. 눈초리가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가 있다.
길게 내려 뻗은 코는 우뚝하고 꼭 다문 입술에는 붉은 채색을 입혔다. 커다란 귀가 어깨까지 닿고 있으며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다. 불상의 신체는 비교적 늘씬하고 탄력 있는 자태를 보여 주고 있다.
지면에서 다소 떨어져 암벽의 중간에 상을 새기고 있기 때문에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목에서부터 곧바로 이어지는 어깨가 매우 굳세고 양발을 가볍게 벌려 발끝을 밖으로 향한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착의 형태는 우견편단(右肩偏袒: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이나 오른 어깨를 살짝 덮고 있다. 발끝의 군의(裙衣) 자락이 좌우로 날카롭게 뻗치고 있다. 왼 어깨를 감싸 흘러내린 옷자락이 오른 손목을 감아 유려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복부 아래로도 완만한 U자형 옷주름이 몸 앞에서 겹겹으로 늘어지고 있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내리뜨려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을 가볍게 구부린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서 들어 엄지와 중지 외 나머지 손가락을 살짝 쥐고 있는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결하고 있다.
대좌는 연판(蓮瓣 : 연꽃잎)의 조각이 정교하고도 화려하다.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이다. 마멸이 심하여 세부 판별이 쉽지 않다.
마애불상의 조성 연대는 조각 수법과 착의 형태 그리고 대좌의 형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옥천 용암사마애불(龍岩寺磨崖佛) 안내문(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 용암사마애불(龍岩寺磨崖佛)

▼ 용암사마애불(龍岩寺磨崖佛)에서 바라본 옥천...

▼ 용암사 운무대 안내문...

▼ 용암사 운무대 오르면서...

▼ 용암사 운무대는 3군데로 되어 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끝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 용암사 산신각

▼ 용암사 산신각 오르는 오솔길에 바위에 각자를 써서 세워놓았다. 우측에 산신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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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방인야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