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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跡地)
군에 있으면서 나는 유난히 전쟁사에 꽃힌 적이 있었다. 그때 진중문고에서 전쟁사를 많이 발행해서 부대내에 전쟁사 책이 많기도 했었고 6.25전쟁 격전지, 월남전 격전지 등을 꾸준히 읽었는데 전문적으로 연구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소설책 읽듯이 읽었는데 전투가 진행되는 장면 등을 읽을 때는 무척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또래들보다는 전쟁사에 더 많은 풍월을 읇조린 것 같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백마고지전투(白馬高地戰鬪)였다. 그때 꼭 전적지를 찾아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현직에 있을 때는 이러저런 핑계로 답사를 못했는데 풍류객으로 방랑을 거듭하고 있는 요즘에는 의도치 않게 전적지를 가끔씩 찾게 된다.
백마고지전투(白馬高地戰鬪)는 노동당당사, 도피안사, 철원향교 등을 둘러보면서 찾은 곳이다. 백마고지를 처음 본 순간 옛날 책으로 읽었던 백마고지전투의 처절했던 상황들이 마구 떠올랐다. 현재 GP가 있는 그곳이 395고지라고 하는데 산이 남북으로 길게 능선이 되어 있어 현재의 휴전선도 능선 끝 지점으로 북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다.
이 고지를 우리가 차지함으로써 백마고지 바로 아래에서부터 펼쳐지는 광활한 철원평야를 현재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참으로 오래 걸려 찾은 백마고지전적지에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묵념으로 대신한다.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跡地)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1950. 6·25 ~ 53. 7. 27)기간인 1952년 10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3km 북방에 위치한 무명의 한 작은 고지를 놓고 한국군 보병 제 9사단(사단장 김종오)과 중공 제38군 3개사단이 전력을 기울여 쟁탈전을 벌인 끝에 우리국군의 승리로 매듭지어진 전투를 말한다.
백마고지는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군사지정학상 요지로 중국인민지원군과 국군간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 동안 해발이 불과 395m 밖에 되지 않는 고지 하나를 빼앗기 위해 아군과 적군 2만 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전투기간 중 발사한 포탄은 적측 5만5천발, 아군측 22만발이며,12차례의 공방전으로 24회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혈전사투로 처절하게 변모한 산용(山容)이 흡사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고한다. 이 전투에서 국군의 승리의 요인은 우수한 정보활동과 보병과 포병 간의 적절한 협동, 전투부대의 적절한 임무교대를 통한 충분한 휴식에 있었다.
백마고지 위령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중공군 등 17,535명(아군3,146명, 중공군14,389명)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회고의 장 · 기념의 장 · 다짐의 장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처절했던 격전의 현장을 기억하고자 건립되었다. '회고의장'에는 전사자를 추도하는 위령비와 분향소가, '기념의 장'에는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전적비와 함께 당시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金鍾五)장군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도 자유의 종각이 건립되어 현재 국민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다음백과 및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발췌>
백마고지전투(白馬高地戰鬪) 백마고지전투는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들고 1952년 10월 초 판문점에서 포로회담이 해결되지 않자, 중공군의 공세로 시작된 1952년도의 대표적인 고지쟁탈전이었다. 백마고지(395고지)전투는 회담이 난항을 겪고 있던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 북방 백마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한국군 제9사단이 중공군 제38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 열흘 동안 혈전을 수행하였고 결국 적을 물리치고 방어에 성공한 전투이다. 백마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은 1952년 10월 6일 시작됐다. 이날 아침부터 사단의 전 지역에 집중적인 공격준비 사격을 퍼부은 중공군은 북쪽 5㎞ 전방에 있는 봉래호의 수문을 폭파해 아군의 후방을 관통하는 역곡천을 범람시켰다. 이에 따라 아군의 증원과 군수지원이 차단된 것으로 판단한 중공군은 집요한 공격을 감행했다. 중공군은 고지 주봉에서 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능선으로 1개 대대를 투입하고, 1개 대대를 주봉으로 각각 투입하였다. 그러나 국군 제9사단은 이날 밤 적과 3차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에게 많은 피해를 주면서 격퇴하였다. 그러나 며칠 동안 5차에 걸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에서 제28, 제30 양 연대는 거의 재편성이 불가피할 정도로 많은 병력 손실을 보았다. 10월 11일 밤 고지는 다시 중공군의 수중으로 넘어갔으나, 12일 아침 반격 제30연대가 제29연대를 초월 공격함으로써 이를 재탈환하였으며 다시 적의 반격을 받아 피탈되었다. 이에 제28연대가 다시 밀고 밀리는 육탄전을 10월 15일까지 계속한 끝에 마침내 탈환에 성공하였다. 이어 제29연대가 기세를 몰아 395고지 북쪽 낙타능선상의 전초진지를 탈환하게 됨으로써 적을 완전히 격퇴하였다. 결과적으로 국군 제9사단은 10월 6일부터 중공 제38군의 공격을 받아 연 10일 간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하여 7회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수행한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하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은 총 9개 연대 중 7개 연대를 투입하였는데, 그중 1만여 명이 전사와 부상 또는 포로가 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국군 제9사단도 총 3,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전투로 국군 제9사단은 ‘상승백마’라는 칭호를 얻었다. 백마고지전투는 1952년 10월 철원평야의 요충지인 395고지에서 벌인 전투로서 지역전투로서는 세계전사 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였다. 이 전투에서 백마부대는 중공군 1만 3,000여 명을 격멸하는 전과를 거둠으로써 한국군의 전투능력과 지휘관들의 부대지휘능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국군 제9사단은 1966년 5월 맹호부대에 이어 파월부대로 선정되었으며 그해 8월 월남으로 이동, 닌호아·투이호아·캄란지역에서 부여된 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미지정(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
문화재명칭 |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跡地) |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평화로 3591 |
관리자(연락처) | 육군제5사단 |
▼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跡地)와 철원지역 안보관광지에 있는 철원노동당사, 도피안사 위치
▼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跡地)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대마리백마고지 안내석
▼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跡地) 전경
▼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跡地)를 상징하는 백마상과 최근 화살고지 전적지에서 유해 수습하면서 나온 탄피, 철모 등 철을 녹여 만든 '기억의 종' 작품
▼ 백마고지전적지(白馬高地戰跡地) 기념비
▼ 예전에 설치된 백마고지전적비(白馬高地戰蹟碑)... 책에서 본 전적비였는데... 익숙한 것을 보니 반가웠다.
▼ 백마고지전승비와 DMZ평화의길 답사로
▼ 백마고지전적비(白馬高地戰蹟碑)로 오르는 진입로에 태극기로 잘 꾸며져 있다.
▼ 백마고지 위령비와 시계탑... 시계탑은 현재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가 아니고 6시25분에 멈춰선 시계탑이다. 6월25일을 상징하는 의미이다. 좌측, 우측에도 시계가 있는데 전승일 10월15일, 9사단, 5사단을 상징하는 시계로 만들어졌다.
▼ 백마고지전적비(白馬高地戰蹟碑)
▼ 백마고지위령비(白馬高地慰靈碑)
▼ 백마고지전투 기념관인데 코로나 시국이라 묻을 닫았다.
▼ 백마고지전적비(白馬高地戰蹟碑) 앞에 건립취지문과 국가유공자의 말이 새겨져 있다.
▼ 백마고지전적비(白馬高地戰蹟碑) 측면과 후면
▼ 백마고지전적비(白馬高地戰蹟碑) 뒤편으로 상승각이 있고 그 안에 동종을 설치했다.
▼ 백마고지전투지(白馬高地戰鬪地) 현충시설 안내문과 백마고지 사진...
▼ 백마고지(白馬高地)의 현재 모습... 통일아 평화야 철원아...라고 써져 있다.
▼ 백마고지와 비무장지대를 순례하는 DMZ평화의길 출입구... 앞쪽에 보이는 백마고지를 우리가 사수했기 때문에 우측으로 보이는 너른 평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 상승각(常勝閣) 내부와 동종 외곽에 새겨진 글자... '민족자존 통일번영'이 새겨져 있다.
▼ 백마고지(白馬高地)를 관람하고 전적비 쪽으로 오는 길가 바위틈에 능구렁이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도망가지도 않고 한참을 머무는데... 관람객을 위해 멀리 옮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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